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 이유 일본 정부 논리와 같아…한·일관계 큰 영향 없을 듯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정부 “해결 논의 지속” 신중

일 “한국 구체적 제안 주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국내 1심 법원이 7일 각하 결정을 내린 것은 한·일관계 경색의 원인이 된 2018년 대법원 판결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지만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한 한·일 갈등에 큰 영향을 주기는 어려워 보인다.

판결 직후 한·일 정부는 모두 신중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외교부는 “관련 동향은 주시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사법 판결과 피해자 권리를 존중하고 한·일관계 등을 고려하면서 양국 정부와 모든 당사자가 수용 가능한 합리적 해결방안을 논의하는 데 대해 열린 입장으로 일측과 관련 협의를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판결 자체에 대한 평가는 하지 않은 셈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에 “정부로서는 계속 동향을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양국 현안의 해결을 위해서는 한국이 책임을 지고 대응해가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현안 해결을 위한 한국 측의 구체적인 제안을 주시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번 판결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각하의 이유다. 재판부는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까지 소멸된 것은 아니지만, 개인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는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에 대응하는 논리와 같다.

국내 법원이 이 같은 이유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을 각하한 것은 처음이다.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에 대한 각하 결정은 많았지만, 대부분 시효 소멸이나 미쓰비시·신일철주금 등 일본 기업은 당시 전범기업을 승계한 것으로 볼 수 없어 소송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 등이었다.

일본은 한국 법원이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논리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을 각하했다는 점을 부각시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판결로 인해 일본의 태도가 바뀌거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일 갈등에 돌파구가 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번 판결은 2018년 강제징용 피해자 4명에 대한 손해배상을 확정지은 대법원 판결과 무관하고, 당시 승소한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을 압류·현금화하는 작업에도 영향을 줄 수 없다. 또한 이번 판결의 항소심에서 같은 판단이 내려질지도 불투명하다. 이번 판결의 논리와 법 해석이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에 영향을 크게 미칠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이번 판결이 일제 강제징용 문제로 인한 한·일 간 해결 노력에 긍정적 요소가 되기도 어려워 보인다. 대법원 판결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만큼 이행에 문제가 있더라도 이를 기반으로 한·일 간 해결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한·일관계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2018년 판결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를 거쳐 나온 판결을 3년도 안 된 시점에 뒤집은 것은 법적·사회적·외교적으로 커다란 혼란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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