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임종헌 권력남용 단죄, ‘사법부 독립’ 다시 경종 울렸다

사법농단 의혹의 실무 책임자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에 출석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사법농단 의혹의 실무 책임자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에 출석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사법농단’ 사건의 핵심 인사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5일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은 임 전 차장의 직권남용 등 일부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벌어진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7년 만에, 임 전 차장이 기소된 지 5년3개월 만에 이뤄진 첫 판결이다. 임 전 차장은 이 사건 연루 전·현직 법관들 중 세번째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1심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이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 때 사건 검토 후 결과물을 청와대에 전달한 점, 메르스 사태 당시 정부의 법적 책임을 검토하도록 한 점, 홍일표 의원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을 검토 지시한 점, 통합진보당 지방의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한 점 등이 직권남용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정치적 중립성,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해할 수 있는 중대한 범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지난달 26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 전 대법원장 판결에서도 임 전 차장의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가 상당 부분 인정됐다. 서로 다른 1심 재판부에서 임 전 차장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임 전 차장이 사법행정권을 사유화해 청와대나 국회의원을 위해 이용했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도 ‘사법농단’이라는 헌정 질서 문란 사건에 집행유예라는 관대한 처벌을 내린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또 당시 재판에 영향을 끼치려 한 재판 개입 혐의에 대해서는 ‘재판 독립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권한 없이 남용 없다’는 논리로 대부분 무죄로 판단했다. 검찰은 항소하고 더욱 엄격한 사법 판단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이 사건은 삼권 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가 헌법이 부여한 독립성을 스스로 내팽개쳤다가 한때 그들이 몸담았던 법원에서 단죄를 받은 꼴이 됐다. 사법부의 역사에도 치욕적인 일로 기록될 만하다. 법원이 도덕적·정치적 책임까지 묻지 않은 이 판결로 애꿎은 피해를 입은 강제징용 피해자 등은 눈물을 흘리게 됐다. 사법부 지휘부인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 행정의 ‘3인자’인 임 전 차장의 사법농단 행위를 몰랐을 리 없다. 두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은 사법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구해야 한다. 1심 재판부는 “법관들이 다시는 이런 전철을 밟지 않도록 엄중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 말 그대로, 임 전 차장 단죄가 ‘사법부 독립’에 경종이 되길 바란다.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