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시험 NEAT

신동일 | 중앙대 교수·영어영문학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이 사업 타당성이 없음에도 불필요하게 국고를 지원했다는 감사원 지적이 나왔다.

2007년 토플대란의 처방은 ‘수입품’과 맞붙을 토종시험이었고, NEAT ‘신상품’을 만들기 위해 국비를 무모하게 지원하다가 NEAT 대란까지 유도했다. 언론은 효율성과 효과성 측면에서 예산낭비, 졸속정책이라고 NEAT 정책의 책임자를 꾸짖고 있지만, 사실 지난 수년 동안 바로 동일한 이유 때문에 NEAT 시행이 부추겨졌다.

[시론]나쁜 시험 NEAT

큰 시험을 또 다른 큰 시험으로 교체할 수 있다. 그러나 시험정책만으로 교육개혁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 언어를 가르치는 곳에선 더 그렇다. 언어는 인격적이다. 언어는 보편적인 규칙이 있지만 즉흥적이면서 유희적 속성도 있다. 무서운 아빠가 근엄하게 앉아 있는 식탁에서 말장난으로 낄낄대고 싶은 아이의 입은 열리지 않는다. 힘센 시험이 버티고 있는 곳에선 언어의 창조성이 왜곡되며 언어로 존재하는 나는 위축된다. 세상에서 제일 싫지만 그래도 꼭 잘해야 하는 그놈의 ‘영어’는 시험에 관한 최악의 순간만을 떠올린다. 해리포터를 졸도하게 하는 교도관 디멘터처럼 말이다.

영어는 경쟁력이고 힘이고 돈이라고 한다. 그걸 알아도 고부담 시험정책 앞에서 영어가 자꾸만 싫어지는 건 학습부진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험을 준비하다 보면 자꾸 연필을 움켜쥘 뿐 입이 열리지 않고 문지기 언어는 너무나 진지해 보인다. 영어를 사용하고 배우기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복지나 권리의 관점에서 볼 수 없을까? 사람들은 경쟁사회에서 영어를 더 공부시켜야 하고 그래서 시험점수로 압박해야 아이들이 낙오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지나친 논리이다.

정말 빈국이라면 음악도, 미술도, 외국어 학습도 모두 사치다. 그런데 좀 살 만하면 그런 것도 공부시켜서 돈을 벌기도 한다.

그런데 더 살 만해지면 많은 사람들은 생계의 수단이 아니라도 악기를 연주하고, 운동팀에 참여하고, 외국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책을 구매하고, 동물도 보호한다. 성공의 기준은 바뀐다. 삶의 질이 보인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그저 수단이고 무기이고 또 한편으로 상품이고 권력이다.

그러나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에서는 언어는 곧 내 정체성이다. 재미가 되고 위로가 된다. 언어를 통해 치유하고 스토리로 다른 삶을 공감한다. 전 지구적 공동체를 아름답게 탐색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회적 자원이 되기도 한다. 세계적인 경제강국이 된 한국은 여전히 외국어가 발톱이고 이빨이어야 하는가? 말을 공부하고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더 말랑말랑해진다고 우린 가난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해야 우리가 더 잘살 수 있다.

NEAT는 이제 나쁜 시험으로 찍혔다. 그래서 그걸 폐기하자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이항대립도 그만두자. 상황은 변할 것이다. 오용된 NEAT는 다시 선하게 해석될 수 있다. 시험을 앞세워 현장을 변화시키겠다는 고부담 정책만 우선적으로 폐기하라. 영어시험에 힘을 너무 실어주지만 마라. 힘이 실리면 서둘러 그리고, 더 효율적으로 영향력을 갖거나 수익모형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수입과 토종으로 대립시켜야 했고, 5년 만에 토플 수준의 시험을 만든다고 호언해야 했다. 인터넷 강국이니 멀티미디어 기반으로 시험 시행이 가능하다고 장담했고, 수능을 대체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수백억원을 쏟아부으며 배운 교훈이라고 치고 이제부터 정신 차려라. 시험환경부터 보수적으로 운영해라. 근사하게 컴퓨터 앞에서 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 시행보다 더 중요한 건 준비하는 학생이고 교사이다. 부모이고 자녀이다. 돈이 덜 들면서도 말하기-쓰기능력을 평가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고 누군가 우긴다면 그들은 장사꾼일 뿐이고 언어로 시험으로 그저 정치하는 사람들일 게다. 그들을 더 이상 믿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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