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근위원 재반론

이정희 대표에게

이대근 논설위원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께서 북한의 3대 세습을 두둔하는 듯한 민주노동당의 태도를 지적한 경향신문 사설을 비판하셨군요.

사실 대표께서 직접 언급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대했습니다. 이제는 좀 더 분명하게 정리가 될 수 있겠구나 하고요.

그런데 솔직히 말해 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민주노동당의 입장이 무엇인지 더 종잡을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3대 세습은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그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인지, 3대 세습은 그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것인지, 3대 세습은 좋다, 나쁘다 평할 대상이 안되는 양심의 자유에 해당하는 사안이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간혹 3대 세습은 나쁜 것이라는 판단을 전제로 전개한 듯한 주장도 있습니다.

이 대표께서는 3대 세습을 비판해서는 안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남북관계 악화, 갈등 상황에 대한 우려를 들었습니다.

그런 문제는 충분히 걱정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대가 싫어하는 말을 하는데 사이가 더 좋아질리는 없겠지요.

그러나 상대의 기분이 나쁠까봐 해야할 일을 하지 않는게 항상 옳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지적할 것은 지적해야지요.

민노당은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면 이명박 대통령의 기분이 상할까봐 비판을 삼가시나요. 그렇지 않지요. 설사 이 대통령과 민노당 사이가 더 나빠지더라도 할 말은 해야 겠지요.

물론 이대통령과 사이가 나빠지는 것은 별 문제가 없지만, 남북관계가 나빠지는 것은 큰 문제가 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런 점은 고려하지 않으시나요. 3대 세습 비판이 김정일 정권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측면 외에 민노당이 올바른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든지, 한국 진보세력의 대표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든지, 시민들과 공감하는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민노당이 더 많은 지지를 받고, 그 만큼 정치적 역량이 증대되고 남북관계에 관한 민노당의 발언권도 제고된다는 측면은 생각해 보시지 않았나요.

그리고 이런 현실은 고려했나요. 집권당과 제1야당, 다른 진보정당과 시민단체가 모두 공식 논평을 통해서든지 비공식 언급을 통해서든지 예외없이 3대 세습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면 이 모든 세력은 남북관계의 개선과 화해를 해치는 나쁜 행위를 한 것인가요. 제1야당과 다른 진보정당, 시민단체는 남북관계를 파탄시키는 냉전세력인가요. 설마 그렇다고 믿지는 않겠지요.

이들은 민노당 만큼은 아니더라도 남북관계 발전과 화해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온 세력입니다. 이들이 3대 세습을 비판한 것은 남북갈등을 조장하기 위해서도, 남북관계 발전에 무관심해서도 아닙니다. 그 점은 인정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비판하지 않는 것이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유일한 선택이었다고 단언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모두 3대 세습을 비판하지만, 남북관계가 그 때문에 급격히 나빠졌다는 징후는 아직 없습니다. 3대 세습을 비판할 경우 남북관계가 나빠질 것이라는 예측을 배반하고 있는 것이지요.

만일 남북관계가 나빠진다 해도 민노당이 비판하지 않는다고 남북관계가 좋아지지도 않고, 민노당이 비판한다고 더 나빠지지도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민노당은 비판에 따른 부담으로부터 매우 자유로운 위치에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혹시 민노당이 한 마디 하면 한반도가 격동에 처할 것이라고 지나치게 자기 영향력을 과신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민노당은 남북관계를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은 목불인견이지만, 3대 세습 문제에 국한하면, 민노당이 걱정할 정도로 일을 그르치지는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셔야 할 것입니다.

한나라당은 3대 세습을 강력히 비판했지만, 정부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시민들의 의사를 고려해야 하는 한나라당과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정부가 적절히 역할 분담을 한 결과이지요.

그러니 3대 세습 비판으로 남북갈등이 증폭될 것이라는 걱정은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부도 나름의 전략적 판단을 하고 있으니까요. 3대 세습을 싫어하지만,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도덕적 판단과 별개의 정책적, 전략적 고려를 정부는 해야지요.

그러나 3대 세습에 관해 가치가 있는 견해는 오직 전략적 판단에 근거한 것 뿐이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이 대표께서는 그런 전략적 고려만을 근거로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민노당은 전략을 고민해야 할 지위에 있지 않습니다. 믿음직스럽지는 않지만, 전략적 고민의 문제는 정부에 맡겨두는게 어떻겠습니까.

이 대표께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 국민들을 굶기는 사람이라는 부시대통령의 말이 나왔을 때 북미관계가 어떠하던가. 갈등을 최고조로 높이는 방법은, 북의 지도자를 날선 언어로 비판하는 것이다."

