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강양박’ 민주당 97세대의 반란은 성공할 수 있을까

정용인 기자

7월 28일 컷오프…‘1강’ 이재명 외 4인 중 살아남을 97세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강병원 의원의 6월 29일 출마 선언을 필두로 박용진 의원(6월 30일), 강훈식 의원(7월 3일), 박주민(7월 8일) 의원이 차례로 당대표 선거에 나섰다(왼쪽부터).  /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강병원 의원의 6월 29일 출마 선언을 필두로 박용진 의원(6월 30일), 강훈식 의원(7월 3일), 박주민(7월 8일) 의원이 차례로 당대표 선거에 나섰다(왼쪽부터). / 국회사진기자단

“그때 왜 PD(민중민주파)가 됐냐”고 물었다. 지난해 5월, 대선후보 도전을 앞둔 박용진 의원 인터뷰 말미였다.

박용진은 성균관대 사회학과 90학번이다. 1991년 5월 강경대 열사 국면엔 과 학생회의 정치사업부장이었다. 30년 전 일이다. 당시 과 학생회장의 소속 정파는 NL(민족해방)이었다. (박용진은 자신의 1년 선배였던 과 학생회장을 ‘논리적이고 논쟁적인 과 분위기에서 한 번도 논쟁에서 이기는 것을 본 적 없는 착한 선배’라고 술회했다.) 과 PD 선배들의 영향을 받아 PD가 됐지만 “박용진은 PD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관념, ‘강단 학파적이며 대중적이지 못한 것’을 다 이긴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신을 언급할 때 3인칭 시점으로 “박용진은…”이라고 말했다.)

-1991년 5월에 PD 정파의 기조는 ‘파쇼정권’과 타협하려는 ‘보수야당’ 및 당시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등 재야지도부의 기회주의적 본질을 폭로한다’는 것 아니었습니까. 당시 야당을 이끌던 DJ(김대중)에게 매우 비판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박 의원께서는 그때 왜 그런 입장에 섰는지가 궁금합니다.

“박용진이 그때 그랬던 것은 소속돼 있던 정파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때 혁명이 목적이었으니까. DJ라는 존재 자체가 혁명을 가로막는 것으로 봤어요. 그런데 정치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단계에서 보면 정치의 힘이라는 게 사람들과 합의를 이뤄내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일을 해낸 사람 중 DJ만 한 분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혁명을 꿈꾸는 사람’에서 현실정치가가 돼보니 야당 지도자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더라고 했다.

박용진은 1994년 성균관대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이른바 대장정PD파 총학생회장이었다. 그해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강병원이었다. 성향을 굳이 분류하자면 ‘21세기진보학생연합’후보였다. 강 의원이 2012년에 펴낸 책 <어머니의 눈물>에 따르면 서울대 농경제학과 89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한 그는 NL계열에서 학생운동을 하던 중 운동의 ‘현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생활진보대중정치대학생 모임’이라는 독자적 학생운동 조직에 참여하게 된다. 당시 학생운동권의 용어로 ‘생대’ 혹은 ‘관악자주파’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경향이다.

당시 총학생회장 선거는 취임하기 전인 늦가을에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993년 11월 치러진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 경선에서 그는 관악자주파와 진보학생연합 등의 정파가 연합해 만든 새로운 학생운동조직 ‘21세기진보학생연합’의 총학생회 정 후보로 출마했다. 그의 맞상대는 당시 ‘PD파’ 후보로 나선 경제학과 3학년 김종철(90학번)이었다. 나중에 정의당 대표가 되는 그 김종철이다.

■97세대 재선 그룹의 공통점은

21대 국회가 구성된 뒤 여의도 정가에는 ‘민주당 학생운동권 출신 국회의원 70명 명단’이라는 문서가 돌았다.

5선 설훈 의원부터 시작해 91년생 초선 전용기로 마무리되는 문서다. 설훈 의원은 고려대에서 학생운동을 했고, 전용기 의원은 한양대 총학생회장을 지냈다고 문서엔 적혀 있다. 의원 선수(選數)에 따라 의원들 명단을 나열한 이 문서에서 이번 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나선 ‘양강양박(강병원·강훈식·박용진·박주민)’ 97세대 재선그룹은 45번부터 49번에 명기돼 있다.

