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시가 현실화 폐지 예고, 부자감세로 빈 곳간은 안 보는가

정부가 19일 부동산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률을 2035년 90%까지 끌어올리는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폐기하기로 했다. 2020년 11월 문재인 정부에서 이를 도입한 지 3년여 만이다. 지난해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로드맵 도입 이전인 2020년 수준(공동주택 69%)으로 낮추더니, 아예 폐기를 공식화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시세와 공시가격 사이에 괴리가 커 조세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률을 매년 단계적으로 높이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21번째 민생토론회에서 ‘국민의 보유세 부담 완화’를 이유로 전면 폐지로 방향을 틀었다. 이 사안은 ‘부동산 가격 공시에 관한 법’ 개정이 수반돼야 해 여소야대 국회나 총선 후에 어떻게 될지 불확실하다. 정부가 로드맵 폐지의 수혜 대상·시점을 정확히 밝히지 못한 이유일 것이다. 장기적으로 추진될 부동산 정책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면서 정책 신뢰도와 시장 안정성에는 혼선이 불가피해졌다.

부동산 공시가격은 조세·복지 등 67개 행정 목적에 활용되는 중요한 지표다. 재산세·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건강보험료, 기초연금 등의 기준이 된다. 하지만 시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공시가격은 자산 양극화와 부동산 시장 불안정성만 키워왔다. 가격이 오르더라도 다주택자들의 세부담이 크지 않아 부동산 가수요를 부추겼고, 집값 폭등과 서민 주거 불안을 낳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결국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에는 고가 주택 보유자의 세부담을 현실화시켜 과세 공평성과 부동산 시장 안정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의지와 구상이 담긴 셈이다.

공시가격 현실화 폐지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정의를 흔든다. 장기적으로 세수 감소는 사회적 약자들의 복지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지난해 불경기에 법인세·종부세 등 ‘부자 감세’까지 겹치며 정부의 세수결손액은 역대 최대인 56조원을 기록했다. 이 여파로 지난해 의료급여와 고령층에 지급되는 기초연금 지원 예산 등의 불용액 규모만 1조원을 넘었다. 이런 악순환 속에서 윤 대통령이 세수 펑크를 키우고, 실현 여부도 불투명한 ‘부자감세’ 카드를 총선 앞에 또 내민 것이다. 정부는 텅 비어가는 곳간은 언제까지 눈감을 것인가. 국회는 공시가 현실화 로드맵의 효과·이행과정·부작용을 충분히 검토한 뒤 폐지 문제를 매듭짓기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예술공장에서 ‘도시혁신으로 만드는 새로운 한강의 기적’을 주제로 열린 스물한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예술공장에서 ‘도시혁신으로 만드는 새로운 한강의 기적’을 주제로 열린 스물한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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