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정진석 의원 간 공방전이 나흘째인 9일에도 이어졌다. 정 의원은 추가 대응을 멈췄고, 당 지도부는 양측에 자제하라며 중재를 시도했지만, 우크라이나에서 돌아온 이 대표가 공세 수위를 더 끌어올리면서 갈등은 쉽게 봉합되지 않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내전 양상에 ‘관람자 모드’로 일관하고 있다. 이 대표를 지지하면 윤석열 대통령과 대립하는 구도로 보일 수 있고, 정 의원을 지지하면 기성 정치인으로 청년 정치인을 공격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어서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날 악화일로였던 이 대표와 정 의원 간 설전 중재를 시도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한 뒤 기자들에게 “혁신을 둘러싼 당 구성원의 의견 제시는 언제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논의 자체가 양측의 감정싸움으로 비화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이제 더이상 소모적 논쟁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김용태 최고위원은 최고위 후 기자들에게 “(비공개 최고위에서 지도부들이)정진석 의원도, 이준석 대표도 다 자제하자고 (두 사람에게) 얘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이 대표를 선공한 정 의원도 이날 대응하지 않았다. 정 의원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가뭄, 화물연대 총파업,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경제위기 등을 나열하면서 “정부·여당이 함께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민생이 최우선”이라고 적었다. 이 대표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아 휴전 제안으로 읽히는 글이다.
정 의원의 자제와 지도부의 중재 시도에도 이 대표는 이날 더 강한 발언을 내놨다. 우크라이나에서 귀국한 이 대표는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애초에 정진석 (전) 국회 부의장이 적시한 내용은 그 자체가 허위”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행에는 외교부 실무자가 동행했으므로 정부 및 대통령실과 협의를 했고, 혁신위 의견 수렴을 위한 연찬회도 권성동 원내대표가 개최할 예정이었다고 밝혔다. 정 의원이 이 대표가 제안한 혁신위와 최재형 혁신위원장을 비판한 데 대해 “여당 (출신) 부의장이 해선 안 될 추태에 가깝다”면서 “어떻게 당내 최고위원, 당대표를 저격하며 당내 입지를 세우려는 게 당 어른일 수 있느냐”고 했다. 이 대표는 언론을 향해 “당권싸움으로 치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정 의원은 당권 주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 대표와 당내 최다선(5선) 의원 간 공방전에 소속 의원들은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중재에 나선 권 원내대표와 지난 7일 “혁신위 출범은 잘한 것”이라고 밝힌 조해진 의원을 제외하고 의원들은 공개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 대표를 지지하자니 정 의원은 물론 정 의원이 가깝게 지낸 윤 대통령과 대립하는 구도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정 의원을 지지하자니 청년 정치인 대 기성 정치인의 대결 구도에서 기성 정치인에 합류하는 모양새가 된다. 이 대표의 신랄한 공격을 감당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통화에서 “의원들은 다들 쉬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지방선거를 마치고 소모적인 당내 싸움에 끼고 싶지 않다는 취지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통화에서 “의원들도 이 대표가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이끈 당대표인데 공격하기는 어렵다”면서 “이 대표의 방향에 불만이 있는 의원들도 있지만, 나설 상황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미 신구, 청년과 기성세대로 구도가 짜여졌는데 정 의원을 지원하기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