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원 파악 어려운 개인 접촉 감염 늘어…“작년 1년보다 최근 4개월간 더 많이 일해”

이창준 기자

서울 광진구보건소 역학조사관 민정란·조승희씨

서울 광진구보건소 소속 역학조사관 민정란씨(왼쪽)와 조승희씨.  이창준 기자

서울 광진구보건소 소속 역학조사관 민정란씨(왼쪽)와 조승희씨. 이창준 기자

판단 쉽지 않은 자가격리 범위
그 울타리 안에서 확진자 나와
감염 경로 차단됐을 때 큰 보람

밤 10시 이전 일 마무리 드물어
코로나 최전선 지킴이 자부심
백신 맞아도 방역 수칙 지켜야

“얼른 들어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새 확진자가 3명이나 나왔네요.”

지난 15일 오전, 서울 광진구보건소에서 역학조사관으로 일하는 민정란씨(41)는 인터뷰가 진행되는 1시간30분 동안 쉴 새 없이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지금 안에서는 난리예요. 1시간만 (인터뷰)한다고 하고 나왔는데….” 오전에 관내 확진자가 예상보다 많이 나와 빨리 돌아가 확진자 정보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민씨는 “광진구는 원래 확진자가 적은 편에 속했는데 최근 서울에서만 확진자가 200명 넘게 꾸준히 발생하면서 광진구에서도 확진자가 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7월부터 새로운 거리 두기 체계를 적용하면서 사적모임 인원을 확대하는 등 일부 방역수칙을 완화해 적용하겠다고 했다. 유행세가 더 커지지 않는 데다 고위험군에 대한 백신 접종을 상당 부분 마쳐 위기를 한고비 넘겼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불안했다. 감염병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역학조사관들은 “작년 1년보다 지난 4개월 동안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민씨의 하루는 오전 8시30분 출근 후 관내 코로나19 확진자를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보건소 직원들과 함께 확진자의 기본 정보를 파악하고 시간대별 동선을 정리한다. GPS 정보와 폐쇄회로(CC)TV, 카드 사용 내역 등을 토대로 확진자의 세부 동선을 추적하고 접촉자를 분류한다. 필요하면 직접 현장에 나가 방역망을 점검하기도 한다. 밀접접촉자에게 자가격리 사실을 통보하는 것도 민씨의 일이다. 보고서까지 작성하고 나면 그날의 일이 끝나는데, 오후 10시 이전에 마무리되는 경우는 드물다.

사정은 다른 역학조사관도 마찬가지다. 같은 보건소에서 역학조사관으로 근무하는 조승희씨(28)는 결혼한 지 1년 남짓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신혼을 즐긴 기억이 거의 없다. 아침 일찍 출근해 자기 전에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하다보니 가족과 따로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조씨는 “역학조사관들 대부분이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고 있다”며 “주 6일 근무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정부는 현장의 고충을 감안해 지난해 말 325명이던 역학조사관 수를 올해 60명 많은 385명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보건소에서 보건 사업을 담당하던 민씨와 종합병원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하던 조씨도 이 같은 방침에 따라 지난 2월 역학조사관으로 배치됐다.

그럼에도 현장에선 여전히 ‘인력이 모자란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씨는 “역학조사관 한 명당 하루 4~5명, 많게는 10명의 확진자를 한꺼번에 조사해야 한다”며 “현재 인력 상황으로는 야근과 주말 근무도 불가피할뿐더러 여러 확진자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적하다보니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역학조사관들은 현재 국내 코로나19 상황이 “결코 안정적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12월 3차 유행 당시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집단감염이 속출하던 한 달 정도의 기간을 제외하면 오히려 올해 코로나19 상황이 훨씬 좋지 않다고 했다.

조씨는 “지난 2월 광진구의 누적 확진자 수는 600명 수준이었는데 4개월 만에 1500명대(26일 오후 6시 기준 1623명)까지 늘었다”며 “유행이 오고 감에 따라 확진자 발생이 주춤할 때도 있었던 작년과 달리 확진자가 몇 달 동안 꾸준히 발생해 지역사회 감염원이 쌓인 것 같다”고 말했다. 유행 양상이 집단감염 중심에서 개인 접촉에 따른 감염 위주로 바뀌면서 감염원을 쉽게 추적하기 어려운 것도 부담이다. 조씨는 “개인 간 접촉으로 인한 감염은 집단감염에 비해 업무량은 적지만 감염원을 파악하기 어렵다”며 “이들이 모이면 집단감염으로 터지는 경우도 많아 오히려 대처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백신 접종이 충분히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7월부터 완화된 거리 두기 체계가 적용되면 유행이 재확산될 우려도 있다. 민씨는 “백신 접종자가 늘면 확진자가 감소할 수도 있지만 쉽게 마스크를 벗는 등 방심하는 사이에 더 유행할 가능성이 있으니 개인 방역수칙을 잘 지켜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역학조사관들은 ‘내 판단으로 감염경로가 차단됐다’는 것이 확인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민씨는 “지난 4월 한 스포츠시설에서 누적 50명의 집단감염이 발생했을 때 논문 자료까지 찾아 자가격리 범위를 결정했고, 딱 그 울타리 안에서만 확진자가 나왔다”며 “그럴 때면 ‘나도 뭔가를 하고 있다’는 짜릿함이 든다”고 말했다.

가족들에게는 늘 미안하다. 퇴근시간이 늦는 민씨는 중학생 아들의 끼니를 매번 배달 음식으로 챙겨줄 수밖에 없다. ‘역학조사관이 코로나19에 걸리면 안 된다’는 이유로 본인뿐 아니라 남편도 사적모임을 갖지 못하도록 단속한다. 지방에 계신 어머니는 지난해 아버지 제사 이후로 한 번도 뵈지 못했다.

“가족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저희 엄마는 딸이 이런 시기에 보건소에서 코로나19와 싸우는, 중심적인 업무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해하세요. 제가 감염병 현장에서 버틸 수 있도록 하는 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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