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의 인사말

김태일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번 선거를 지휘했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의 개표 후 인사말이 이번 선거 과정과 결과의 성격을 압축 설명하고 있다. 밤이 이슥하여 승패가 모습을 드러내자 이낙연이 카메라 앞에 섰다. 정치적 앞일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해서 귀 기울여 봤다.

[시론]이낙연의 인사말

그는 “국난에 잘 대처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잘 받들었다”는 말로 승리를 설명했다. 그리고 “저희 당을 지지하지 않으신 국민 여러분의 뜻도 헤아리며 일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낙연다운 정치적 사려가 묻어나는 인사말이었다.

사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파도가 우리를 덮치기 전까지 선거 환경은 집권여당에 녹록지 않았다. 점점 더 나빠지는 경제상황과 사회적 격차의 확대, 수그러들 줄 모르는 정치적 갈등은 문재인 정부가 감당해야 할 수월치 않은 짐이었다. 이번 국회의원 총선거는 이런 것들에 대한 설명 책임을 정부·여당에 추궁하는 회고적 평가 선거였던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라는 국가위기는 중간평가라는 선거의 성격을 바꾸어놓았다. 이번 선거는 이례적으로 회고적 평가가 아니라 당면한 위기관리라는 현안과 이로 파생된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전망에 대한 평가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코로나19 위기는 문재인 정부가 만든 것이 아니라 ‘덮쳐온’ 위기였기 때문에 더더욱 회고적 평가의 대상이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은 초기에 조금 미숙했던 대목을 제외하고 적실했다. 국가가 적극 개입하면서도 투명성과 개방성을 기초로 한 우리 나름의 방역모델을 성공적으로 만들어갔다. 봉쇄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도 치밀하고 광범위한 검사와 체계적 감염자 추적 및 격리 등을 통하여 상황을 관리했다. 국제사회는 이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기에는 사실 이전 정부 시기부터 시행착오를 거쳐 축적한 지혜의 성과도 적지 않았다. 국민건강보험이라는 제도의 힘, 민간의료 자원의 기민한 공공전환 등이 그런 것들이었다. 국민들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공동체 의식도 소중한 자산이었다. 어쨌거나 이 모든 것들의 정치적 수혜자는 현 집권여당이었다. 집권여당은 적절한 정치적 절제를 통해 그것을 신뢰의 자산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낙연이 말한 두 번째 메시지 “저희 당을 지지하지 않으신 국민 여러분의 뜻도 헤아리며 일하겠다”고 한 과제는 간단치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이 과제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때도 기치로 내세웠으나 잘 지켜지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모든 국민의 정부라는 선언에도 불구하고 집권여당의 권력운용은 그 폭이 협애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급기야 촛불의 상징적 자산을 독점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그 원인이 막무가내인 보수야당에 기인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발목 잡는 야당’이라는 항변은 이유가 있는 것이었지만 집권여당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쪽이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로서는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청와대가 정치적 적대의 원인자라는 말까지 듣게 되고 청와대정부를 바꾸지 않으면 정치적 타협과 평화를 실현할 수 없다는 모진 소리까지 감당해야 했다.

거대 여당은 모든 국민의 정당, 모든 국민의 정부라는 과제 실현에 관한 실험대에 오른다. 왜냐하면 권력의 본질적인 속성 때문이다. 큰 덩치가 안정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민주화 이후 모두 아홉 번의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는데 민주당 쪽이 원내 1당이 된 것은 이번이 겨우 세 번째다. 그런데 지난 20대 국회는 과반에 이르지 못하는 원내 1당이어서 고생을 했다. 그러나 2004년 선거에서 과반을 차지했던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은 커진 덩치를 주체하지 못해서 좌충우돌하다 국민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았다. 덩치가 크면 좋은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번 선거에서 많아진 집권여당의 의석은 걱정거리도 수반하고 있다. 야당을 잘 설득하지 않을 가능성이다.

이러한 걱정거리를 해결할 수 있는 원리는 민주주의다. 초라하고, 그래서 더 사납고 민감해질 수 있는 정치적 상대를 잘 설득할 수 있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를 관용의 덕목이라고 한다.

“저희 당을 지지하지 않으신 국민 여러분의 뜻도 헤아리며 일하겠다”고 한 이낙연의 인사말은 그래서 일단 안심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낙연 개인의 정치적 교양이 아니라 권력의 본질적 성격이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이루는 관건이라는 점을 덩치가 커진 집권여당은 특별히 유념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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