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 사태 성찰과 밀양의 교훈

박태순 | 사회갈등연구소 소장

얼마 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한국의 사회갈등지수가 터키를 제외하고 가장 높고, 경제적 비용도 82조∼246조원 정도라고 추산하며 호들갑을 떤 적이 있다. 이들은 갈등 비용은 계산하면서도 갈등이 가져온 사회적 편익은 계산하지 않았다. 갈등은 나쁜 거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미필적 고의 혐의가 짙다. 갈등의 사회적 편익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갈등을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성찰’의 기회를 갖는 것이다.

한전과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7년간 이어져온 밀양 송전탑 갈등을 통해, 자신들이 ‘무엇을 모르고’, ‘무엇을 잘못 했는지’ 알아야 한다. 이런 교훈을 얻지 못하면 한전은 망한다. 산업부 역시 그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한전이 망하는 것은 비극이고 국민은 이를 원치 않는다.

[시론]송전탑 사태 성찰과 밀양의 교훈

첫째, 이들은 형식적 논의는 알아도 실질적 논의는 모른다. 그들 말대로 수차례 협의회를 만들고 주민과 수천 번 만났다고 하지만, 대화위원회, 보상협의회, 그리고 지난달 특별보상협의회에서 확인되듯이 대안을 요구하는 핵심적 이해관계자는 늘 배제의 대상이었고, 입맛(?)에 맞는 사람만이 대화의 상대였다. 불편하지만 입장이 다른 반대자를 참여시키고, 결론이 열린 논의를 하고, 상대의 말이 옳고 보다 설득력이 있으면 수용할 줄 아는 실질적 논의는 없었다.

둘째, 이들은 같은 사안도 사람마다 ‘생각’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지난 5월 송전탑 건설을 기술적으로 검토하자며 ‘전문가협의회’를 구성했다. 찬반 간에 관점의 차이가 드러나고 쟁점이 부각되었으나 예정대로 40일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반대 의견은 묻히고 수적 우위를 앞세워 공사 강행의 명분으로 삼았다. 소중한 기회를 스스로 차단한 것이다.

셋째, 이들은 모든 갈등이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된다는 잘못된 신념을 갖고 있다. 밀양 어른들을 가장 화나게 하는 것도 이 대목이다. 자신들을 돈에 환장한 사람들로 여기는 이들의 태도에 모멸감을 느낀다. 한전과 산업부 직원들께 묻고 싶다. 당신들도 오직 돈이 지상목표이고 돈만 위해 사는가?

넷째, 이들은 반대주민을 ‘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들은 다른 입장을 갖고 반대하는 사람을 ‘불편한 상대’를 넘어 배제하고 물리쳐야 할 ‘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핵심반대 세력을 축소·배제시키기 위해 회유, 협박, 이이제이(以夷制夷), 마타도어 등 다양한 전술을 동원해왔다. 이들의 이런 잔혹한 태도가 신뢰를 무너뜨리고 갈등을 심화시켰다.

다섯째, 이들은 의사결정이 오직 자신들의 몫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사업의 필요성·정당성·타당성·적정성 등을 재검토해보자는 주민들의 주장은 언제나 무시되었다. 한전은 늘 의사결정은 산업부의 몫이고 자신들은 공사 책임만 있다고 발뺌을 해왔다. 정작 사업의 결정 주체인 산업부는 늘 한전 뒤에 숨어 배후 조종만 하며 음지에서 일한다. 이들에게 주민들은 언제나 주면 받는 의사결정의 객체, 대상이고, 수평적 논의와 합의를 통한 사업 추진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한가한 얘기일 뿐이다.

여섯째, 이들은 국가사업은 항상 선이고, 이를 막는 것은 이기주의라는 잘못된 신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밀양송전탑 사태의 본질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주민들의 지역이기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익과 국가사업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자신들의 조직적 이해를 유지·발전시키기 위해 법과 공권력을 함부로 남용하는 한전과 산업부의 조직이기주의에 있다는 것을 국민들은 알고 있다.

댐건설로 수장(水葬)될 뻔했던 영월의 비경과 갯벌은 죽고 먼지만 날리는 2억평의 새만금을 보면서, 22조원이라는 예산을 붓고 썩어 들어가는 4대강을 보면서 이제 국가사업은 항상 선이고, 이에 맞서는 것은 악이라는 잘못된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이를 깨닫는 것이 밀양의 고통이 오늘 한전과 산업부 그리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밀양에서 보여준 한전과 산업부의 잘못을 용인하고 수용할 국민은 이제 없다. 변하지 않으면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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