지난 6일 ‘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행사엔 김진표 국회의장과 한덕수 국무총리, 여야 지도부가 참석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부부와 박지만·노재헌·김현철·노건호씨 등 전직 대통령 자제들도 함께했다. 저마다의 언어와 기억으로 ‘김대중 정신’을 화두 삼고 되새긴 뜻깊은 자리였다.
참석자들은 김 전 대통령의 통합과 화합, 민주주의와 평화를 이야기했다. 김 국회의장은 “정치는 대립과 반목, 분열에 빠져 있다. 김 전 대통령이 바라는 것은 국민 통합일 것”이라고 했다. 한 총리는 “김 전 대통령의 민심, 위기 극복, 통합의 지혜를 통해 국정운영의 교훈을 얻고자 한다”고 말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금 이 나라에 꼭 필요한 화합과 공감의 경험을 김 전 대통령은 국민과 함께해냈다”고 했다. 피습으로 입원 치료 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독한 축사에서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와 민생, 평화를 우리 손으로 지키자”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이 염원한 세상이 다시 멀어지고 있고 세상이 거꾸로 가고 있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일생을 ‘민주·민생·평화’에 헌신했다.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기 위해 죽음의 고비에서도 꺾이지 않은 그의 역정은 오는 10일 개봉하는 다큐 영화 <길위에 김대중>에 담겨 있다. 평화적 여야 정권교체를 이룬 뒤 국민과 함께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정적들에게 보복하지 않았다. 또 철저한 의회주의자로, 대통령 임기 중 국회 입법에 한 번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첫 남북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화해·협력의 길을 열었다.
지금 윤석열 정부와 정치권에선 이런 리더십을 보기 힘들다. 정권이 교체됐다고 전 정부 주요 정책들은 뒤집고 수사하고 보복하는 정치가 난무하고 있다. 여야는 상대를 악마화하며 극단적 진영 대결 늪에 빠져 있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 작동 원리는 멈추고, 사회도 국민도 갈등·분열로 내몰리고 있다. 김대중 정신을 소환하는 위정자들은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민생경제·평화 모두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다. 이를 극복하는 것은 국민적 바람이자 시대적 요구이다. 정치권은 이념이 아닌 민생, 불신과 대립이 아닌 상생으로 공존의 길을 열어야 한다. 그게 김대중 정신이다. 김대중 정신은 말이 아닌 실천으로 계승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