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평화정책 역발상 땐 북 호응할 것”

박은경 기자

문재인 정부 마지막 통일부 장관 이인영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4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4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적극적인 대북 평화정책이
가장 효과적 긴장 억제 수단
평화 프로세스 활성화 당시
핵·ICBM 실험 유보 이끌어

남북관계의 ‘구원투수’라는 기대 속에 등판했던 이인영 통일부 장관(58)이 문재인 정부의 ‘마무리 투수’ 역할을 마치고 떠난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4선 중진 의원인 이 장관은 2020년 7월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급격하게 얼어붙은 남북 정세 속에 취임했다. 첫 출근길에서 “대담한 변화”를 강조했던 그는 코로나19 백신 공급,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로 북한과 대화의 끈을 이으려 노력했으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사임할 이 장관을 지난 4일 정부서울청사 통일부 장관실에서 만났다. 이 장관은 “적극적 평화정책으로 북한이 긴장의 사이클에서 평화의 사이클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 역설적이지만 가장 효과적 억제 수단”이라면서 “강경 대치 일변도로 나올 줄 알았던 새 정부가 유연한 평화정책을 펼치는 역발상을 한다면 북쪽에서도 호응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지난 4일 탄도미사일을 추가 발사했다.

“최근 북한은 새 정부나 미국을 향해 강경한 메시지로 일관하고 있다. 무엇보다 탄도미사일 재발사를 넘어 핵실험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현실에 크게 우려한다. 군사적 긴장의 유발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이 지난 1년간 대미 협상 진전이 없는 상황을 변동시키려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뿐 아니라 핵 문제까지 꺼낸 것 아닌가 생각한다. 새 정부가 강경 대치 일변도의 정책을 내세우고 ‘선제타격’ ‘버르장머리’ 같은 발언들을 하면서 평화 기조에 대한 기대가 줄어든 상황에서 남북관계 주도권을 쥐기 위한 차원으로도 읽힌다.”

-어떻게 북한의 추가 핵실험 등을 억제할 수 있을까.

“북이 긴장의 사이클보다 평화의 사이클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 역설적이지만 가장 효과적 억제 수단이라고 본다. 평화 프로세스가 활성화됐을 때 북이 핵과 ICBM 실험을 스스로 유보했다. 군사적 수단이나 경제 제재를 넘어 평화 번영의 본질적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해법을 찾는 게 지혜로운 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여전히 유효한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시작된 4년4개월 동안 북이 스스로 모라토리엄(핵실험·ICBM 시험발사 중단) 상태로 있었고 접경지역의 우발적 군사 충돌도 9·19 군사합의 이후 단 한 차례로, 박근혜(115회)·이명박(215회) 정부 때보다 현저히 감소했다. 그런 4년4개월의 상황을 44년, 440년의 상황으로 만들어가야지, 실패했다고 단정하는 건 옳지 않다. 문재인 정부가 시작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가치를 윤석열 정부가 승계해서 본격적 단계로 진입시킨다면 ‘평화는 진보 정부의 것, 대결은 보수 정부의 것’이 아니라 ‘평화는 대한민국의 것’이 될 거라 본다.”

통일부, 북 인권 집착 안 돼
인도·교류협력이 ‘정체성’
장관 재임 중 성과 쉽지 않아
당 통한 평화정치 실현 역할

-장관 재임 중 남북관계 측면에서 가장 안타까운 시점은.

“제가 가진 기회는 선발투수가 가졌던 기회의 시간에 비하면 굉장히 적었다. 2018년 평화 정세가 고양됐을 때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재가동 문제를 추진했다거나, 타미플루 지원 문제도 운송수단이 문제였다면 괴나리봇짐을 지고라도 과감하게 협력했으면 어땠을까. 돌아보면 남북 간 대화는 타이밍을 잡는다는 게 쉽지 않다. 긴장의 시간에 평화를 구상하고 평화의 시간이 올 때 바로 실행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대화의 타이밍을 잡기 어려운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평화 주도 성장이 차기 정부에서도 가능하다고 보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지정학적 리스크를 완화시켜 놓지 않고는 한국 경제가 발전하기 어렵다. 차기 윤석열 정부가 직면하게 될 상황은 우크라이나 사태·공급망·환율 등 안팎으로 녹록지 않다. 그래서 다음 정부가 역발상으로 임하면 좋겠다. 대북 강경 대치 일변도로 나올 줄 알았는데, 유연하고 적극적인 평화정책을 펼친다면 북에서도 호응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차기 통일부 장관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나.

“통일부는 통일부다워야 한다. 북한 인권 문제에만 집착하면 인권부가 된다. 인도·교류협력은 통일부의 중심 정체성과 관련돼 있다. 인도주의 협력에 대한 의지를 밝혔으니 반드시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당으로 돌아가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5년제 대통령 단임 기간에서 1~2년의 통일부 장관 재임 중 평화 통일 성과를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고 느꼈다. 당을 통한 평화정치가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당의 정치가 인물 정치를 넘어 가치의 정치로 탈바꿈돼야 한다. 새로운 가치 노선에서 한반도 평화도 우리 당 DNA의 한 축으로 박혀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는 과정에서 제가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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