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진정 자유로워지려면

과거 권위주의 독재정권은 언론에 큼지막한 재갈을 물렸지만, 그 반대급부 또한 적지 않게 부여했다. 언론사주나 언론기업이 세금을 빼먹거나 부동산 투기로 막대한 부를 쌓아도 정부는 적당히 눈을 감아주었다. 탈법이나 불법을 저지른 기자들에 대해서도 정권은 웬만해서는 문제를 삼지 않았다. 정치문제에서 ‘금지선’만 넘지 않으면 언론에는 불법을 저지를 자유, 타인에게 횡포를 부릴 자유가 넘쳐흘렀다. 숱한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언필칭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 지금에는 정권-언론간의 검은 공생관계는 거의 끊겼다.

그 당시, 정권과 검찰의 관계도 이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정치적으로 독재정권은 검찰을 철저히 예속시켰지만, 뒤로는 적지 않은 급부를 주었다. 공안문제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 검찰은 정권의 비위를 철저히 맞춰주는 대가로 다른 곳에서는 달콤한 권력의 맛을 향유할 수 있었다. 검찰 안에서도 일반인이라면 구속수사감인 형사사건이 간혹 터졌지만, 이러한 일로 처벌받은 검사는 거의 없었다.

-사법개혁 요체는 민주절차-

사법절차 개편을 둘러싸고 검란(檢亂) 수준으로 치닫던 검찰내 평검사들의 반발이 지난 주말을 고비로 수그러들었다. 여론이 썩 좋지 않다고 판단한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고 검사들이 개편의 대의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언제 다시 터질 지 모를 불안한 상태가 당분간 지속될 듯하다.

평범한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검찰이 무엇을 놓고 싸우는지 언뜻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 논쟁 과정에서 오간 용어 자체가 난해하기 짝이 없다. 공판중심주의, 신문조서, 증거능력, 피고인 신문, 배심제·참심제 등등. 수사기관이나 법정 근처에도 가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무엇인가 중요한 문제를 놓고 다투는 것 같기는 한데,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사실 개편의 요체는, 보다 더 민주적인 과정과 절차에 따라 수사를 하라는 것인데, 이렇게 요란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물론 간편하기로만 따지자면 특히 흉악범의 경우는 법절차에 따를 것도 없이 즉결처분하는 것이 마땅할 수도 있다. 이것은 원시적인 사회에서나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실제 상당수 검사들에게는 대략 이런 욕구가 잠재해 있다. 그들에게 절차는 그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이에는 이’라는 일각의 응보(應報) 심리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이것과 짝을 이루는 것이기도 하지만, 검사들에게는 숙명과 같은 것이 하나 더 있다. 검사들은 모든 것을 범죄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습관화돼 있는 사람들이다. 검찰이 나서지 않으면 사회질서를 바로잡을 수 없다! 검사라면 누구나 갖는 뿌리 깊은 생각이다. 누군가는 길가에 내버려진 담배꽁초에도 의분을 느끼는 존재가 검사라고 했다. 작게는 이 담배꽁초에서 크게는 송두율 교수와 같이 국가안보를 해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항시 감시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어쩔 수 없는 검찰의 운명이다.

검사들의 이런 원시적인 욕구를 민주적 절차라는 큰 틀 속에 가두어놓는 것이 바로 사법제도이다. 요즘 논의되고 있는 사법절차 개편문제는 결국 우리 사법제도를 어떻게 선진화하느냐를 놓고 벌이는 논쟁이다. 재야 법조계와 시민단체, 법학계가 이미 풀려 있거나 풀릴 위험이 있는 검찰의 고삐를 더욱더 잡아쥐겠다고 한다면, 검찰은 자기들만의 본래적인 욕구를 수호하겠다며 버티기에 나선 형국이랄까.

-사건수사로 정권에 맞서야-

검찰이 대선자금 수사로 어느 때보다 독립성을 확보했다고 하나, 취약한 구조는 여전하다. 청와대 권력은 언제든 다시 검찰을 손 안에 쥐고픈 강한 유혹에 빠져들기 쉽다. 그렇다면 검찰은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적 권력을 먼저 벗어던지고, 대신 구체적인 사건 수사를 통해 독립적 지위를 넘보는 정치권력에 맞서는 배짱을 보여야 한다. 지금 검찰은 일견 모순된 이런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버린 자만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진다고 하지 않았는가.

〈박노승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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