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종이학과 구호품

차준철 논설위원
지난 12일 인천의 한 물류센터에 전국 각지에서 모인 튀르키예 지진 구호품이 쌓여있다. 연합뉴스

지난 12일 인천의 한 물류센터에 전국 각지에서 모인 튀르키예 지진 구호품이 쌓여있다. 연합뉴스

종이학은 일본 종이접기의 가장 고전적인 형태다. 일본에서는 건강과 장수, 안녕과 평화를 상징하는 일종의 미신으로 통한다. 종이학 1000마리를 접어 실로 꿴 것을 ‘센바즈루’(千羽鶴)라고 하는데 지금도 병문안을 갈 때 선물로 종종 쓰인다. 그동안 지진·폭우 피해 지역에 종이학을 접어 보낸 일도 많았다. 코로나19 종식을 기원하는 단체 종이학 접기도 나타났고,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당시 주일 우크라이나 대사관에도 수천마리의 종이학이 쇄도했다. 1980~1990년대 한국에서도 종이학 선물이 한때 유행했으나, 일본의 종이학 애착은 유별나 보인다.

최근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참사 현장에도 종이학을 보내는 움직임이 일자 ‘제발 보내지 말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일본 내에서 나왔다. 튀르키예에 긴급 구호팀을 파견한 일본 비영리단체 측이 “상황이 안정된 후라면 몰라도, 빵과 물도 없는 지금 시기에 종이학은 처치 곤란”이라며 “신속히 쓰임새를 바꿀 수 있는 현금을 보내는 게 가장 좋다”고 밝혔다. 종이학 보내기는 상대방을 배려하기보다 자기만족을 위한 행동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국내에서도 구호물품 기부가 이어지는 가운데 주한 튀르키예 대사관 측이 “중고 물품은 받지 않는다”고 공지했다. 현지 보건의료 체계가 무너진 상황에서 중고품이 전해지면 세균 등에 의한 위생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신 상하지 않는 음식, 옷, 텐트, 침낭, 히터, 배터리, 보온병 등을 요청했다. 아울러 대사관 측은 서울의 ‘글로벌 비즈니스 얼라이언스’라는 단체가 구호품과 성금을 모집한다고 하는데 대사관과 아무 관련이 없는 곳이라고 알렸다. 가짜에 속지 말고 신뢰할 수 있는 기관·조직을 통해 기부해 달라는 것이다.

강진이 덮친 지 일주일 지난 현재 튀르키예·시리아 양국의 사망자가 3만7000명을 넘어섰다.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전하는 일도 물론 중요하다. 다만, 받는 쪽 입장을 한 번 더 헤아리면 좋겠다. 지난 11일부터 전국에서 취합된 튀르키예 구호품 40t 중에 때묻은 옷, 신발 한 짝, 낡은 전열기 등 당장 버릴 물건이 10%쯤 된다고 한다. 종이학이 차라리 낫겠다. 행여나, 주는 대로 받으면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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