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거나 혹은 망하거나

〈이해영 한신대 국제평화인권대학원장〉

자신의 안전을 타인에게 의탁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고 말한 이는 마키아벨리다. 그래서 스스로의 안전을 스스로가 책임지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위험’하다. 어찌보면 당연하다 할 마키아벨리의 사상이 되새김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제 초읽기에 들어간 미국 대선의 결과가 우리에게 미칠 영향 때문이다.

부시와 케리 중 누가 우리에게 더 나은가라는 질문에 솔직히 나는 별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현재와 같은 조건이 계속된다면 ‘죽거나 혹은 망하거나’ 하는 데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 조건 가운데 역시 본질적인 것은 우리의 안전을 타인, 곧 미국에 의탁하고 있는 상황이다. 죽고 사는 문제가 우리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미국의 선택에 달려 있는 현실, 바로 그것이 ‘위험한 사회’ 한국의 존재조건이다.

‘부시=전쟁’ ‘케리=평화’식의 사고 역시, 너무 단순한 현실인식이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북핵·미사일 문제를 둘러싸고 북·미간 ‘대화’를 시작한 것은 아버지 부시의 공화당 정권이었고, 이 문제로 북폭을 계획한 것은 우습게도 클린턴의 민주당 정권이었다. 더군다나 1999년 북한 대포동미사일을 놓고 벌어진 위기상황에서 재차 북폭론이 제기되었을 때, 여기에 반대한 사람은 미 네오콘의 우두머리 울포위츠였다. 그가 보기에도 북폭은 한반도의 전면전을 불러올 것이고, 그것은 완전한 파멸을 의미할 뿐이다.

- ‘부시냐, 케리냐’ 무의미 -

9·11 이후 미국 외교노선을 네오콘이 쥐락펴락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이 오래전부터 이라크전쟁을 디자인해 왔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미 민주당내 계파 중 이른바 ‘리버럴 매파’는 사실상 네오콘과 별 차이가 없다. 또 민주당 케리와 에드워즈 모두 이라크전쟁을 지지하고 있고, 심지어 케리는 이스라엘의 극우 리쿠드당을 지지하는 인물이다. 북핵문제와 관련해 네오콘의 전략은 전쟁이라기보다 소위 ‘공격적 봉쇄’이다. 쉽게 말해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에는 ‘때려 죽이기’를 택했다면, 북의 김정일 정권에는 ‘굶겨 죽이기’ 전략을 펴겠다는 말이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북의 어린이들이 플루토늄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전법은 최근 ‘북한인권법’으로 구체화되었고, 그 기본발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네오콘이 주장해 온 그대로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미국의 대북정책이 전쟁쪽으로 기울 가능성은 상존한다. 하지만 북한의 결사적 버티기와 남한의 부전(不戰)의지가 확고하다면 그 가능성은 실상 높지 않다. 더군다나 갈수록 인플레되고 있는 북의 핵무기는 우습게도 그 자체가 전쟁억지 요인이 되고 있다. 다시 말해 물론 과장되기는 했지만 북이 ‘정말’ 핵을 갖고 있고, 유사시 그것을 사용한다면 어찌 될 것인가.

인간에게 알려진, 최대로 효과적인 권력자원은 바로 공포이다. 우리가 이라크에 파병한 것도 실은 그 깊숙한 데에 미국에 대한 공포가 자리잡고 있고, 북의 핵도 사실은 대미 공포의 결과물이다. 부시건 케리건 남과 북 모두에 대해 공포의 국제정치를 구사할 것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가 그 뚜렷한 실체를 증명하기 어려운 전쟁 공포에서 허우적거리는 동안, 미국은 아마 곶감 빼먹듯 ‘실리’를 챙길 것이다.

- 美에 의탁 한국상황이 문제 -

물론 여기에는 영어가 국교(國敎)가 되고, 친미는 정책을 넘어 중독이 되어버린 바로 그 국내적 조건이 중요하다. 한·미간 경제현안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이 빼먹을 실리의 리스트는 이미 공개되어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투자협정(BIT), 농산물, 자동차, 스크린쿼터, 반도체, 지적재산권 등. 공포를 바탕에 깔고 한손에 북핵, 다른 손에 실리, 여기에 우리 외교관료의 무능함이 가미된다면 나는 그것을 ‘망할 쾌’라고 본다.

어떤 현명한 이가 말하길, 미국은 우리의 팔을 비틀더라도 아주 부러뜨리지는 못할 것이라 했다. 팔이 비틀리더라도 견뎌낼 맷집을 키우면서, 여태껏 미국이 대신해준 그런 국제정치가 아니라 진정한 우리의 국제 ‘정치’를 고민할 때가 되었다. 큰집 제사상만 바라보다가는 죽거나 혹은 망하거나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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