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익 국편위원장 내정 반대하는 이유

이이화 | 역사학자

유영익 교수의 국사편찬위원장 내정 소식이 전해지자 학계와 단체, 시민사회가 들끓고 있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또 이 소식이 들려 혼란의 국면을 더하고 있다. 한낱 정부기관의 수장 임명을 놓고 왜 그럴까? 유영익 교수는 원로 역사학자이다. 그런데 그의 학문적 업적과 삶의 행태를 보면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 많다.

[시론]유영익 국편위원장 내정 반대하는 이유

무엇보다 그는 독재자 이승만 숭배주의자이다. 그는 이승만 연구소를 차리고 저서 집필과 강연을 하면서 “이승만은 터키공화국 초대 대통령 케말 아타튀르크, 중국의 진시황, 이스라엘의 모세”라고 비유하고, “세종대왕과 맞먹는 유전자를 가졌던 인물”이라 치켜세운 것도 모자라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은 하느님과 밤새도록 씨름을 한 끝에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낸 야곱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위업”이라고도 했다. 자, 한 인물을 두고 이런 표현이 역사학자로서 이성적 판단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겠는가?그는 2008년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고 외쳤다. 대한민국을 이승만이 건국했으므로 나라를 처음 세웠다고 주장한 것이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 헌법에 분명하게 밝힌, 3·1운동 정신 계승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고 4·19혁명을 이어받는다는 헌법정신에 배치되는 것이다. 건국절 주장은 엄밀하게 말해 헌법정신을 부정한 것이다. 이승만이 헌법을 뜯어고치고, 3·15 부정선거를 저지른 사실 등을 모조리 합리화하는 견해였다.

그는 식민지 근대화론에도 깊이 빠져들었다. 이른바 일제가 사주하고 개화정권이 추진한 갑오개혁 이후, 일제 식민통치가 한국의 근대화에 밑거름이 되었다는 주장을 편 것이다. 그러면서 19세기 이후 전개된 내재적 발전론을 부정하고 타율론에 따라 우리 역사가 진행되었다는 논지를 깔면서 민족독립운동을 부정하는 작업을 벌였다. 이런 주장이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인 권희영·이명희 등에게 전수되어 교학사판 한국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더 큰 문제도 있다. 이승만은 대통령 취임 등 공식적인 국가행사에서 기독교식으로 선서를 하고 기독교를 국교처럼 받들었다. 그런데 유영익 교수는 이를 두고 “이승만 대통령의 기독교 장려정책에 힘입어 우리나라에 역사상 처음으로 기독교 정권을 창출했고 아시아 굴지의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고 기술하면서 로마제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드는 데 기여한 콘스탄티누스에 필적한다고도 했다. 이승만 정권을 기독교 정권이라고 표현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국교는 인정치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정교분리의 원칙은 우리 헌법의 기본 정신인데도 이승만과 유영익은 이를 철저하게 유린했다.

대한민국 헌법이 9차례나 개정되어 누더기가 되었지만, 임시정부 법통과 정교분리 원칙은 바뀌지 않았다. 양식 있는 기독교인들은 결코 유영익과 같은 주장을 펴지 않는다.

국사편찬위원회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공식적으로 관장하면서 사료 수집과 보존, 연구를 바탕으로 역사를 대중화하는 책무를 맡은 국가기관이다. 이 자리의 수장에는 누구보다도 학문적 객관성과 합리성을 지닌 인사가 요구된다. 더욱이 다음 세대의 역사관을 이끄는 교과서 검정 업무도 맡고 있다. 이런 곳의 수장을 유영익 교수처럼 편향적인 사관을 지니면서 민족운동을 경시하고 친일적인 인사를 찬양하는 인사로 임명해야 하겠는가?

적어도 이 자리에는 학문적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지니고 역사교육정책을 합리적으로 이끌어갈 인사가 요구되는데도 반역사적인 엉뚱한 인사를 앉히려는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 이승만에 이어 박정희의 유신 복권을 진행하려는 공작인가?

어느 인사는 국사를 예전 유신 시절처럼 국정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국사를 정치의 도구로 이용한 유신으로 돌아가자는 주장과 다름없을 것이다. 이런 정책을 추진하고 담당할 인사로 국사편찬위원장을 이용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국민화합을 위해서도 유영익 교수의 내정을 철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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