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최대 문제는 온정주의…여의도란 섬에 갇혀 겁내는 것 같다”

윤호우 논설위원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일 당사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우리 당 지지자로부터 받는 비판이나 비난은 마음이 아프다”면서 “그렇지만 지금은 쇄신을 해야 할 때이기 때문에 민주당이 정말 깊이 반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일 당사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우리 당 지지자로부터 받는 비판이나 비난은 마음이 아프다”면서 “그렇지만 지금은 쇄신을 해야 할 때이기 때문에 민주당이 정말 깊이 반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1996년 강원 원주에서 태어났다. 2019년 7월 대학교에서 텔레그램 n번방의 실체를 밝혀내는 ‘추적단 불꽃’을 결성했다. ‘불’과 ‘단’이라는 두 여성 중 ‘불’이라는 아이디를 갖고 활동했다. 이 활동으로 2020년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n번방 추적기’가 알려지면서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과 관심이 제고됐다.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2021년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대응 TF 전문위원으로 일했다. 대선 막바지인 지난 1월 이재명 선대위에 합류, 여성위원회 부위원장과 디지털성범죄근절특별위원장으로 2030 여성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선 후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견 땐 싸우기보단 논쟁…다수가 원하면 동의 아닌 수용한다
쓴소리 나도 힘들지만 지금은 쇄신할 때…정말 깊이 반성해야
검수완박 이젠 마무리하고 잃어버린 민생 이슈 되찾기 나서야
이준석 대표 항상 건강하지 않은 토론…거기 응하고 싶지 않다
디지털성범죄 빠르게 진화…n번방방지법 보완할 부분 많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가 시작되면 시선은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26)에게 향한다. 민주당에서 금기시하던 언어들이 그의 모두발언에서 나온다.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에 올인하는 당에 일침을 놓는가 하면, 송영길 전 대표나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도 거침없이 비판한다. ‘이준석 돌풍’에 비견할 ‘박지현 돌풍’을 예감하게 한다. 그 돌풍은 지난 대선 막판 이재명 선대위에 합류해 2030 여성의 지지를 이끌어내면서 시작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난 2일 민주당사에서 마주한 박 위원장의 모습이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TV에서 접해온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과 느낌이 사뭇 달랐다. 하지만 목소리와 거침없는 태도는 예상한 그대로였다.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가 뭐냐고 묻자, 박 위원장은 “온정주의”라고 바로 정리했다. “여의도라는 섬에 갇혀 있다”고 덧붙였다. 섬에 갇힌 민주당을 국민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맡았다는 뜻이다. 박 위원장은 당내 이견을 놓고 “(비대위에서) 싸우고 있다”고 표현했다가 “논쟁하고 있다”고 바꿨다. 싸우든 논쟁하는 중이든 그의 정치는 민주당에서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되기 전과 생활이 어떻게 다른가.

“오늘이 딱 50일이라고 하더라. 엄청나고 다양한 사회 이슈들을 한꺼번에 마주하고 있어서 정신이 없고 바쁘다. 한 주에 120시간 이상 일을 하는 것 같다.”

‘한 주에 120시간’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후보 시절 발언하면서 논란을 일으킨 시간 개념이다. 순간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해서 답변을 끊고 자세한 내용을 물었다.

- 120시간이라면.

“잠자는 시간 빼고 일한다. 아침 6∼7시에 나와 밤 11∼12시는 돼야 집에 들어간다. 그렇게 하면 그 정도(120시간) 나올 것 같다.”

- 실제 겪어본 정치의 세계는 어떤가.

“정치라는 게 너무 무겁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냥 행동·표정·손짓 하나도 다 기사화되는 걸 보면서 정말 조심을 해야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 그동안 비대위 활동을 어떻게 평가하나. 점수를 매긴다면.

“점수를 매기지 못할 것 같다. 저 한 명으로 이 당이 180도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 공동위원장이라는 직책이 무거울 것 같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혁신하길 바랐기 때문에 저를 민주당으로 불렀다고 생각한다. 당내에는 정치를 잘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 안에 있는 분들이 못하는 일을 내가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 ‘못하는 일’에는 어떤 것이 있나.

