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문화진흥원과 공정위는 누구를 위한 곳인가

강맑실 | 사계철출판사 대표

지난 화요일 저녁 7시, 책 문화를 살리는 범출판인과 독자의 연대 ‘소리 질러, 책을 불러’ 북콘서트가 청계광장에서 있었다. 말이 콘서트지 사실은 출판인들의 예언자적 절규를 토해내는 자리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청계광장은 수천명의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시론]출판문화진흥원과 공정위는 누구를 위한 곳인가

한국 출판 역사상 가장 많은 출판 관계자들이 한곳에 모여 한마음 한목소리로 외치고 원한 건 무엇이었을까.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건 지난 7월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의 낙하산 임명이었다. 지난 5월10일자 문화체육관광부의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 공모’ 공고 내용을 들여다보자. 응모 자격은 ‘국가공무원법 제33조(결격사유) 각 호의 1에 해당하지 않는 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대한 이해와 조직관리 및 경영능력 등의 리더십을 겸비한 분’이면 된다. 자, 얼마나 추상적인가. 정관에도 원장의 자격 및 선임 기준과 절차에 대한 분명한 명시 없이 ‘원장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임명한다’라고만 되어 있다. 한 출판사의 직원을 뽑을 때도 이렇게 두루뭉술한 기준으로 뽑지는 않는다. 이것은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을 국가가 출판계에 시혜를 베풀 듯 만들어준 기관쯤으로 인식하고 정부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에 다름 아니다.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어떻게 만들어졌던가. 1999년, 수많은 출판단체를 비롯한 범출판계의 발의로 설립된 기구이다. 도서정가제 확립, 도서관 증설, 양서 활성화, 학교 독서교육 강화, 국민독서운동, 출판유통 현대화 등의 과제를 해결해나가기 위해 출판인이 주체가 되어 그 실행 방안과 구체적 계획을 10년 넘게 고심해왔던 기구가 아니던가. 엄연히 이 기구의 주체는 이 기구를 발의하고 구체적 실행안을 만들어온 출판인들이다. 하루빨리 이 기구를 출판인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이 기구를 발의할 당시 가장 절실한 사안은 완전한 도서정가제의 법제화였다. 사회과학서적은 엄혹한 독재정권 치하였던 1970년대 말과 1980년대에 그토록 서슬 퍼런 출판 통제와 탄압 속에서 어떻게 꽃을 피울 수 있었을까. 그것은 도서정가제 확립과 동네 서점의 힘 덕분이었다. 1977년부터 출판과 서점계의 자율적 결의로 실시된 도서정가제가 1980년부터는 법적 보장을 받았다. 덕분에 동네 서점은 중·대형 서점과 가격경쟁 없이 안심하고 책을 팔 수 있었으며, 하루가 멀다하고 사회면에 ‘판매금지’ 목록으로 오른 사회과학서들은 그 홍보 덕에 당시 5700개에 육박했던 전국 동네 서점에서 당국의 눈을 피해 독자의 손에 속속 전달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수많은 진실이 밝혀졌고 그 진실은 항거의 역량을 강고히 다져나갔으며 결국 민주화를 앞당기는 힘이 되지 않았던가. 출판이란 이처럼 한 사회를 움직이는 거대한 동력으로 작용하는 원천이다.

1990년대 말 온라인 서점이 생겨나면서 법적 규제가 약한 도서정가제는 파괴되기 시작했고 그즈음 느닷없이 공정거래위원회는 도서정가제 폐지 권고안을 발표했다. 심지어 2009년에는 소비자 경품 규제를 폐지한다는 발표까지 한 바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과연 독자를 위한 공정거래위원회인가, 묻고 싶다. 도서정가제 파괴로 동네 서점은 겨우 1700개 남짓 살아 숨쉬고 있으나 지금도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책의 판로가 막히면 출판사는 다양한 책을 출판할 힘을 잃는다. 출판 영역의 축소는 결국 독자들의 정신적 영양 불균형을 가져온다. 이것은 한 사회의 문화적 재앙을 초래할 것임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미 그러한 현상은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 재앙의 파고를 넘을 수 있는 길이 없는 건 아니다. 하루빨리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을 주인인 출판인에게 돌려주고 하루속히 완전한 도서정가제를 법제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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