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깐부

이용욱 논설위원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주인공 성기훈(오른쪽·이정재)과 오일남 할아버지(오영수).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주인공 성기훈(오른쪽·이정재)과 오일남 할아버지(오영수). 넷플릭스 제공

50대 이상 중장년층 가운데 상당수는 어린 시절 딱지치기나 구슬치기 할 때 쓰던 ‘깐부’라는 말을 기억한다. 놀이자산을 함께 관리하던 가장 친한 친구를 일컫는 은어다. 친구와 깐부를 맺고 다른 깐부 동맹의 딱지와 구슬을 싹쓸이하는 건 남다른 재미였다. 기원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평안도 방언이라는 설, 소규모 재즈밴드를 뜻하는 캄보(combo)가 미8군을 통해 민간에 퍼졌다는 설 등이 있다. 지역이나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깜보·깜부 등도 같은 뜻으로 통했다. 1986년 만들어진 영화 <깜보>는 배우 김혜수·박중훈의 데뷔작으로 회자된다.

추억의 은어 ‘깐부’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소환됐다. 구슬을 모두 뺏는 사람이 이기는 구슬치기 게임에서 오일남 할아버지(오영수)는 주인공 성기훈(이정재)에게 하나 남은 자신의 구슬을 건네며 “우린 깐부잖아”라고 한다. 목숨 건 상황에서도 동료와의 연대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장면의 울림은 컸다. 미 경제지 포브스는 깐부 이야기를 다룬 6화를 두고 “올해 본 TV 프로그램 에피소드 중 최고”라고 했다. 깐부는 전 세계적 유행어가 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넷플릭스는 지난 5일 공식 트위터 계정에 <오징어 게임> 속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한 장면과 함께 ‘깐부(gganbu)’를 언급한 트윗을 올려 화제를 모았다. 이대로라면 깐부는 K콘텐츠의 성공 사례로 사전에 등재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유력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10일 페이스북에서 홍준표 의원을 향해 “홍 선배님! 우리 깐부 아닌가요. 치열하게 경쟁은 하되 품격 있게, 동지임을 잊지 말고, 과거에서 빠져나와 미래로 향하자”고 했다. 홍 의원이 전날 “범죄공동체를 국민과 각 당의 당원들이 지지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며 윤 전 총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함께 공격하자, 돌려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홍 의원은 “동지는 동지를 음해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경선 과정에서 거친 말을 주고받던 두 사람 사이에서 갑자기 ‘깐부’라는 말이 등장한 건 뜬금없다. 깐부는 정서적 동질감을 전제로 한 사이다. 정권교체란 목표를 공유한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깐부로 칭하다니, 드라마의 감동이 퇴색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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