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3일 특사 김여정은 거침없었다

김지환·김재중 기자

북한 고위급 대표단 주목할 네 가지 장면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사진 오른쪽)이 지난 9일 방남 직후 인천공항 의전실에서 남측 인사들과 환담하며 미소짓고 있다.  연합뉴스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사진 오른쪽)이 지난 9일 방남 직후 인천공항 의전실에서 남측 인사들과 환담하며 미소짓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 오찬과 방명록 작성 - "문 대통령, 통일 주역 되시라”…김일성 닮은 서체 눈길

김여정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은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의 오찬·접견에서 꼿꼿한 자세로 임했다. 김 제1부부장은 문 대통령에게 “대통령께서 통일의 새 장을 여는 주역이 되셔서 후세에 길이 남을 자취를 세우시길 바란다”고도 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이자 특사답게 거침없이 ‘정치적 무게감’이 실린 언급을 한 것이다.

김 제1부부장은 오전 11시쯤 ‘007 가방’처럼 보이는 서류가방을 들고 청와대 본관에 들어섰다. 이 가방에서 꺼낸 것으로 보이는 파란색 파일을 들고 본관 접견실에 들어선 김 제1부부장은 파일을 테이블 위에 올려뒀다. 파일에는 김 위원장 친서가 포함돼 있었다. 김 제1부부장이 특사 자격으로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실제 스스로 특사로 왔다고 소개했다.

김 제1부부장은 본관과 접견실 등에서 문 대통령과 악수를 하면서 고개를 들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지난 10일 청와대 오찬·접견 이후 방명록에 소감을 남겼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지난 10일 청와대 오찬·접견 이후 방명록에 소감을 남겼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 제1부부장이 접견 뒤 오찬장으로 향하기 전 방명록에 적은 글씨체도 눈길을 끌었다. “평양과 서울이 우리 겨레의 마음속에서 더 가까워지고 통일 번영의 미래가 앞당겨지기를 기대한다”고 썼는데 모음 ‘ㅡ’가 45도 방향으로 올라가 있었다. 이를 두고 김일성의 ‘태양서체’를 연상시킨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 고위급 대표단은 오찬에서 덕담과 농담을 건넸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역사를 더듬어 보면 문씨 집안에서 애국자를 많이 배출했다. 문익점이 붓대에 목화씨를 가지고 들어와 인민에게 큰 도움을 줬다. 문익환 목사도 같은 문씨냐”고 묻자 문 대통령은 “그렇다. 그 동생분인 문동환 목사를 지난해 뵈었다”고 답했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남북한 언어의 억양이나 말은 어느 정도 차이가 있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데 ‘오징어’와 ‘낙지’는 남북한이 정반대더라”고 하자 김 제1부부장은 “우리와 다른데 그것부터 통일을 해야겠다”며 웃었다.

■올림픽 관람 등 외부행사 - 문 대통령 “마음과 마음 모아 난관 이겨나가자”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은 삼지연관현악단 공연,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경기,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등 세 차례에 걸쳐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외부 일정을 소화했다. 지난 10일 청와대 오찬을 감안하면 문 대통령과 김 제1부부장이 만난 횟수는 2박3일 동안 4차례에 이른다. 개회식 전 리셉션에도 참석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문 대통령과 5차례 만났다.

북 대표단은 11일 문 대통령 내외와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객석에 나란히 앉아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을 함께 관람했다. 문 대통령은 공연에 앞선 환담에서 “소중한 불씨를 만들었으니 이 불씨를 더 이렇게 키워나가서 정말 횃불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왼쪽부터)이 지난 10일 강원 강릉 관동아이스하키센터에서 치러진 남북 단일팀과 스위스의 여자 아이스하키 경기 직후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왼쪽부터)이 지난 10일 강원 강릉 관동아이스하키센터에서 치러진 남북 단일팀과 스위스의 여자 아이스하키 경기 직후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상임위원장이 “대통령과 함께 의견을 교환하고 앞으로 자주 상봉할 수 있는 계기와 기회를 마련할 수 있게 된 데 대해서, 다시 만나게 될 희망을 안고 돌아가게 된다”고 한 것에 대한 화답이었다.

문 대통령은 공연 후 환송 자리에서 김 상임위원장에게 “마음과 마음을 모아서 난관을 이겨나가자”고 했다. 김 제1부부장은 김정숙 여사에게 “늘 건강하세요. 문 대통령과 꼭 평양을 찾아오세요”라고 했다.

앞서 문 대통령과 북 대표단은 지난 10일 저녁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경기를 함께 지켜봤다.

