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장관께

어제 북한에 핵실험을 하면 미래가 없다고 한 사람은 외교부 장관입니다. 근 1년 단절된 남북대화에 희미한 물꼬나마 튼 것은 국무총리였습니다. 북핵문제 등으로 남북관계가 기로에 처해 있지만, 어디에도 통일부 장관의 역할과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엿새 전입니다. 그날 아침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남북관계 당정회의를 가졌습니다. 회의 뒤 당측은 “북핵 안보리 회부에 찬성할 수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고, 당도 동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몇 시간 후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누가 반대한다는 것이냐”고 반문했습니다. 혼선이 일고, 해명에 당정이 한바탕 부산했습니다. 당정회의 주체였고, NSC 상임위원장을 겸한 통일부 장관이 정리했으면 선명했을 텐데도 끝내 보이지 않더군요.

-남북문제에는 소극·소홀-

#그 1주일 전입니다. 만취한 어선이 동해 NLL을 월북한 것조차 못 막아 군경의 경비체제가 도마에 오른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정장관은 해안초소의 경고사격이 빗발치던 때 거기에 있었습니다. 명목은 ‘동해선 출입사무소 신축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지요. 정장관은 당시 사태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시점에 “우리는 예정대로 낙산사로 갑시다”라며 그곳을 떠났습니다. 외교안보팀장이라는 지위까지 부여받은 통일부 장관이 그런 상황을 제쳐두고, 산불 피해현장인 낙산사를 방문하는 게 급했던 까닭은 무엇일까요.

두 삽화(揷話)는 ‘통일부 장관 정동영’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정장관이 남북문제와 관련해 무슨 일,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개성공단 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가 북측으로부터 홀대받은 것 정도가 떠오를 뿐입니다. 반면 정장관은 남북문제가 아닌 사안에는 적극적이었습니다. 가령 일본의 교과서 왜곡 문제 때는 선봉을 자임했습니다. 직접 일본 총리를 공격하고, NSC성명서를 낭독했습니다. 일개 미국 하원 의원의 발언을 반박하는 데도 전면에 나섰습니다. 국군 프로게이머팀 신설을 언급해 국방부를 곤혹스럽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라크의 자이툰 부대도 방문했습니다. 이렇게 막상 남북문제에서는 장막 뒤에 있고, 다른 것에는 ‘격’을 가리지 않고 활약(?)한 탓에 ‘나설 데서 안나서고, 안나설 데서 나선다’는 비판이 나오는 거겠지요. 오죽하면 “통일부와 외교부 장관이 바뀐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오고, 당에서는 “여의도쪽을 쳐다보지 마라”는 말이 나왔을까요. ‘여의도’에 ‘대권’을 대입하면 보다 정확한 거겠지요.

공교롭게도 정장관 취임 무렵부터 남북관계는 닫혀 있습니다. 아마 1년이 되도록 북측으로부터 대화 상대로조차 인정받지 못한 통일부 장관은 근래 처음일 겁니다. 물론 그리 된 데는 주변정세 등 환경적 요인이 더 작용했겠지요. 한데 앞으로도 이런 국면은 쉬 바뀔 것 같지 않습니다. 되레 북핵의 위기구조가 경화되면서 정장관이 칼날 위에 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칼날 위에 섰을 때 ‘정치적 고려가 많은’ 통일부 장관의 폭은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통일부 장관의 눈길에 대권이 어른거리면 당장은 생색도 안나고 욕만 먹을 일, 그러나 남북관계를 위해서는 꼭 해야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밝힌, 북한에 얼굴을 붉힐 때 붉힐 수 있겠습니까.

-이젠 본업인 정치로 돌아갔으면-

현 상황은 통일부 장관이 다른 곳을 쳐다봐도 될 만큼 여유롭지 않습니다. 대선주자 관리 차원으로 소용하기에는 ‘통일’의 직함이 너무 무겁습니다. 애초 개각에서 통일부 장관직을 권력공학적으로 활용한 것부터 단추를 잘못 꿴 것이겠지요.

속된 말로 한 것도 없고 안한 것도 없어, 그래서 통일부 장관으로서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 지금이 정장관이 물러날 적기인지 모릅니다. 금번 재·보선전에서 야당 대표의 대중성에 치여 무리수도 마다하지 않는 열린우리당을 보노라면 정장관의 공간은 여의도에서 더 넓어 보입니다. 취임 1년을 맞는 6월쯤 ‘모양새 있게’, 정장관의 본업이고 장기인 정치로 복귀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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