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일본의 정교분리

서의동 논설위원

일본 고유종교인 ‘신도(神道)’는 일본인들의 생활 속에 깊게 뿌리박고 있다. 동네마다 한 곳 이상 신사(神社)가 있어 주민들이 가볍게 들러 복을 빌 수 있다. 매년 동네별로 열리는 축제 마쓰리(祭り)도 신사가 중심이다. 마쓰리의 목적이 ‘신을 찬양하며, 신과의 교류를 통해 오곡풍성, 상업번창, 이웃이나 가족의 번영을 기원하는’(일본 정부 관광국) 것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신사에 보관된 미코시(神輿·가마)를 메고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것이 마쓰리의 핵심이기도 하다. 마쓰리는 대체로 동네 상인들이 주축이 되고 주민들도 준비 단계부터 적극 참여한다. 일본의 마을공동체가 여전히 결속력을 유지하는 데 신도가 톡톡히 한몫하는 셈이다.

군국주의 시대 신도는 국가종교였다. 신사 숭배가 국민의 의무였고, 신궁요배(神宮遙拜·신궁 쪽을 향해 참배함)가 일상화됐다. 신도는 전장에 나가는 일본인들의 영혼을 마취했다. 군인들은 전우들과 “죽어서 야스쿠니에서 만나자”고 다짐했고, 어머니들은 “아이가 죽어 천황(일왕)님께 쓰여 기쁘다”고 했다. 야스쿠니신사가 아들을 군신(軍神)으로 거두면서 아들을 잃은 부모의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었다. 그 죽음이 신의 후손인 일왕을 위한 것이었으니, 영광이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본을 점령한 연합국사령부가 정교분리(政敎分離)에 착수한 것은 이런 폐해 때문이다. 이듬해인 1946년 1월1일 히로히토 일왕이 신격(神格)을 부인하는 ‘인간선언’을 함으로써 정교분리 작업이 본격화됐지만 말끔히 청산되지 않으면서 불씨를 남겼다. 일본 헌법은 ‘국가 및 그 기관이 종교활동 및 종교단체에 공금을 지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전후 일본 총리들은 버젓이 야스쿠니신사에 공물을 보냈다.

22일 열리는 나루히토(德仁) 새 일왕의 즉위식을 계기로 ‘정교분리’ 위반 논란이 고개를 들고 있다. 다이조사이 등 즉위 의식들이 종교색이 짙은데도 아베 정부가 국가예산을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패전 이후 ‘상징 천황제’로 바뀌었지만 왕실 의식 중 상당수가 과거 전례를 답습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일본인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모르지만, 일본 군국주의의 폭주에 시달렸던 주변국들은 불편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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