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전쟁 먹고 자라는 IS

정유진 논설위원

이언 매캐리 미 국무부 대테러국 특사가 지난 21일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에서 ‘이슬람국가(IS) 궤멸’ 5주년 기념 연설을 했다. 그는 “2019년 3월23일 연합군은 IS의 마지막 영토를 해방했으며, 이는 IS가 다시는 부활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이정표였다”고 말했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공연장에서 IS 내 가장 큰 분파인 호라산(IS-K)의 소행으로 알려진 끔찍한 테러가 일어나 130여명의 목숨이 희생된 건 바로 그 다음날이었다.

한때 시리아의 3분의 1, 이라크의 40%를 통제하며 위세가 대단했던 IS가 패퇴한 건 미국 주도 연합군과 이란·러시아가 ‘IS 격퇴’라는 같은 목표를 갖고 각자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IS의 부활은 각자 이익을 위해 두 개의 전쟁을 치르느라 여념이 없는 지금의 갈라진 세계 지형과 무관치 않다.

미국이 중국 견제에 총력을 기울이려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성급히 발을 빼지 않았더라면, IS-K가 아프간을 발판 삼아 다시 날개 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가자지구 전쟁으로 중동 정세가 이렇게 혼미하지 않았더라면, 존재감 과시에 목마른 IS-K가 감히 지난 1월 이란 한복판에서 자살폭탄 테러를 저지르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이리 쉽게 모스크바 심장부가 뚫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러시아 정보기관의 관심은 온통 새로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 관리에 쏠려 있었다. 모스크바를 겨냥한 테러 계획이 임박했다는 미국의 경고까지 “우리를 겁주려는 적들의 교란작전”으로 일축해버렸다. 러시아 경찰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 추모자와 반전 운동가를 색출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너무 바빴다.

두 개의 전쟁으로 세계가 양분된 지금이 IS 위협에 가장 취약한 순간이다. 대테러 활동은 뒷전으로 밀리고, 오히려 테러는 전쟁을 부채질할 기회로 이용된다. 러시아는 IS-K 소행 가능성이 높은데도, 별다른 근거 없이 “우크라이나가 저지른 일”이라고 전쟁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삼으려 한다. 전쟁의 비극이 계속되는 세상에서 이제 민간인들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를 테러 공포까지 떠안게 됐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무차별 테러가 벌어진 러시아 모스크바 북서부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이 화염에 휩싸여 있다. 타스연합뉴스

지난 22일(현지시간) 무차별 테러가 벌어진 러시아 모스크바 북서부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이 화염에 휩싸여 있다. 타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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