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땅밟기, 지신밟기

김태관 논설위원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사람의 종교는 무얼까. “언젠가 경주 석굴암에 가서 넋을 잃고 불상을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한 시간 이상을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뭔가에 깊이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이 사람은 로마 바티칸에서 세계적 미술품인 성상(聖像)을 봤을 때도 한 작품을 5분 이상 쳐다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내 안에 불교적인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몸에 불교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이 사람은 불교도일까. 의외일지 몰라도, 이 발언의 주인공은 김수환 추기경이다.

[여적]땅밟기, 지신밟기

김 추기경은 다른 종교에 대해 꽤 개방적이었다. 개신교 강원룡 목사와의 대담에서 그는 “우리 고유의 것은 버릴 수 없으며, 이는 결코 종교 혼합주의가 아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크리스천 아카데미의 ‘대화’ 잡지 1976년 1월호에 실린 내용이다. “바티칸공의회의 교령에서도 다른 종교와의 대화를 중시합니다. 타 종교 안에 있는 아름다운 것, 올바른 것, 선한 것들은 무조건 배척할 일이 아니지요.”

타 종교에 대해 기독교인들은 대체로 완고하다. 같은 잡지에서 강 목사가 밝힌 일화다. 1966년 한국의 6대 종교 지도자들이 대화 모임을 갖고 종교인협의회를 만들기로 했다. 이것이 신문에 보도되자 기독교인들이 들고 일어났다. 기독교 측에서는 “다른 종교인들을 개종시키는 목적이 아니면 참가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반면 불교는 “인류를 위한 일이라면 불교가 기독교에 흡수돼 없어져도 좋다”는 입장이었다. “십자가 정신은 오히려 스님들에게 더 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강원룡 목사의 씁쓸한 회고다.

땅밟기 동영상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개신교 신자 몇몇이 서울 삼성동 봉은사 법당에 들어가 “이곳은 하나님의 땅”이라며 ‘땅밟기 기도’를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의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아이고, 아버지….” “땅밟기 한다고 봉은사가 교회됩니까.” “어리석은 몇 명이 100만 안티 부르네.” “땅밟기와 무속의 지신(地神)밟기는 뭐가 다르지요?” 이 모두가 기독교인들의 댓글이다. 그중에서도 어느 목사의 개탄이 눈을 찌른다.

“얼빠진 이들이 기독교를 미신으로 만들어 버렸다. 생각해 보라. 땅밟기 한다고 절이 무너지는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성경 구절은 사유(思惟)할 줄 안다는 뜻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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