강훈식 의원은 1999년 건국대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재수 93학번인 박주민 의원은 총학생회와 같은 자치기구는 아니지만 앞서 강병원 의원이 참여한 ‘21세기진보학생연합’의 4기 서울대 의장이었다. 말하자면 이번 당대표 선거에 나간 97세대 재선그룹 의원들은 모두 학생운동 경험이 있는 인사다.

‘양강양박’ 중 세 사람은 총학생회장을 했고, 한 사람은 학생운동조직의 학교대표를 지냈지만 재선 의원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내세울 정치적 자산이 학생운동 경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앞의 책에 따르면 강병원 의원은 1980년 이후 서울대 총학생회장 중 최초로 임기 중 수배나 구속이 되지 않고 무사히 직을 마친 총학생회장이었다. 임기를 마친 후 현역 입대한 것도 당시 이른바 ‘메이저캠퍼스’ 출신 총학생회장으로서는 최초였다. 군 제대 후 회사원 생활을 하다 노무현 캠프에 참여하고 싶다며 자기 발로 찾아 들어간 것이 정치입문의 계기였다.

“왜 건국대학교에서 만드는 우유 중엔 딸기우유가 없냐”며 총학생회 출마 당시 관련 공약을 내걸었던 강훈식 의원의 경우 2000년 총선 당시 ‘2030 유권자네트워크 공동대표’로도 활동을 했지만, 그후 신훈패션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대표이사를 한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현재 재선이지만 서른다섯 살이던 2008년부터 고향인 충남 아산 지역구에 도전해온 입지전적 인물이다.

민주노동당을 거쳐 민주당에 들어온 박용진 의원은 ‘유치원 3법 개정’, ‘이건희 차명재산 및 삼성 승계 관련 입법’ 등의 입법 활동 경력이 대표자산이다. 의원이 되기 전 박주민의 이름을 알린 건 학생운동 경력이라기보다 세월호 변호 등 민변 인권변호사 활동경력이다.

앞서 여의도 정가에 유포된 ‘민주당 운동권 의원 70명 명단’은 정확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당장 ‘97세대 재선그룹’에 이번에 불출마 의사를 밝힌 전재수 의원이나 민변 출신인 이재정 의원이 빠져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86그룹(80년대 학번으로 60년대 생)에 비해 97그룹(90년대 학번으로 70년대 생)의 수는 모두 합쳐 10여명 안팎에 불과하다. 97세대의 다수는 현재 40대지만, 선두세대인 90년대 초반 학번 인사들은 어느덧 50대의 나이에 진입했다.

당장 정치권의 선배 그룹인 86세대 때는 안 그랬다. 1996년 총선 때 1985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김민석 의원이 ‘젊은 피’로 정치권에 들어왔다. ‘386의 정치권 진출’의 효시로 간주된다(김민석 의원 역시 이번 당대표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1996년을 기점으로 본다면 ‘86의 전성시대’가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국회의원과 같은 선출직은 한정된 자원이다. 세대적 관점에서 평가해본다면 소수의 정치적 자원이 특정 경험을 공유한 세대에 의해 오랫동안 독점되고 있다.

궁금한 점은 이것이다. ‘양강양박’의 이번 당대표 출마는 그동안 86세대의 하위파트너로 간주되던 97세대의 자기 세력화, 포스트386의 등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과거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출마했던 DJ·YS가 그랬던 것처럼 5~10년 뒤에 이들의 당대표 선거 도전이 세대 반란의 이정표, 또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까.

당대표 출마를 선언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 두 번째)이 지난 6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의원총회에 참석하며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박 의원 뒤로 이재명 의원과 강병원 의원이 인사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당대표 출마를 선언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 두 번째)이 지난 6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의원총회에 참석하며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박 의원 뒤로 이재명 의원과 강병원 의원이 인사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세대반란으로 이어질 가능성? “적다”

기자가 접촉한 정치권 관계자·정치평론가·선거 컨설턴트 중에서 이들의 민주당 당대표 출마가 ‘세대반란’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97세대로 묶이고 있지만 이들의 특징이 “86세대를 뛰어넘을 수 없는 386의 아바타 세대”(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더 큰 이유는 이미 유력 당대표 주자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의원이다. 기자가 접촉한 정치전문가 및 민주당 관계자들 모두가 이 의원의 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당대표 관련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2위를 기록 중인 박용진 의원을 중심으로 (反이재명) 단일화 논의가 나오고 있지만, 논의에 흔쾌히 응하는 다른 주자가 없다.

