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군

국방부 공무원들의 '쫓겨나는 세입자’ 코스프레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대통령실 이전계획안 조감도. 대통령직인수위

대통령실 이전계획안 조감도. 대통령직인수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취임일 첫날부터 새로운 집무실에서 근무할 것임을 못박았다. 그러다보니 국방부 이전을 ‘번갯불에 콩볶아 먹듯이’ 서두를 수밖에 없게 됐다. 10층 규모인 국방부 청사에 근무하는 인원은 1100여명에 이른다. 관련 부서들의 대이동이 불가피해졌다. 국방부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청와대의 서두르는 이전에 모두가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누가 봐도 말 그대로 어설프고 빠른 ‘졸속 이전’이니 당연하다.

그러나 청와대 이전의 본질을 놓고는 현역 군인들과 공무원들의 반응이 갈리고 있다. 군인들 대부분은 국방부가 굳이 서울에 있어야할 이유도 없고 시간을 두고 가면 문제되지 않을 텐데 갑작스런 이사가 걱정스럽다는 입장이다. 한 현역 장성은 “국방부 이전은 좋은 안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렇지만 어떤 경우라도 공약 때문에 조급하게 서두르면 안되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이전 자체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기류다. 이 기회에 청와대 주변에 있는 1경비단을 야전으로 돌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제는 백악관 근처를 경계하는 군부대가 없는 것처럼 밤마다 북악산에서 병사들을 경계근무시킬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민간 공무원들은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국방부가 나중에 육·해·공 3군 본부가 있는 ‘지방(계룡대)’으로 갈지도 모른다는 데 대해서는 거의 ‘공포감’ 수준이다. 아마도 주거 공간인 서울을 떠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청와대 이전과 국방부 이사를 놓고 예산과 시설 이전 등과 관련해 국방부 관계자를 인용한 과장 왜곡 기사도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합동참모본부가 남태령으로 이전한 후 청사를 새로 신축해야 하고, 이 경우 1000억원이 넘는 전자기파(EMP) 방호 시설을 추가로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추가 방호시설은 불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추가 건설이 불가피하다는 식이다. 국방부에 근무 경험이 있는 군 관계자는 “귀족화한 국방부 공무원들이 평소에 군인들 하찮게 여기다가 국방부 이전한다고하니 군인들 앞세워 반대한다”며 “(합참 건물도 아닌) 국방부 건물에 무슨 안보자산과 전략자산이 있다는 거냐”고 반문했다.

최근 10여년 동안 국방부와 합참, 국직기관들은 매우 비대해졌다. 2000년 초반에는 구관 청사 한곳에 국방부와 합참이 함께 있었던 시절도 있다. 그 이후로 늘어난 건물들이 국방부 시설단, 복지단, 군사법원·검찰청, 사이버사령부, 조사본부 등이다. 굳이 국방부 영내에 있을 필요가 없는 조직들이다. 게다가 국방부에는 다른 행정부처에 없는 근무지원단 건물이 있다. 근무지원단에 근무하는 병사들은 서울에 근무하는 장군들의 승용차와 국방부 버스 운전 등도 하고 있다.

국방부가 이사가려면 사다리차 사용이 불가능해 ‘24시간 풀 가동해도 20일이 걸린다’는 국방부의 보고도 논란거리다. 국방부 시설국은 사다리차로 작업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려면 어떻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B플랜은 아예 보고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창문틀을 빼내고, 사다리차를 세울 수 있도록 경사진 진입로를 조정하면 사다리차 작업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국방부 건물이 미닫이창이 아니어서 안된다는 보고는 핑계로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국방부는 유사시 단계적으로 청사를 떠나 이동하게 돼 있다. 그때도 사다리차가 없어 이동이 어렵다는 말을 할 것인가.

국방부 보고는 ‘모든 게 어렵다’는 식이다. 하기 싫으면 ‘핑계’가 떠오르고, 하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방법’이 생각나는 법이다. 과거 불법·편법까지 동원해 ‘의지’를 실천했던 국방부 모습이 아니다. 국방부는 수년 전 ‘용머리’로 불리는 국방부 영내에 가장 높은 지형의 땅을 수억원을 들여 불법 토목공사까지 하면서 억지로 깎아내 테니스장을 조성하려고 했다. 감사원의 경고로 공사가 중간에 중단되지 않았다면 국방부에는 남산을 바라다보이는 ‘기막힌’ 전경을 지닌 소수만을 위한 테니스장이 만들어졌을 것이다(공사 중단으로 수억원의 돈이 허공으로 날아갔지만, 국방부는 그 누구의 책임도 묻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말기에는 환경영향평가를 편법으로 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를 성주에 배치했던 국방부다. 이처럼 국민 세금을 낭비하면서 막무가내 테니스장 공사를 주도했고, 사드 편법 배치의 실무 책임자였던 고위 공무원이 현 국방차관이다. 강력한 의지로 여러 편법과 막무가내식 공사를 밀어부쳤던 그가 이제는 국방부 이사의 책임자가 됐지만, ‘이사가 여러모로 무리가 따른다’는 국방부의 보고만 들린다.

국방부 공무원들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 악덕 건물주한테 쫓겨나는 불쌍한 세입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중에는 국방부의 이삿짐 싸는 모습의 사진에 붙여진 제목도 ‘쫓겨나는 국방부’로 원하는 것 아닌가 싶다. 국방부 공무원들이 청와대 이전에 대해 보이는 태도는 안보를 걱정해서라기보다는 자신들의 근무여건을 걱정하는 데 방점이 찍힌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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