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군대가 국민 무서운 줄 몰라”

유설희 기자

30년 전 ‘정보사 기자테러’ 대담회 여는 당시 피해자, 전 중앙경제 사회부장 오홍근씨

장성급 부대장이 장교들 시켜 계획적 범행…사령관에 보고까지

예편 사령관, 공기업 낙하산…공개사과 권고 불구 군 당국 ‘침묵’

DJ정부 시절 초대 국정홍보처장을 지낸 오홍근씨가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30년 전인 1988년 8월6일 국군정보사령부가 저지른 ‘오홍근 기자 테러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DJ정부 시절 초대 국정홍보처장을 지낸 오홍근씨가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30년 전인 1988년 8월6일 국군정보사령부가 저지른 ‘오홍근 기자 테러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DJ정부 시절 초대 국정홍보처장을 지낸 오홍근씨(76)는 30년 전인 1988년 8월6일을 잊을 수 없다. 이날 오전 7시30분쯤, 당시 중앙경제신문 사회부장이던 그는 출근하려고 서울 강남구 청담동 자택을 막 나서던 길이었다. 어디선가 건장한 체구의 괴한 4명이 갑자기 나타났다. 그들은 “대공에서 조사할 것이 있으니 같이 가자”며 오씨를 제압한 후 그의 왼쪽 허벅지를 흉기로 찔렀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었어요. 왼쪽 다리가 허벅지부터 발끝까지 붕대로 칭칭 감겨 있더군요. 길이 34㎝, 깊이 3~4㎝ 자상을 입은 거예요. 병원에서 35바늘을 꿰맸더라고요. 아직도 흉터가 남아 있습니다.”

국군정보사령부의 ‘조직적 범행’이었다. 아파트 경비원이 사건 발생 며칠 전부터 아파트 주변을 맴돌던 수상한 포니2 차량번호를 적어둔 덕분에 꼬리가 잡혔다.

국방부 수사 결과 ‘월간중앙’에 연재되는 오씨의 칼럼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에 불만을 품은 정보사령부 제701부대장 이규홍 준장이 “악의적인 군 관련 기사를 함부로 쓰면 보복당한다는 경각심을 줘야 한다”며 박모 소령, 안모 대위 등 부대원 5명에게 범행을 지시한 것이었다. 또 참모장 권기대 준장은 범행에 사용된 차량 운행기록을 없애라고 지시하는 등 사건을 은폐했고, 이진백 정보사령관은 이 같은 사실을 보고받고도 묵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상부까지 가담한 계획범죄였던 겁니다. 아파트로 침입해 가족 몰살, 퇴근길에 살해, 출근길에 상해를 입히는 것 등 3안이 있었다고 이규홍 준장이 법정에서 진술했어요. 정보사가 아파트 평면도까지 입수하고, 5번 넘게 사전답사를 했다는 것도 다 밝혀졌어요. 모시고 살던 노모까지 일가족을 몰살하려 했다는 건데 지금도 소름이 끼칩니다.”

그러나 군 검찰은 이 준장, 박 소령, 안 대위만 구속 기소하고 나머지는 불기소하는 등 꼬리 자르기식 수사를 했다. 군 법원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고 젊음을 몸담아 온 군을 아끼고자 한 단순한 충정”이라는 이유를 들어 이 준장, 박 소령, 안 대위에게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이진백 정보사령관, 권기대 준장은 지휘 책임을 물어 예편조치됐다.

오씨는 최근에야 이진백 정보사령관이 전역 후 당시 공기업인 대한중석(현 대구텍 전신) 사장에 선임되고, 박 소령과 안 대위가 사건 3년 후인 1991년 정보사 군무원 특채로 복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한중석 사장은 국회의원, 장관 등 이른바 ‘끗발’ 있는 인사들이 가던 자리였다. 당시 범행에 쓰인 포니2 운전병이 최근 오씨에게 전화를 걸어와 이 사실을 알려줬다.

“어느 날 자기 차가 없어져서 ‘내 차 어디 갔느냐’고 하니까 작전을 나갔다는 거예요. 나중에 차량 점호할 때 보니까 페인트칠을 해놓고 번호판도 바뀐 거예요. 이 친구가 (가해자들이) 선고유예 받고 풀려나는 걸 보면서 의기에 몸을 떨었는데, 정보사령관은 공기업 사장까지 하고 승승장구하는 걸 보니 기가 막혔던 거죠. 어떻게 세상에 이럴 수 있냐고 분통을 터뜨리더라고요.”

오는 6일은 ‘오홍근 테러사건’이 발생한 지 30년이 되는 날이다. 하지만 오씨는 지금껏 사과 한마디 듣지 못했다.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신군부 언론통제 사건 조사결과 보고서’에서 “언론인 오홍근 등 군에 악의적인 글을 언론에 게재하였다고 군에서 판단한 경우, 그와 같은 글을 쓰면 보복당한다는 경각심을 주기 위해 그들에게 테러를 가했다”면서 “공개 사과를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정부와 군 당국의 사과는 없었다.

30년이 흘러도 반성하지 않는 군사문화를 고찰하기 위해 6일 언론인 후배들이 모인다. 후배들은 ‘88 언론테러 기억모임’을 구성해 이날 오후 5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오홍근 테러 30년, 군사문화는 청산되었나’를 주제로 대담회를 연다. 패널로 오씨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김종대 정의당 의원 등이 참석한다. 군사문화를 비판한 칼럼 등을 엮은 오씨의 저서 <펜의 자리, 칼의 자리> 출판기념회도 겸한 행사다.

오씨는 최근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 문건과 관련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그는 “군사문화라는 DNA가 사회 밑바닥에 여전히 깔려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안사령부는 기무사의 전신입니다. 그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일으킨 12·12 쿠데타를 연상시키는 게 이번 기무사 문건입니다. 세부 행동 계획까지 이 정도 디테일이 나온 것을 보면 국방부 장관 혼자 했다는 것이 말이 안되죠. 한마디로 ‘국민의 군대’여야 하는데 ‘군대의 국민’ 하자는 겁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군대가 국민 무서운 줄 모르고 여전히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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