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가난해지는 영국

안호기 논설위원
영국 수도 런던 중심가의 한 남성복  매장에 ‘폐업 세일’ 알림이 붙어있다. 영국 중앙은행은  2023년 말까지 영국의 경기 후퇴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런던/EPA·연합뉴스

영국 수도 런던 중심가의 한 남성복 매장에 ‘폐업 세일’ 알림이 붙어있다. 영국 중앙은행은 2023년 말까지 영국의 경기 후퇴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런던/EPA·연합뉴스

영국은 한때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 식민지를 보유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다. 티머시 파슨스는 <제국의 지배>에서 1815~1914년 영국 영토가 2600만㎢라고 썼다. 지구 표면적의 30%가량인 1억5000만㎢가 육지인데, 이 중 도시와 마을, 농지 등 사람이 사는 땅은 절반뿐이다. 당시 인류 거주지의 3분의 1이 영국 땅이었던 셈이다. 1921년 통계에서는 당시 세계 인구의 4분의 1인 4억여명이 영국 및 식민지에 살고 있었다.

영국의 영토가 줄어든 지는 오래지만, 버텨오던 경제마저 최근 악화하고 있다. 시장조사회사 GfK는 영국의 8월 소비자지수가 전달보다 3포인트 하락한 -44였다고 19일 발표했다. 거의 50년 만의 최저치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0.1% 폭등했다. 주요 7개국(G7) 가운데 유일하게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한 것이다. 2분기 성장률은 -0.1%였고, 실질임금은 역대 최대폭인 3% 하락했다. 최근 실시된 설문조사에서는 영국 성인의 16%가 지난 6개월간 지출을 아끼려고 정기적으로 끼니를 건너뛰었다고 답했다. 50%는 외식을 줄였고, 39%는 가게에서 물건이 비싸 도로 내려놓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GfK 관계자는 “영국 가계는 치솟는 생활비에 대해 분노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소비심리가 급락했다”고 말했다.

국내총생산(GDP) 세계 5위의 영국 경제가 ‘퍼펙트스톰’에 직면했다.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로 해외 노동력이 빠져나가고 수입물가는 상승했다. 코로나19 확산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급망에 차질이 생기고 에너지 가격은 급등했다. 영국 연료빈곤종식동맹은 “내년 초 영국 전체 가구의 30%인 1050만가구가 빈곤가구로 전락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덴마크 은행 삭소뱅크는 “영국 경제는 부서졌다. 마치 개발도상국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 악재가 쌓이는데도 해결에 나서야 할 영국 정치는 공백 상태다. 퇴임을 앞둔 보리스 존슨 총리는 최근 그리스로 휴가를 떠났다. 닷새간 슬로베니아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지 2주 만의 휴가다. 차기 총리로 유력한 리즈 트러스 외교장관은 감세를 통한 경기부양을 공약하고 있지만 재정적자 급증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해가 뜨지 않는 나라’라는 슬픈 조롱이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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