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 교수 “박근혜 정부 붕괴는 박정희 패러다임의 해체”

김지환 기자

원로 정치학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73)는 15일 “국가의 최고행정수반으로서 대통령이 절대 다수의 국민들에 의해 통치에 필요한 권한과 능력이 부정당했다면 현 상황에서 국회가 할 일은 헌법에 따라 탄핵 절차를 밟는 일”이라고 말했다.

최 명예교수는 이날 서울대학교 교수협의회 주최로 열린 시국 대토론회에서 “지금 광장에서의 항의와 분노는 정점을 향해 내닫고 있지만, 아직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해 국회를 장으로 행위를 하는 정당 정치인들은 광장에서의 한 참여자일 뿐, 자신들에게 부여된 책무가 무엇인지에 대해 별로 인지하지 못하는 듯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지금 그들(정당 정치인들)은 여론의 추이를 보면서 수동적 내지 전략적으로 행위하는 데 전념하는 듯 보인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비르투(virtu·마키아벨리의 말로서 용기, 결단력, 담력, 판단력 등을 의미)를 갖는 정치인들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최 명예교수는 탄핵 절차에 앞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조사하기 위한 청문회 개최를 제안했다. 그는 “이 과정(청문회)을 통해 모든 시민들이 이 문제에 대해 보다 심도 있고 폭넓은 정보를 갖게 되는 것, 그것만큼 민주주의에 큰 교육적 효과를 갖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회에 의해 발의된 탄핵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얼마나 공정하게 평결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떠하든 국회가 얼마나 헌법 공백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고, 헌재가 얼마나 헌법을 지키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역할을 할 것인지는 명백히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최장집 교수 “박근혜 정부 붕괴는 박정희 패러다임의 해체”

최 명예교수는 이번 헌정공백의 원인·배경을 ‘박정희 패러다임’으로 진단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붕괴는 이 패러다임의 해체를 뜻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박근혜 정부의 파탄은 1960~1970년 시행되고 완성된 권위주의적 산업화 또는 경제성장 모델, 즉 박정희 모델 또는 박정희 패러다임이 그 시대적 역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부활시키고 재현하려 했던 국가의 구조와 그 운영원리의 시대착오적 성격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정희 패러다임의 핵심적 요소는 국가주의에 의해 주도되는 관치경제를 통해 높은 성장률을 목표로 하는 경제운영체제, 국가-재벌대기업 동맹의 다른 편에 노동자들과 노동운동의 산업적 시민권 부정·민주적 노사관계 금압,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시민사회·관변단체 지원 강화·사회의 다원적 구조 억제, 지방자치를 통한 지역적 권력분산 미허용, 반공의식과 국가주의적 이념과 가치를 강화하는 교육·문화의 육성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최 명예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붕괴는, 그 체제를 떠받쳤던 박정희 패러다임의 해체를 뜻한다. 1960년대 이래 반세기 이상 한국정치와 사회를 떠받쳐왔던 이념적 그리고 가치체계의 해체를 뜻하는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짚었다.

그는 “박정희식 국가운영 모델은 권위주의 시기뿐만 아니라 민주화 이후 시기에서도 한국사회의 모든 영역, 모든 수준에서 헤게모니를 가졌던 국가의 운영원리이자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였다”며 “민주화를 통한 정치체제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정당체제의 차원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했던 것도 권위주의적 국가운영 모델의 헤게모니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이 헤게모니가 사실상 해체됐다. 현재 박근혜 정부의 붕괴는 민주화를 통해서도,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통해서도 가능하지 않았던 역사적인 전환점을 만들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붕괴는 한국의 현대 정치사에서 민주화에 이어 두 번째의 정치적인 대전환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변화 자체가 한국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을 기약”할 순 없다. 그는 “정당과 정치인들이 이러한 정치적 격변이 몰고 온 도전에 대응하는 내용과 방향에 의해 그것이 전환적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고, 현상의 유지를 의미하는 새로운 형태의 구질서의 복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최 명예교수는 마지막으로 헌정공백을 처리하는 과정과 개헌 논쟁이 중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개헌은 필요하면 할 수도 있고, 필요 없다면 안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개헌문제 자체는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컨센서스를 형성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는 많은 논의와 논쟁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개인 정치인들이 정치의 판을 흔들어 자신들의 정치적·전략적 지위를 높이기 위해 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개헌에 대한 편의주의적이고 정치공학적 접근에 대해 비판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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