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경선 중립파가 할 일

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촌탁(忖度), 남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리는 것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으니 촌탁은 어려운 일이다. 잘못해서 진의를 왜곡할 위험까지 있어 이래저래 남의 생각을 짐작하기란 무척 조심스럽다. 촌탁의 부담을 먼저 언급하는 것은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끝난 민주당 경선에서 많은 수의 의원들이 경선 후보 캠프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을 두고 언론에서는 잠재적인 안철수 지지자들로 분류하곤 했다. 그 속내야 촌탁하기 어렵지만 어쩐지 어색해 보인다. 당에 몸담고 있는 국회의원이라면 의당 캠프에 합류해 지지층을 동원하고, 그 외연을 넓히는 데 힘을 보태는 것이 온당하기 때문이다.

[시론]민주당 경선 중립파가 할 일

외견상 중립을 지킨 그들의 일부는 안철수 원장과의 단일화 게임에서 ‘공정한 심판’ 역할을 하기 위해서라는 촌탁도 있다. 어차피 단일화 없이는 이길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들의 선의는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단일화에서는 서로 신뢰하는 중재자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이번에도 시민단체에 중재나 심판의 역할을 맡기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선택이다.

그런데 선의는 인정하되 그것만으로 다 공감할 수 없는 대목도 있다. 우선 단일화에 대한 이해다. 단일화는 경쟁하는 후보가 어떤 룰에 따라 하나로 정해지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후보’의 단일화가 아니라 ‘지지층’의 단일화다. 두 후보의 지향성이나 정체성에서 볼 때 단일화가 자연스럽게 비쳐진다면 추첨민주주의란 말이 있듯이 공정하기만 하면 어떤 절차든 무슨 상관이랴.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아닌 후보가 최종 승자가 돼도 그를 찍기 위해 선거일에 투표장에 나갈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후보단일화에서는 둘 중에 하나를 뽑는 절차가 아니라 두 후보가 왜 합치고, 합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알리고 설득하는 공론화 과정이 중요하다.

당인이라면 심판보다는 당의 후보를 도와 지지층을 결속·동원하고 넓히는 데 힘을 보태는 것이 적절하다.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대략 60%의 유권자들이 여야 1 대 1 구도라고 해서 무조건 투표장에 나오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일화 여부와 상관없이 두 후보들이 펼치는 치열한 경쟁이 여당의 박근혜 후보에게 쏠리는 관심을 축소시킬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요컨대, 둘이 하나로 좁혀지는 산술적 단일화가 아니라 양 지지층이 뭉치는 창조적 단일화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같은 당의 후보가 경합한다면 정해진 절차에 따르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경쟁하는 후보가 같은 당에 속해 있지 않다면 절차에 따른 선거보다 후보 간 협의와 타협이 더 유효할 수 있다. 물론 후보끼리 어느 날 만나 밀실에서 불쑥 담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러나 연대와 공감의 소통을 통해 단일화하는 과정을 잘 만들어왔다면 그 막바지에 두 후보가 만나서 협의하고 대화를 통해 단일화를 이루는 것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모습’이 될 것이다. 따라서 심판이 필요 없을 수도 있다.

정당은 표를 담는 그릇이다. 이 그릇의 크기에서 민주당은 새누리당에 비해 작다. 자신의 이념성향을 보수라고 밝힌 사람의 60%가량이 새누리당을 지지한다면, 진보라고 밝힌 사람의 40% 정도만이 민주당을 지지한다. 반MB 여론이 70%를 넘는데, 이들 중 민주당 지지는 40%도 채 안 된다. 이런 민주당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특정 후보에게 쏠리지 않았던 이들이 집중해야 할 과제다. 무릇 변화는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힘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경선에서 중립을 지킨 이들이 심판이 아니라 혁신의 기수로 나서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