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중독’ 화 부른다

고급 웃음을 선사하던 김형곤씨가 타계했다. 1975년에 연예인 축구시합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한 허장강 선생에 이어 운동하다 변을 당한 또 한 사람의 유명 연예인이 된 셈이다. 두 분 모두 한창 일 할 50세 전후였지만, 한 분은 오랜만에 운동을 하다 사고를 당했고, 또 한 분은 상당 기간 운동에 빠져 있다가 화를 당했다.

-김형곤씨의 안타까운 죽음-

고인을 두고 이런 추리를 하는 것이 무례가 아닐지 모르겠으나 김형곤씨에게 있어 운동은 독이 되지 않았나 싶다. 120㎏이나 나가던 체중을 90㎏까지 감량하는 과정에서 고인은 엄청난 성취감과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반복되는 운동과 다이어트를 통해 매일매일 줄어드는 체중과 근사해져 가는 몸매를 느끼고, 또 주위의 격려를 한껏 받으면서 대단한 성취감과 자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러한 성취감은 운동을 하루도 거르지 못하도록 자극했을 것이고, 몸이 웬만큼 불편해도 운동을 계속하도록 강요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방심하는 순간에 고인은 결국 죽음이라는 엄청난 사고를 당했을 개연성이 있다.

이러한 운동행동은 ‘운동중독’의 전형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운동중독은 의학적으로 인정된 질병은 아니다. 그러나 심각한 중독 증세와 마찬가지로 운동에 과도하게 몰입해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운동중독 용어는 이미 사회 전반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운동중독은 운동강박이나 운동광과 달리 운동에 대한 자제력을 잃고, 신체의 부상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운동에 심하게 몰두하는 특징을 보인다. 건강 지향주의와 외모 지상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현실 여건상 운동에 심하게 빠지는 이러한 운동중독자들은 현재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점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필자도 몇 년 전에 테니스에 미쳐 거의 죽을 뻔하다가 살아난 적이 있다. 중독 증세가 가장 심했던 2~3개월 동안 체중은 10㎏ 가까이 감소했고 매일 아침 병원에 들러 몸살 주사를 맞고 출근해야 했다. 운동을 멈추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전혀 멈출 수가 없었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2002년과 2003년에 각각 1,000여 명의 운동 참가자를 대상으로 중독 현상을 조사했는데, 그 결과 7% 정도가 운동중독 증세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조사 대상의 31% 정도가 자신이 운동중독자라고 응답한 사실이었다. 이것은 다른 중독과 달리 운동중독이 은폐하거나 부끄러워할 만한 증세가 아니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확산되어 있음을 방증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이유들로 인해 필자는 운동중독을 알코올·도박·쇼핑·사이버·휴대폰 중독 등과 달리 부정적 일탈이 아닌 긍정적 일탈행동으로 결론지었고, 운동을 권하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분위기도 그런 쪽에 가깝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번 김형곤씨 사고를 접하면서 운동중독에 대해 우리가 그동안 너무 관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 사실이다.

-몸 불편하면 운동량 줄여야-

건강해지고, 근사해지기 위해서 하는 운동이 지나침으로써 오히려 건강을 해치고 치명적인 손상을 가져온다면 이것은 운동을 하지 않음만 못하다. 신체와 정신에 미치는 운동의 효과가 그 어느 보약과도 견줄 수 없다는 것을 일단 경험해 본 사람은 절대 잊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운동을 과신하면 안된다. 또 운동에 대한 자신의 능력을 과신해도 안된다. 몸이 불편하거나 아프면 운동량을 줄여야 한다. 운동한 날 밤에 잠을 자기 힘들 정도로 아프거나 부상이 계속되면 반드시 의사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 운동지도자나 동료는 부상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임의로 조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운동을 통해 행복한 삶을 가꾸기 위해서는 현명한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 운동을 해서 건강해지는 것도 분명하지만, 운동을 계속하려면 건강해야 한다는 것도 항상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고단한 삶에서 운동을 약으로 쓸 것인가 독으로 쓸 것인가는 순전히 자신의 몫이다.

〈강신욱/단국대 체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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