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4곳, 기초비례의원 한번도 못 뽑아봤다…유명무실 ‘풀뿌리 선거’

조문희 기자

기초의원 비례 도입 2006년 이후
모두 무투표 당선…참정권 ‘실종’

거대 양당 중심 지역 구도가 원인
이번에도 500여명이 ‘공천=당선’
중대선거구 확대 등 제도 보완해야

지방선거 기초의원(구·시·군 의원) 비례대표 선거구 14곳의 유권자들은 기초의원 비례대표 선출 투표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으로 경향신문 취재 결과 드러났다. 선거구 16개당 1개꼴이다. 선거 때마다 무투표 당선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번 8회 지방선거 무투표 당선인은 27일 기준 500여명으로 모두 거대 양당 소속이다. 대다수 영남·호남 지역에서 발생했다. 무투표 당선 제도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본의를 퇴색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초의원 비례대표 선거가 도입된 것은 2006년 4회 지방선거부터이다. 비례대표는 지역 후보자가 아닌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이 결정되고 선출된다. 4회 지방선거(2006년) 기초의원 비례대표 전체 선거구 230곳 중 31곳이 무투표 선거구였다. 5회는 230곳 중 54곳, 6회 227곳 중 65곳, 7회 226곳 중 28곳, 8회는 226곳 중 62곳이 무투표 선거구였다. 14곳의 선거구는 16년간 한 번도 투표가 이뤄진 적이 없다. 대구 중구·달성, 전북 진안·무주, 경북 울릉·예천·청도·고령·성주·칠곡·군위·청송·영양·영덕이다. 이번 선거에서 이들 선거구 유권자 수는 72만여명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뽑아야 할 사람보다 출마한 사람이 적을 경우 투표 없이 당선인을 정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인은 이날 기준 509명(교육의원 1명 포함)으로, 선관위가 후보자 등록 마감 직후인 지난 14일 발표한 494명보다 15명 늘어났다. 1998년 2회 지방선거(738명) 이후 가장 많다.

무투표 당선인이 늘어날수록 유권자의 참정권은 제한된다. 유권자가 당선인에 대해 충분히 알 수도 없다. 무투표 당선인들은 투표를 거치지 않아 선거운동이 금지돼 있다. 선관위는 후보자 정보나 공약 등 선거공보물을 제공하지 않는다.

무투표 당선은 거대 양당의 특정 지역 지배를 강화한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규모 무투표 당선 사태는 거대 양당 독점과 지역 구도를 한번에 드러냈다. 이번 지방선거 무투표 당선인 509명 중 교육의원을 제외한 모두가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 소속이다. 민주당 282명, 국민의힘 226명이다.

거대 양당이 지역 구도에 편승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당선 가능성이 낮은 지역에는 아예 후보를 내지 않고, 당선에 유리한 지역에는 선출 정수에 맞춰 복수 후보를 공천하는 식이다. 민주당은 기초의원 지역구인 경북 예천군라·칠곡군가 선거구 등에서, 국민의힘은 전남 순천시자·나주시가 선거구 등에 후보를 내지 않았다. 경북 예천군라·칠곡군가 선거구의 의원 정수는 2명, 등록 후보자도 2명으로 모두 무투표 당선됐다. 2명 다 국민의힘 후보였다. 전남 순천시자·나주시가는 각각 의원 정수가 2명·3명이었는데 민주당 후보만 2명·3명 등록했다.

무투표 당선인의 절반 이상이 영남과 호남에서 발생했다. 영남에선 국민의힘, 호남에선 민주당이 압도적 우세였다. 광주·대구·울산·부산에서는 총 86명이 무투표 당선됐으며, 전남·북과 경남·북에서는 194명의 무투표 당선인이 나왔다. 총 280명으로, 전체 무투표 당선인 중 55%를 차지했다.

무투표 당선 문제의 개선 방안은 그동안 여럿 제안됐다. 참여자치21 등 일부 시민단체는 지자체장뿐 아니라 지방의원 선거에서도 무투표 당선 후보자에 대해 최저 득표율 규정을 두거나 찬반투표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도 지자체장 무투표 당선과 관련해 “입법자는 후보자가 1인일 경우에도 투표를 실시하고 일정 비율 이상의 득표를 할 경우에만 당선인으로 인정하는 방법이나 찬반투표의 실시 등 합리적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 바 있다.

김래영 단국대 법대 교수는 2018년 논문에서 “정당 추천 후보자가 비례대표 의원 정수를 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례대표 의원 선거를 실시하지 않는 것은 위헌·위법”이라고 했다. 공직선거법엔 지역구 지방의회 의원 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을 규정한 조항만 있을 뿐(제190조), 지방의회 비례대표 의원의 무투표 당선 규정이나 준용 조항은 없다는 것이다.

정의당 등은 선거제도 개혁에 방점을 찍고 있다. 한 선거구에서 의원 3~5명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를 늘리자는 주장이다. 중대선거구를 확대해도 양당이 복수의 후보자를 내면 무력화될 수 있어 당 후보를 1인으로 제한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