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이 띄웠는데 ‘이준석’이 발목 잡을라

정대연 기자

친이준석계 전당대회 후보들의 ‘딜레마’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3일 제주 제주시 퍼시픽호텔에서 열린 ‘힘내라! 대한민국 - 제3차 전당대회 제주 합동연설회’에 참석해 당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3일 제주 제주시 퍼시픽호텔에서 열린 ‘힘내라! 대한민국 - 제3차 전당대회 제주 합동연설회’에 참석해 당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3·8 전당대회에 출마한 이른바 ‘개혁보수 팀’ 후보들이 이준석 전 대표 지원을 등에 업고 선거 초반 주목받고 있다. 관심도에 비례해 이들을 향한 공세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이 전 대표 지지 표심을 끌어오는 동시에 ‘이준석 아바타’ 프레임을 돌파해야 하는 딜레마적 과제를 안게 됐다.

안철수 당대표 후보 측 김영우 선대위원장은 17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천하람 (당대표) 후보는 역시 이준석의 그늘에서 벗어나지는 못하는 것 같다”며 “이준석을 넘어설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김기현 당대표 후보는 지난 16일 같은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이 전 대표에게 “정치 하고 싶으면 하고 싶다고 당당하게 나서야지, 아바타 내세워놓고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며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들을 업고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안 후보도 지난 1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천 후보에게 “이 전 대표 뒤에 있지 말고 본인의 색깔로 승부를 해야 성공하는 정치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천 후보와 김용태·허은아 최고위원 후보·이기인 청년최고위원 후보 등 친이준석계 후보들에게 ‘이준석 아바타’ 딱지를 붙여 비판한 것이다.

이 전 대표는 즉각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당대회에) 이준석 못 나오게 하려고 어거지(억지)로 당원권 정지 2연타 시켜놓고 출마하라니 무슨 코미디냐”며 “천 후보를 조종한다는 얘기를 하려면 김 후보를 조종하는 사람이나 정체를 드러내라고 하라”고 반발했다. 허 후보는 “자유와 공정, 민주주의라는 보수의 가치 지향점이 비슷해 수평적 동지로서 함께 하고 있을 뿐”이라며 “그것이 아바타라고 한다면 가치 공유도 없이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만을 추종하거나 윤핵관이 장악한 선거 캠페인은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친이준석계 후보들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공동 유세·기자간담회를 하고 대외 메시지를 사전 조율하는 등 ‘원팀’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들을 묶는 고리는 이 전 대표다. 이 전 대표는 천 후보에게 출마를 권유하는 등 개혁보수 진용을 갖추는 데서부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 전 대표는 언론 인터뷰·SNS 등을 통해 열정적으로 네 후보를 알리고 윤핵관을 비판한다. 이번주 제주·부산·광주에서 열린 전당대회 합동연설회 현장도 모두 찾았다.

이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선 전략은 지금까지만 보면 성공적이다.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던 이기인 후보까지 네 후보가 국민의힘 책임당원 여론조사를 통한 예비경선(컷오프)을 모두 통과했다. 천 후보의 경우 최근 여러 여론조사에서 10%대 초중반의 지지도로 김기현·안철수 후보에 이어 3위를 나타내며 선전 중이다. 이 전 대표 측에서 추산하는 10만~20만명의 이 전 대표 지지 성향 당원들의 지지를 이끌어 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전 대표는 최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넷을 동시에 띄우는 초반 작전이 먹혔다”며 “영화 <벤허>를 보면 벤허가 메살라에게 복수하기 위해 정말 좋은 말 네 마리를 끌고 와서 어떻게 전차를 끌게 할지 고민한다”고 말했다. 네 후보를 ‘말’에, 자신을 ‘기수’에 빗댄 것이다.

이 전략이 초반에 먹혔지만 반대 급부로 ‘이준석 아바타’ 공세를 불러왔다. 국민의힘 안에 이 전 대표에 비판적인 당원이 호의적인 당원보다 많은 점을 고려하면 친이준석계 타이틀은 어느 시점부터 각 후보들의 지지도 상승을 오히려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네 후보가 한 팀으로 묶이면서 후보별 특성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전 대표가 각 후보의 장점을 홍보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이 전 대표만 부각되는 역설이다. 후보들이 이 전 대표의 여당 내 영향력을 확인시켜주는 ‘말’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이준석 대 윤핵관’으로 구도가 형성되면서 스스로 경쟁력을 가진 김용태·허은아 후보가 관심에서 사라지고 이준석만 남았다”며 “천 후보의 당선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당대표 견제를 위해 김·허 후보를 지도부에 입성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전 대표 측은 후보별 차별화에 더욱 주력해 상황을 돌파한다는 계획이다. 천 후보는 ‘호남 상징성’, 김 후보는 ‘최후까지 이준석 대표 체제를 지킨 최고위원’, 허 후보는 ‘승무원 출신 국회의원’, 이 후보는 ‘이재명 저격수’라는 캐릭터를 살려나가려 한다. 후보들은 합동연설회에서 윤핵관에 대한 공세보다 지역 맞춤형 공약 발표에 주력하고 있다. 이 전 대표 측은 “억지로 ‘이준석과 관계가 없다’고 하면 역효과만 날 것”이라며 “기존 이 전 대표 지지자에 추가로 개별 후보의 장점으로 지지를 확보하는 ‘이준석 플러스 알파’ 전략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천 후보는 지난 15일 당대표 후보 첫 TV 토론회에서 “단순히 이 전 대표의 시즌2가 아니라 이 전 대표를 능가하는 매력을 꼭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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