“(97세대들이 자신을 차별화하려면) ‘이재명에 반대한다’ 하나만으로는 안 된다. 명확한 깃발이나 노선이 있어야 가능하다. 아직 민주당의 당대표 경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지만 97세대 출마자들 인터뷰를 보면 ‘왜 이재명이 안 되는가’에 대해 ‘지방선거·대선 패배 책임이 있지 않냐’고만 답한다. 그렇다면 거꾸로 반문할 수 있다. 만약 지방선거에서 선전했고 결과가 민주당에 괜찮았다면 나와도 상관없는 거였냐고.”

김민하 정치평론가의 말이다. 그는 누가 되든 민주당의 새 지도부가 유력주자인 이재명 위주의 지도부가 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권리당원 성향이 어느 날 갑자기 바뀌는 것이 아니고, 극성스러운 팬덤이 단기간에 이재명에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기도 어렵다. 당내 계파 분립에 의존한 반(反)이재명 노선에 정치공학적 한계가 있다면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들이받는 확실한 믿음과 대안적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97세대 출마자들로부터는 그런 ‘결기’가 보이지 않는다.”

당장 7월 28일에 있을 예비경선을 넘어서야 한다. 컷오프를 통해 이날 당대표 후보자는 3명으로 압축된다. 상위 3명을 남기고 나머지는 탈락한다. 3명 안에 들어가야 당대표 선거 본경선에 나갈 수 있다. 예비경선은 중앙위원 70%, 여론조사 30%로 치러진다. 국회의원, 당 지역위원장, 청년·여성 위원장, 대의원 등 당 공식라인의 반영비율이 높다.

1차로 통과해야 하는 관문에선 여론조사결과와 같은 인지도보단 당내 위상이나 지도력 등이 더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는 의미다. 이재명 후보가 당연 1순위, ‘상수’로 본다면 나머지 두 자리는 누가 차지할까를 두고 벌어지는 싸움이다. 박용진 의원이 예비경선 전후로 97세대 후보 단일화 이벤트를 제의했지만, 나머지 97세대 의원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단일화 논의는 당대표 본경선 3인에 들어간 뒤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인식이다.

이재명을 제외하고 최종후보 2인이 누가 될지는 의견이 엇갈린다. 97세대 후보가 두 자리를 다 차지할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역시 당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한 설훈·김민석 후보 중 한 사람이 차지하고 “97세대에게 돌아갈 후보 자리는 하나에 불과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전문가도 있다.

“올해 연초에 송영길 대표가 86세대 용퇴론을 이야기하고 사퇴할 당시 언론 기고에서 밝힌 바 있다. 세대교체의 본질은 나이가 아니라 세계관의 교체가 돼야 한다. 극단적으로 예를 든다면 1980년대생인 김남국이 당대표가 된다면 민주당이 달라질까. 현재 민주당의 86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 주류 세계관은 거칠게 말하면 운동권 세계관이다. 이번에 당대표 선거에 나온 97 재선 그룹이 86세대의 주류인 NL과 다른 ‘PD’ 또는 ‘비NL’이라고 하더라도 그 차이는 작다. 간단히 말해 그냥 운동권이다.”

민주당 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최병천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KSOI) 부소장의 말이다. 최 부소장 역시 굳이 따지면 97세대다. 민주노동당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해 민주당으로 넘어온, ‘양강양박’ 주자 중엔 박용진 의원과 비슷한 정치적 경력을 갖고 있다. 그는 ‘본질적으로 운동권 세계관’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현재의 민주당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차이가 있다면 민주당은 수권 가능한 운동권 정당이니 좀더 지지율에 민감하다. 반면 진보정당계열은 지지율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편이고.”

그가 보기에 ‘지지율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지면’ 민주당도 하는 행태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검수완박 추진이나 문재인 정부기간에 보여줬던 대표적인 정책 노선-소득주도성장이나 최저임금정책, 임대차법, 종부세·양도세법 개정 추진 등-에서 민주당이 보여줬던 것은 이 386세계관이 강하게 투영된 노선이었다는 주장이다. 그가 보기에 이번에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는 97세대 인사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아직까지는 86들의 아류로 그들 중심의 계파 대리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는 이렇게 되물었다.

“정치에서 계파는 불가피하긴 한데, 원래 새로운 정치를 하려면 결국 기존 계파와 전혀 다른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힘 쪽에서 이준석이 했던 역할이다. 과연 새로움이 뭐냐. 생물학적 나이 말고. 그게 본질적인 질문이다.”


