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쁘게 달려온 1년…27일, 한반도 항구적 평화 ‘첫걸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문 대통령 ‘베를린 구상’부터 남북정상회담까지

미사일 발사·말 폭탄 공방, 한때 전쟁 위기감 최고조에

정부, 관계 개선 총력…북 ‘핵무력 완성 선언’ 후 급반전

김정은 신년사 ‘노선 변화’ 천명…평창 참가로 화해 물꼬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고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가 구축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된 과정은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전격 결정’과 ‘파격’의 연속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탄도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 극단적 대결 자세를 취했던 북한의 태도가 이처럼 빠른 시간 안에 완전히 바뀔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북한과 미국이 전쟁을 불사할 듯 ‘말폭탄’을 주고받으며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지수는 급격히 고조됐다. 문재인 정부는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상황에 몰려 북·미대화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왔다.

북한의 강경한 태도는 지난해 11월29일 ‘국가 핵무력 완성’ 선언으로 정점을 찍은 뒤 올해 1월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로 극적인 대반전이 이뤄졌다. 이후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와 고위급 대표단 방남, 정부 특별사절단 방북, 남북정상회담 합의, 북·미 정상회담 제안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격 수락 등이 숨 돌릴 새 없이 이어졌다.

상전벽해처럼 이뤄진 갑작스러운 국면 전환을 아직 실감하지 못하는 듯한 분위기도 감지된다. 일각에서 북한의 진정성에 대한 의문과 ‘대화 경계론’이 제기되는 것도 이처럼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상황 전개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 대통령 취임 직후 미사일 쏜 북한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북한의 반응은 딴판이었다. 북한은 문 대통령 취임 나흘 만인 지난해 5월14일 새벽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 미사일 발사 직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했다. 북한은 5월21일과 29일에도 탄도미사일 발사를 강행했다. 한반도 긴장이 급격히 고조됐고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도 사라졌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7월7일 독일 베를린의 쾨르버재단에서 한반도 비핵화 추구 및 평화체제 구상을 골자로 한 ‘베를린 구상’을 천명했을 때도 북한 반응은 냉담했다. 노동신문은 “전반 내용들에는 대결의 저의가 깔려 있으며, 평화 북남관계 개선에 도움은커녕 장애만을 덧쌓는 잠꼬대 같은 궤변들이 열거돼 있다”고 비난했다.

북한은 베를린 구상 발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중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또 미국에 대한 적대감과 군사적 대응을 잇달아 언급하며 한반도 위기 지수를 끌어올렸다. 지난해 9월3일에는 6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북·미는 험악한 말폭탄을 주고받으며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치닫는 듯했다. 한반도 전쟁위기가 더욱 짙어지면서 문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우리에게 합의를 이끌어낼 힘도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는 탄식을 내뱉기도 했다.

■ 핵무력 완성 선언이 변곡점

북한이 지난해 11월29일 사거리가 1만㎞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을 발사하면서 북핵 문제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미국 본토에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함으로써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는 동북아시아와 미국의 동맹국 안보 문제를 넘어 미국 자체의 안보 위협으로 급부상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화성-15형’ 발사 직후 핵·미사일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완료됐음을 의미하는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북한의 핵무력 완성 선언은 북핵 문제가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특히 북한은 ICBM이 탄두 재진입·정밀유도 장치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상황에서 서둘러 핵무력 완성을 선언해 향후 미국과의 협상 가능성을 내비쳤다.

북핵 문제에 정통한 정부 당국자는 “미국 본토 타격 능력을 완전히 입증하면 미국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북한은 ICBM의 마지막 단계를 남겨두고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려 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북한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와 빠른 국면 전환 시도는 ‘핵무력 완성’ 선언에서 비롯됐다. 한 달 뒤 김 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대외 전략노선 변화를 발표했다. 북한은 신년사에서 핵무력 완성으로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났으며,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을 맞아 실질적인 인민 생활 향상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또 남북관계 개선 필요성을 강하게 언급하면서 ‘서울을 거쳐 워싱턴으로 가는 길’을 열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결국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남북대화의 대통로가 열렸다.

■ 북한은 왜 대화를 택했나

북한의 태도 변화 배경을 두고 엇갈리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에 못 이겨 대화 테이블로 나왔다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계획된 전략적 행동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미 정보당국의 분석에 따르면 북한이 제재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도달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

하지만 전적으로 제재를 피하기 위해 대화국면을 선택했다는 분석만으론 현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북한은 지난해 후반기까지 제재에 아랑곳하지 않고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완성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북한은 제재로 인한 한계에 봉착했지만 그 대가로 미국 본토를 자신들의 핵미사일 사정권에 넣는 데 성공했다. 북한이 제재를 감수하면서 핵능력을 지금 단계까지 끌어올린 것은 분명히 의도된 것이다. 북한이 제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 역시 북한과 협상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을 맞게 됐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비핵화와 체제 안전보장 조치를 맞바꾸겠다고 미국에 제안한 것은 자신들이 추구해온 핵·미사일 프로그램의 마지막 단계”라며 “핵을 버리는 대신 미국과 수교해 정권 안정과 경제 발전을 이루겠다는 최종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