“이 안에는 운동도 같이해오고 수십년간 정치를 같이해온 분들이다 보니까 다들 정(情)이 있다. 저는 그렇지 않고 다 처음 보는 분들이다. 그래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온정주의가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이 안에 있는 분들이 여기에 갇혀 있는 듯하다. 또 여의도라는 섬 안에 갇혀 있다. 민심과의 괴리가 있다고 느껴지면 국회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고 입법화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의원들을 봤을 때 겁을 내는 것 같았다.”

- 어떤 점에서 그런가.

“제가 발언하고 나면 일부로부터는 비판을 받지만 연락이 오는 의원들이 있다. 자신도 그 말을 하고 싶었는데 자신의 현재 위치 때문에 말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감사하기도 하고 저에게 응원도 되는데….”

- ‘왜 직접 발언하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 생각도 조금 든다.”

- 민주당이 변화할 가능성이 얼마나 있다고 보나.

“만족할 만큼은 아니지만 변화하는 과정 속에 있다. 그래서 제가 계속 바뀌어야 한다고 쓴소리를 내고 있다. 그런데 한두 달 안에 혁신이 이뤄지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시간을 갖고 차근차근 변화시켜 가다 보면 결국에는 민주당이 ‘진짜 변하고 있구나’ ‘변했구나’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모두발언에서 강조한 점이 관철되지 않고, 다수의 의견이 반대쪽으로 모아지면 어떻게 하나.

“그럴 때는 싸운다. 싸운다기보다는 논쟁을 하는데, 원칙을 세웠으면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정무적인 판단이 들어가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회의가 길어진다. 보통 세 시간을 한다. 많은 비대위원이 동의하면 제가 공동비대위원장이라 하더라도 수용을 하긴 한다. 동의가 아니라 수용이다.”

‘싸운다’는 말이 과도했다고 생각되는지 곧바로 ‘논쟁’으로 표현을 바꾸었다. 하지만 ‘동의’라는 말을 끝까지 거부하는 완고한 입장을 보면 비대위에서 ‘싸우는’ 그의 모습을 쉽게 그려볼 수 있다.

- 동의가 아닌 수용에는 최근 어떤 예가 있나.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충북지사 후보) 공천에 관해서는 끝까지 반대했지만, 끝내 수용을 했다. 민주당의 쇄신을 말하는 시점에 이것이 옳은 결정이라고는 동의하지 않는다.”

- 지나간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선거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야기도 있을 법하다.

“당 지도부로서 당연히 우리 당 우리 선수가 이기는 것을 절실하게 바라고 있다. 그런데 이기는 싸움을 하기 위해서는 이전에 했던 잘못을 명백하게 사과하는 게 국민들에게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 그래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나 송영길 전 대표를 언급할 때는 조심스럽지 않았나.

“모든 것을 상식적인 판단 기준에서 보려고 한다. 국민의 시각에 부합해서 이것을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이 들면 이야기를 하는 거다. 굉장히 조심스러운 분들이지만 이것을 짚지 않으면 민주당에 뭘 하러 온 걸까라는 생각이 든 거다.”

- 쓴소리를 많이 하니까, 당내 ‘레드팀’이라는 표현도 있다. 쓴소리를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지 않나.

“저도 사실 힘들다. ‘당이 어려울 때 왜 내부에 대고 총질을 하느냐’는 항의도 있다. 우리 당 지지자로부터 받는 비판이나 비난은 마음이 더욱 아프다. 그렇지만 지금은 쇄신을 해야 할 때이기 때문에 정말 깊이 반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모두 발언을 듣다 보면 정치경험이 많은 정치인의 분위기가 풍긴다. 뒤에서 누가 도와주지 않는가 하는 이야기도 들을 법하다.

“정치적인 가이드보다는 조언자들이 주변에 많다. 비서실 팀이나 의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기사도 찾아보는데 결국에는 제가 마무리를 한다.”

이 답변을 이어가던 중 박 위원장은 다소 서운한 반응도 보였다.

“결국 내가 20대이고 정치신인이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런 시선 자체는 이해하지만, 편견이 좀 작용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현안인 검찰 기소·수사권 분리도 중요하지만 민생 문제도 챙겨야 한다고 언급했다.

“검찰개혁도 중요하다는 지점에는 공감하지만 민생 이슈가 아예 묻혀 있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이 어떻게 바라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국회에는 온통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만 있는 듯하다.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안 합의문이 통과되고 마무리될 일이었다. 그런데 국민의힘에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슈를 계속 검찰개혁으로 돌리기 위한 술수라고 생각한다. 이제 마무리하고 잃어버린 민생을 찾는 데 주력해야 한다.”

