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외치세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시론]‘평화’를 외치세요

새해가 되면 으레 예년과는 다른 미래를 설계하게 마련이다. 아마도 우리 모두가 올해 꿈꾸는 소망이 있다면 바로 ‘평화’가 아닐까 한다. 지난 12월29일 보수와 진보가 망라된 종교계와 시민사회 원로 인사 137명이 “한반도에서 더 이상의 전쟁은 안 된다”며 대화를 통한 한반도 전쟁 예방과 평화 정착을 간절히 호소하고 나선 것도 이러한 열망의 표출이었다.

한반도 정세 시민 목소리 중요
돌이켜보면 작년 한해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뒷걸음치기 시작한 남북관계는 2010년을 거치면서 냉전으로의 회귀를 넘어 한국전쟁 이후 최악의 전쟁위기, 즉 열전의 문턱까지 도달했다. 미·소 탈냉전 이후 한반도의 전쟁위기는 주로 북·미관계에서 비롯됐다. 핵문제를 둘러싸고 날카롭게 대립했던 1994년 미국은 우리도 모르는 상태에서 북폭을 추진한 바 있다. 북한을 이란·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부시 행정부 1기에도 우리는 미국발 전쟁위기를 걱정했었다. 그러나 적어도 남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걱정은 크게 덜었었다. 오늘날 남북한이 으르렁거리면서 ‘전쟁불사론’을 외치고 있고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이 만류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2010년 남북한이 열전의 문턱까지 갔던 한해였다면, 동북아는 신냉전의 문을 두드린 한해로 평가할 만하다.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적어도 미·중간의 안보 갈등은 크게 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지는 해’ 미국과 ‘떠오르는 해’ 중국은 ‘복합 갈등’의 시기를 보냈다. 미국 편중 외교의 시정과 동아시아 공동체를 대외전략으로 내세운 일본 민주당 정권이 등장하면서 동북아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희망 역시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한·미·일 남방 3각 동맹과 북·중·러 북방 3각 동맹 사이의 갈등이 재현되고 있는 양상 역시 심상치 않다. 특히 냉전의 최대 피해자였던 남북한이 동북아 냉전 부활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현실이야말로 이 시대의 모순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제 더 이상 ‘전쟁’이라는 말은 과거 한민족의 아픔을 떠올리게 하는 역사도 아니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먼 나라에서만 벌어지는 현실도 아니다. 언제든 한반도에서 벌어질 수 있는 현실이 되어버렸고, 어떻게 해서든 극복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었다. 아마도 천안함 침몰과 북한의 연평도 포격, 한·미연합군의 전례없는 군사 훈련 등을 거치면서 우리가 길어올려야 할 교훈이 있다면, 평화는 가만히 기다리면 오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노력해 쟁취해야 할 가치라는 점일 것이다. 그래서 평화는 고요한 말이 아니라 요란한 실천이 되어야 한다.

때마침 한반도는 위기의 2010년을 찍고 새해 들어 새로운 모색에 나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날카롭게 대립했던 미국과 중국의 정상들이 1월19일부터 회담을 갖고 해법을 찾으려 한다는 소식이다.

‘전쟁 안된다’ 말하며 실천해야
양국이 동맹국들인 남한과 북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그리고 그 영향력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거대 구조를 형성하는 한반도 문제의 속성을 고려할 때, 오바마·후진타오 정상회담은 한반도 정세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위기의 상당한 책임이 남북한에 있고, 그래서 남북한이 변하지 않으면 평화를 만들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과거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했던 힘이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나왔다면, 오늘날 전쟁과 평화를 결정할 주체는 바로 남북한이다. 그리고 남북한 당국이 서로를 겨눈 총을 거두고 다시 손잡고 평화의 미래를 설계하게 할 수 있는 힘은 바로 한국 시민들로부터 나와야 한다. ‘전쟁은 안 된다’는 단호한 의지와 ‘평화를 원한다’는 요란한 실천으로 똘똘 뭉친 시민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전쟁은 멀어지고 평화는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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