맞습니다. 그래서 이대통령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비판하라고 요구하지 않고 민노당에게 왜 비판할 줄 모르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민노당을 향한 질문을 왜 자꾸 딴데로 돌리시나요.

그리고 이 대표께서는 북한사람을 만날 때 기분 나쁘게 말해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든가 금강산 방문객은 그 쪽 질서와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는 관례를 들어 우리의 대북 태도도 그래야 한다고 도출했는데 그것은 심각한 비유의 오류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남한은 금강산이 아닙니다. 북한의 정치질서가 미치지 못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남한 땅에 있는 민노당에게 물은 것입니다. 북한 땅에 있는 민노당에게 곤란할 것 같은 질문을 한 것이 아닙니다. 북한의 기준으로 북한을 대한다는 것은 예외적이거나 그럴 필요가 있을 때 갖춰야 하는 것이지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남북관계를 북한사람과 대화하는 예절로 비유하거나, 금강산 관광객의 관광지침과 동일시한 것은 아마도 실수겠지요. 세상에 그런 일방적인 관계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 대표께서는 진보임을 인정받으려고 3대 세습을 비판하는 부당한 일은 하지 않겠다고 했군요.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쓴다면, "민주노동당이 과연 진보냐"라는 의심을 받더라도 절대로 3대 세습을 비판하는 따위의 일은 하지 않겠다는 말씀이지요?

말하자면, 민노당에게 중요한 것, 우선하는 것은 진보정당으로서 올바르게 서는 것, 시민의 지지와 동의로 이 나라의 진보정치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에 대한 걱정이군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3대 세습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고 그걸 시류에 영합하는 일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가요.

그리고 이 대표는 남들로부터 진보라고 인정받는 것이 하찮은 일인듯 주장했습니다. 놀랍습니다. 그런 논리는 시민들의 이익과 관심, 욕구를 상관 않고 스스로 진보라고 규정하는 것만이 진보라는 독선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진보의 정체성이 의심받더라도 북한을 두둔해야 할 그런 정당이 진정 진보정당인가요. 진보정치 이전에 정치 그 자체를 놓고 이야기해 봅시다. 남의 인정을 받든 안 받든 상관 않겠다는 것은 정치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과감한 발언같기도 합니다. 걱정스럽습니다.

이 대표는 민노당이 3대 세습문제로 비판 받는 것을 국가 보안법 법정에서 피고인이 검사로부터, 법원으로부터 진보로 인정받느라 시달리는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경향신문 사설이 3대 세습 비판을 강요하는 것은 마치 자기 양심에 어긋나게, 혹은 양심대로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고발하면 봐주겠다는 국가보안법 법정에서 흔히 목격되는 것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건 정말 흥미있는 논리요 추론입니다.

우선 민노당을 비판하고 지지하는 시민을 검사와 법원으로 비유한 것은 적절해 보이지는 않는군요. 왜냐하면, 그런 법정에서는 오로지 민노당만이 진리이기 때문이지요. 어떻게 민노당 외에는 모두 국가보안법이거나 검사이거나 둘 중의 하나라는 흑백논리를 제기할 수 있습니까.

이 대표께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나와 민노당의 판단이며 선택"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미 민노당은 많은 말을 했습니다. 대변인 논평, 새 세상 연구소 논평, 그 연구소 간부의 토론 등이 있었지요. 초점은 다소 다를 수 있지만, 3대 세습을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피력했습니다.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지요.

당연히 경향신문 사설도 말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적이 없습니다. 경향신문은 민노당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았습니다. 경향신문은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한 것이 아니라, 말한 것에 대해 말한 것 뿐입니다.

어쨋든 이 대표께서는 지금 3대 세습 불가피론 혹은 수용론이라는 민노당의 내면을 밖으로 표출하도록 강요하지 말라고 지금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 것 또한 오해입니까. 정말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3대 세습을 왜 비판하지 않느냐고 했던 것이 그렇게 나쁜 일이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것은 충분히 토론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라건대 민노당이 북한 지배세력의 이익 보다 남한 시민들의 이익, 북한 사람들의 이익을 더 중시해주기를 당부합니다.

3대 세습비판으로 북한과 마주 앉을 때의 불편을 그토록 깊이 생각하는 만큼 민노당이 3대 세습을 두둔하는 당으로 인식된 채 시민들과 마주 앉을 때의 불편에 대해서도 걱정해주기를 당부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대근 블로그 ‘세상에 속지 않기’(http://yidaekeun.khan.kr)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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