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를 머리 속에서 지워라”···강성 당원 요구에 호응하는 민주당

김윤나영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더불어민주당의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강경 발언이 쏟아지고 있다. 국회의장과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 후보들도 강성 당원들의 요구에 호응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당원 중심 민주당’을 선언하면서 22대 국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강성 당원들에게 휘둘리는 풍경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여권과의 협치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협치를 머리 속에서 지워라”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경선에 출마한 추미애 전 민주당 대표는 24일 CBS 라디오에서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고 밝혔다. 추 전 대표는 “지난 정권에서 끌려다니다가 검찰총장의 검찰권력 사유화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검찰 쿠데타가 목전에 다가왔는데도 막아내지 못하고 국민이 고통을 당했다”며 “검찰 쿠데타에 대해 협치라는 이유로 끌려다닌다면 끌려다니다가 끝난다. 그래서 (국회의장이) 제대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의장 경선에 출마한 조정식 전 민주당 사무총장도 이날 MBC 라디오에서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서 처리를 해야 하겠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인 민형배 의원도 지난 22일 <오마이뉴스> 기고에서 “협치라는 단어를 머리 속에서 지워야 한다”며 “협치를 대여 관계의 원리로 삼는 건 192석을 만들어준 총선 결과를 배반하는 행위”라고 했다. 민주당 강성 의원 모임 처럼회 소속 김용민 의원은 지난 2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총선 민심은 협치가 아니라 책임정치가 우선”이라고 적었다.

“당심도 반영되는 국회의장”

당내에선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추 전 대표는 이날 “당심도 반영되는 국회의장을 뽑아야 된다”며 “사전에 후보군을 선발할 때 당심에다 물어볼 수는 있다”고 말했다. 국회의장 경선에 돌입하기 전에 의장선거 후보군을 당원투표로 걸러내자는 것이다.

원내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한 박찬대 최고위원도 지난 19일 이재명 대표와 함께 출연한 민주당 유튜브 방송에서 당원들을 향해 “당대표도, 원내대표도, 국회의장도 다 당원들이 뽑게 해달라고 했다. 국회의원들의 주인이 여러분(당원)들이지 않나”라며 “좀 더 직접적으로 뽑을 수 있는 방안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 강성 당원들은 의장 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뽑으라고 의원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 대표 온라인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에는 ‘추미애 전 대표를 의장으로 뽑으라’는 문자메시지를 지역구 의원들에게 보냈다는 인증글이 올라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나 윤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 특별검사도입법안 등을 밀어붙여줄 의장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당원 중심주의’ 이재명 대표는 방조

당내에선 이 대표의 당대표직 연임에 공개적으로 반대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친명계 의원들은 이 대표를 당대표에 추대하자고 앞다퉈 제안했다. 이 대표 지지단체인 ‘잼잼기사단’과 ‘잼잼자원봉사단’은 온라인에서 이 대표 연임 요구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강성 지지자들은 “이재명 연임을 반대하는 자가 배신자이고 밀정입니다”라는 글을 올리고 있다.

4·10 총선 공천을 거쳐 ‘이재명의 민주당’이 완성되면서 당내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최재성 전 민주당 의원은 전날 YTN 라디오에서 “이 대표가 연임하는 것이 당을 위해서도 본인을 위해서도 좋은지 우려가 있다. 사당화 논란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라며 “그런데 그러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한 군데서도 안 들린다. 이상하다. 저 같은 생각을 가진 의원들이 없는 것이 오히려 더 걱정”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당원 중심주의를 강조하면서 상황을 방조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19일 당 유튜브 방송에서 “당원 중심정당으로 질적 전환을 했기 때문에 당원들의 역할이 앞으로 더 커질 것이고 당원들의 참여 통로나 참여 강도나 이런 것들을 새로 구축해야 할 것”이라며 “당원들도 좀 더 늘려서 확실하게 당원 중심 대중정당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입법 성과도 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22대 국회에서도 ‘강 대 강’ 충돌 가능성

민주당이 총선 승리에 고무된 강성당원들의 ‘밀어붙이기’ 요구에 일방적으로 호응한다면 22대 국회에서도 여야는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해병대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외압 의혹 진실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도입법안’과 김건희 특검법 등 각종 특검법을 재추진할 방침을 세웠다. 일부 당원들은 윤 대통령 탄핵소추, 검찰·언론개혁법 강행도 요구하고 있다. 이 대표 지지층 사이에서는 윤 대통령 하야와 탄핵소추 중 어느 것이 나은지를 두고 토론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민주당이 여권 설득 과정을 생략한 채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22대 국회에서도 민주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에 윤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는 국면이 되풀이될 수 있다.

당내에서도 ‘입법 독주 프레임’에 갇히면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수현 충남 공주·부여·청양 당선인는 지난 11일 CPBC 라디오에서 “민주당이 아무리 압승을 해서 거대 야당이 됐다 하더라도 국회 안에서는 협치와 대화와 타협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민주당이 단독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면 입법 독재라는 프레임에 또 갇힐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표 강성 지지자들은 박 당선인의 실명을 거론하며 “선비질하지 마라”고 비난하고 있다.

유승찬 정치평론가는 “22대 총선의 의미는 협치를 위해 노력하되 민의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도록 일하라는 뜻”이라며 “강성 지지자들 요구 때문에 협치조차 부정하려는 건 의회민주주의 원리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유 평론가는 “국회의장 선거에 당원 투표를 반영하자는 것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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