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伊 ‘붉은 여단’ 창설

유신모기자

모로 前총리 살해 ‘세계 경악’

1978년 3월 이탈리아 수도 로마의 중심가에서 영화와 같은 장면이 벌어졌다. 의회의사당으로 향하던 알도 모로 전 총리의 승용차가 백주 대낮에 무장괴한들의 습격을 받은 것이다. 괴한들은 순식간에 경호원 5명을 사살하고 모로 전 총리를 납치했다.

당시 기민당 당수였던 모로 전 총리는 총리를 5차례 역임하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이사회 의장을 지낸 이탈리아의 거물 정치인이었다. 테러 역사상 길이 남을 만큼 대담무쌍한 납치사건을 감행한 무장괴한들은 이탈리아의 극좌 과격파 테러조직 ‘붉은 여단’ 소속이었다.

붉은 여단은 모로 전 총리를 납치한 뒤 교도소에 수감된 동료 테러리스트 15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모로 전 총리는 테러단 조직원들의 강요로 거의 매일 정부에 협상을 촉구하는 편지를 썼다.

[어제의 오늘]1970년 伊 ‘붉은 여단’ 창설

그러나 이탈리아 정부는 물론 기민당에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정부의 냉담한 협상 거부로 모로 전 총리는 납치된 지 55일 만에 가슴에 11발의 총탄을 맞은 채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모로 전 총리는 이탈리아의 대표적 우파였지만 공산당과의 연정을 성사시키고 좌파세력을 제도권정치로 흡수한 노련한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그는 좌·우파 모두로부터 의심을 받았다. 정치권이 그를 구명하는 데 냉담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모로 전 총리는 자신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했다. 그가 보낸 마지막 편지에는 “기민당의 누구도 내 장례식에 오지 말라”고 적혀 있었다.

모로 전 총리의 납치·살해는 붉은 여단의 존재감을 전 세계에 알린 상징적 사건이었지만 붉은 여단은 이보다 훨씬 전인 70년 11월28일 창설됐다. 북이탈리아 토렌토에서 좌파 사상단체로 출발한 붉은 여단은 창설과 동시에 테러를 시작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폭력혁명으로 이탈리아 정부를 붕괴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극좌 노선을 걸었다.

모로 전 총리를 살해할 당시 붉은 여단은 500명 이상의 테러대원을 보유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들은 80년대 후반부터 지휘부의 붕괴로 세력이 크게 약화됐으며, 이탈리아 당국의 대대적인 소탕작전 속에서도 방화·납치·요인 암살 등 테러행위를 계속하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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