지난 9일 올림픽 개회식에선 김 제1부부장 등이 문 대통령 내외 뒤쪽 열에 앉아 행사를 관람했다. 김 제1부부장은 남북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입장하자 일어서서 선수단에 손을 흔들며 반가움을 표했다. 애국가 제창과 태극기 게양 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북 최고위급 인사가 애국가 제창과 태극기 게양 때 일어선 것은 이례적으로, 북한의 유연한 태도를 보여준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2박3일 특사 김여정은 거침없었다

■임종석 실장과 환송 만찬 - 김여정 “이렇게 갑자기 오게 되리라 생각 못해”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 일행은 11일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주최의 환송만찬에 참석했다. 만찬은 서울 중구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에서 1시간30분 동안 비공개로 진행됐다. 남측에선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서훈 국가정보원장,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등이 참석했다.

임 실장은 “오늘은 정말 편하게 밥 먹는 자리”라며 건배사를 요청했고, 김 제1부부장은 수줍은 표정으로 “제가 원래 말을 잘 못한다. 솔직히 이렇게 갑자기 오게 되리라 생각 못했고 생소하고 많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비슷하고 같은 것도 많더라”고 답했다. 김 제1부부장은 “하나되는 그날을 앞당겨 평양에서 반가운 분들을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고 건배사를 했다.

김 제1부부장은 “우리 응원단의 응원 동작에 맞춰 남쪽 분들이 함께 응원해줘 참 좋았다”고 말했다. 이에 임 실장은 “그게 바로 저희였다”고 답해 남북이 웃음을 터뜨렸다.

남측 외교안보 라인 고위인사들과 북한 대남 핵심라인이 참석했다는 점에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문재인 대통령 방북 초청 이후를 위한 기반 다지기의 의미가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 위원장의 비서실장 역할을 했던 김창선이 보장성원(지원인력) 자격으로 동석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북한 대표단은 이낙연 국무총리 주최의 환송오찬에도 참석했다.

앞서 김 제1부부장은 전날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강릉 스카이베이 경포호텔에서 주최한 만찬에선 서울 방문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낯설지가 않다”고 했다.

■일정 마무리, 전용기로 귀환 - 김영남이 상석 권한 이유는 ‘특사 자격 대우’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은 11일 저녁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린 북한 예술단 ‘삼지연관현악단’의 평창 올림픽 축하 특별공연 관람을 마지막으로 남한 내 공식 일정을 끝내고 서해 직항로를 통해 돌아갔다.

북한 대표단을 태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전용기 ‘참매 2호’는 이날 밤 10시24분쯤 이륙했다.

김 제1부부장 등은 이날 밤 인천공항 의전실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 등과 작별 환담을 했다. 조 장관은 “2박3일이 짧다면 짧은 기간인데도 많은 일이 있었다”며 “오고 간 얘기 중 중요한 얘기가 많아서 마음 같아서는 2박3일 아니라 두어 달 지나간 것 같다”고 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 ‘안녕히 계십시오’라는 게 잠시 동안 헤어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김 상임위원장은 조 장관을 포옹한 뒤 조 장관의 등을 세 번 두드리며 “저의 간절한 부탁이 실현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 주시기 빌겠다”고 했다.

김 제1부부장은 조 장관과 악수를 나눴다.

앞서 김 제1부부장은 지난 9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경하면서 남한은 물론이고 국제무대에 처음 데뷔했다. 특히 연장자이자 공식서열이 높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의전실에서 김 제1부부장에게 상석을 권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김 제1부부장이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오찬·접견에서 ‘특사자격으로 왔다’고 밝히면서 김 상임위원장이 상석을 권했던 수수께끼가 풀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정은 친서’ A4 용지 3분의 2 분량…‘관계 개선 당위성’ 원론적 이야기 담긴 듯

·표지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지난 10일 청와대를 방문한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한 친서의 내용과 형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제1부부장은 북한 국가를 상징하는 표시가 찍힌 파란색 파일철에 담긴 김 위원장 친서(사진)를 문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했다.

2박3일 특사 김여정은 거침없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김여정 특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담은 친서를 전달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 정상이 보낸 친서는 우리 정상만 확인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이유에서다.

친서는 A4용지 3분의 2 정도 분량이며 하단에 김 위원장의 친필 사인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분량이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남북관계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 또는 제안을 담고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는 분석이 많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하고 남북관계 개선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원론적인 이야기가 담겼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제1부부장이 구두로 전달한 문 대통령의 방북 제안 관련 내용이 좀 더 구체적으로 담겼을 수도 있다.

친서에 명기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직함은 외국 정상을 상대로 하는 외교를 할 때 주로 사용되는 것이다. 당·국가 체제로서 당이 우선인 북한 내에선 노동당 위원장이라는 직함을 사용하지만 당·국가 체제가 아닌 외국과 상대할 때는 국가 직함을 사용함으로써 격을 맞추려는 의도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난하는 개인 명의의 성명을 발표할 때도 같은 직함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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