- 차별금지법에 대해 몇 번씩이나 이야기했음에도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저도 답답한 느낌을 갖고 있다. 차별과 혐오 때문에 정말 목숨이 위태로운 분들도 있다. 정치권이 너무 태만한 것이 아닌가, 남 일처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어떤 점을 느끼게 되나.

“제가 청년이고 여성이다 보니까, 청년들이 느끼는 감정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려 한다. 자녀 입학 비리 의혹 같은 경우 저와 같은 청년들이 느끼는 박탈감이 있다. 그래서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자녀 문제에 대해서는 심각성을 느낀다.”

- 국민의힘의 경우 청년 정치인인 이준석 대표가 있다. 젠더·장애인 문제에 대해 맞짱토론을 자주 한다. 만약 박 위원장에게 토론을 제안하면 응할 생각이 있나.

“사실 토론이란 것은 정책이나 현안을 두고 서로의 입장을 공유하고 더 나은 대안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 대표의 토론 방식을 보면 건강한 토론으로 흘러간 예를 한 번도 못 보았다. 그런 토론에 응하고 싶지 않다. 건강하지 않은 토론이다.”

- 토론 경험이 많나.

“많지는 않지만 내부에서 계속하고 있는 게 토론이다. 토론을 피할 생각이 없다. 어떤 현안이냐에 따라서 즐겁게 응할 수 있다.”

- 마음껏 생활하는 또래 20대 젊은이들이 부럽지 않나.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 그냥 점심·저녁 시간에 사무실에 있는 분들이랑 커피를 마시고 맛있는 밥을 먹는 것으로 만족한다.”

2020년  ‘추적단 불꽃’에서 아이디 ‘불’로 활동한 박지현 공동위원장. 당시 경향신문이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찍은 뒷모습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20년 ‘추적단 불꽃’에서 아이디 ‘불’로 활동한 박지현 공동위원장. 당시 경향신문이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찍은 뒷모습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텔레그램 n번방 ‘추적단 불꽃’에서 활동할 때 ‘불’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했다. 그런데 당시 얼굴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웠다고 나중에 책에 썼던데.

“두려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추적단 불꽃’으로 활동하면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증거를 제출하자, 재판이 다시 열려 형기가 늘어난 가해자도 있다. 그 가해자가 내년에 출소한다. 어떤 앙심을 품고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도 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저를 향한 성적 희롱이 벌어지고 있다.”

- n번방방지법이 나왔다. 판결이나 법 개정에 대해서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나.

“디지털성범죄는 굉장히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지금의 법으로는 쫓아가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입법적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 제가 여기에 온 이유 중에 그것도 있기 때문에 3주 전 디지털성범죄 대응 간담회를 열었다. 그래서 조금은 멈춰졌던 그런 문제의식을 다시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을 갖게 됐다.”

-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라는 책을 보니 26세 때 방송기자 취직, 50세 때 10년간 세계일주라는 인생계획이 나와 있다. 지금 정치인이 아니라면 무엇을 하고 싶나.

“여행을 다니며 먹고 놀고 싶다. 방송기자를 꿈꿨는데 원래 특파원을 되게 하고 싶었다.”

- 어느 지역 특파원을 하고 싶나.

“아프리카 지역에 가서 특파원을 하고 싶다.”

- 비대위가 끝나고 나면 정치적 활동을 계속할 생각이 있나.

“지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힘들어서 미래에 대한 생각을 안 하고 있다.”

정치적인 현안은 되도록 피하겠다는 전제하에 시작된 인터뷰였지만 현안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6·1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출마설에 대한 견해를 물었지만 ‘노 코멘트’라고 말했다. 그만큼 민감한 문제라는 뜻이 아닐까. 박 위원장의 강원 원주갑 출마 가능성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제가 나가는 것이 맞는 선택은 아닌 것 같다.”

고등학교까지 원주에서 나왔다고 답변하면서 출마설에 대해서는 극구 아니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공동비대위원장도 제가 안 하겠다고 여러 번 고사했는데 이 자리에 앉아 있는데, 제가 결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 앞으로 어떤 정치를 하고 싶나.

“제가 욕을 좀 먹더라도 정말 우리 사회를 위한 길이라면 나의 삶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윤호우 논설위원

윤호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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