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거래는 없다는 북한, 압박 강화하려는 미국, 권력 공백기 맞은 한국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2017년 11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 미사일 발사 장면. /조선중앙TV 화면

2017년 11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 미사일 발사 장면. /조선중앙TV 화면

북한이 지난 20일 “선결적으로, 주동적으로 취하였던 신뢰구축조치들을 전면 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들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신속히 검토”하겠다고 밝힌 이후 북·미 간 긴장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북·미 모두 양보 없는 원칙적 강경대응을 예고하고 있어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질 전망이다. 정권 교체기를 맞고 있는 한국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한반도 정세에 정확한 대응과 역할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북한의 발표는 지난 2018년 스스로 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했던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을 재개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미국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발표는 미국에 대한 강경 대응 메시지로 받아들여진다. 북한의 발표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지난 13일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관련 첫 제재를 내놓은 지 일주일 만에 나온 대응 조치다.

북한이 실제 핵·ICBM 실험을 재개할 의도인지, 미국의 태도 변화를 노린 엄포인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22일 관련 소식을 전하면서 “북한의 발표는 미국의 관심을 얻으려는 ‘벼랑끝 전술’이 아니라 근본적인 국면 전환을 뜻한다”고 했다. 근본적인 국면전환이란 2018년 미국과 대화하려는 자세에서 5년 만에 다시 대결 국면으로 돌아섰다는 의미다. 미국의 싱가포르 합의 불이행에도 불구하고 정세완화를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으나 ‘미국의 흉심’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으므로 방향전환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 신문은 북한이 지난해 8차 당대회에서 최대주적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 것을 목표로 정했음을 강조하고 “미국과 거래나 흥정은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북한이 실험을 재개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2018년 모라토리엄을 결정한 것은 당분간 그런 실험을 할 이유가 많지 않은 데다 미국과 대화를 하기 위해 내린 전략적 결단이다. 이번 발표는 북·미 대화 실패 외에 북한의 전략무기 현대화 작업에 따라 다시 핵·ICBM을 실험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북한은 “바이든이 강대강 방아쇠 당긴 셈”이라며 미국의 독자제재를 이유로 들고 있으나 실상은 미국의 제재를 핵·ICBM 실험 재개의 명분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9일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9일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북한의 발표에 대해 미국은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핵·ICBM 발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므로 국제적 관점에서 볼 때 북한이 이를 유예한 것은 당연한 의무다. 북한은 주동적·선제적 조치라고 주장했지만 미국과 국제사회는 이를 ‘선의의 양보’로 인식하지 않는다. 따라서 북한의 실험 재개검토 발표는 도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미 국무부는 북한의 핵·ICBM 실험 재개 검토에 대해 “미국의 목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고 재확인하면서 “동맹·파트너와 함께 외교에 전념하면서 국제사회와 협력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진전을 막을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적 해결의 문은 열어두고 동맹국과의 공조를 통한 압박과 제재를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1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을 강하게 비난했다. 특히 미·일 정상의 공동성명에는 북한의 핵무기·WMD·모든 탄도미사일에 대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CVID)를 강조했다.

미국이 처한 국내외적 여건을 감안하면 미국의 대북태도는 더욱 강경해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긴장 고조 행위에 대해 미국이 한·미 연합훈련 규모를 늘리고 한동안 중단했던 전략자산 전개 등을 재개하면서 북한과 중국을 동시에 압박할 가능성도 있다. 이 같은 강경 대치 국면에서 한국은 대통령선거를 전후로 권력 공백기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능동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일각에서는 대북 코로나19 백신 지원이 북·미 간 긴장고조를 막는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미국은 지난달 유엔을 통해 북한에 백신 6000만 도스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으며 북한이 이를 긍정적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정치적 입장과 별개로 코로나19 확산 방지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노력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백신 지원을 통한 물밑 접촉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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