■‘운동권 세계관’ 탈피 가능할까

박신용철 더 체인지플랜 선임연구위원은 “선거 때마다 민주당은 레토릭으로 세대교체를 말해 왔지만 진정 세대를 교체할 의지는 없었다”고 단언했다.

“참여정부 때만 하더라도 세대교체의 핵심은 학번 중심의 세대가 아니라 나이 중심이었다. DJ와 YS가 그랬듯 ‘40대가 60대의 선배 세대를 넘어선다’는 논리였다. 지금의 세대교체는 그런 것이 아니라 86들이 욕을 먹으니까 97들이 세대교체를 하겠다는 것이다. 운동권 출신 당원들은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일반 국민이 보기에 그게 무슨 세대교체인지, 가치적으로 전혀 공감하기 어려운 세대교체론이다. 당장 국민의힘 이준석을 대비해보면 알 수 있다. 선출직 경력이 없는 30대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이대남이라는 자기 세대를 끌어들여 자천타천 인정받은 것 아닌가. 민주당은?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준석만큼 정치적으로 ‘싸가지’가 있는 사람이 없다. 민주당 청년조직 사람들을 만나봐도 어느 시점에 무엇을 고민해 치고 나가겠다는 식의 전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본 적 없다.”

더 큰 문제는 이후의 전망이다. 97세대 당대표의 출마 러시가 선거 이후에도 97세대들이 현재 당의 중심에 있는 86세대를 넘어서 요직으로 진출하는 ‘세대반란’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당대표·최고위원 선거가 치러지는 전당대회 이후의 민주당은 이재명 당으로 급속히 변모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특히 윤석열 정부·여권의 공세가 강화되는 시점이라서 다양한 목소리는 줄어들고 선명야당·투쟁야당으로 똘똘 뭉쳐 생존형 정당으로 바뀌지 않을까”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어찌 됐든 최근에 보면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이재명 당대표 찬성 흐름이 굉장히 높다. 대선 3개월 후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계양을에 출마하면서 다른 목소리가 약화된 측면이 있다.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이 안티를 걸고 있지만 점점 분위기는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으로 흐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재명의 입장에서 계양을 출마는 신의 한수였다. 당대표 선거에서 이재명이 당선된다면 첫 번째 과제는 ‘이재명으로는 차기 정권 창출이 어렵다’는 부정적 시각을 불식하고 당을 장악하는 일이 될 것이다.” 과연 그렇게 흘러갈까.

“지금의 국면은 지난 대선의 연장선이다. 즉 민주당 지지자의 심성은 이재명 지지, 윤석열과 국민의힘 혐오, 문재인 지지라는 흥분상태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 ‘흥분’을 꺼뜨리면 다 죽는다고 생각하고 흥분을 유지 중이다. 한 번쯤은 ‘쿨 다운’을 해야 하는데 그럴 계기가 없었다. 그 상태에서 바로 치러지는 당대표 선거·전당대회가 과연 불과 6개월 전의 흥분상태를 바꿔 새로운 구도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밖에서야 그렇게 하는 것이 민주당이 살 길이라고 많은 사람이 이야기하지만 당내 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당 내외 여론 분위기가 유리돼 있다는 점이 민주당으로선 가장 큰 딜레마다.”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의 말이다. 그 역시 97세대 후보 중 누군가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면서도 이들의 목표가 당대표가 아닌 어느 정도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라면 “충분히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지는 있다”고 내다봤다.

“86세대와 97세대가 경험한 시대적 차이, 즉 1980년대와 1990년대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핵심은 권력의 분화라고 본다.” 예컨대 안치환으로 대표되는 1980년대에는 문화와 정치권력이 별도로 분화되지 않았지만 1990년대에 서태지가 잘 나갔던 건 운동권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1980년대에 비해 1990년대가 훨씬 더 많이 사회가 발전한 것은 이런 내부 분화가 있었다는 것이고, 이후 2000년대에 가면 그 분화는 더 심해진다. 1987년 6월항쟁 때 우상호 연세대 총학생회장은 배우 안내상·우현 등과 함께 데모했지만, 1990년대나 2000년대에 박진영이 연세대 총학생회장 옆에 서서 데모했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다.”

정치권의 97그룹이 자기 영역을 구축하려면 입체적으로 세대를 구성하는 언어나 방식도 달라야 정말 달라진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외부세력과 결합해 자기 언어를 만들어야 하는데 정치권의 선배 세대가 만들어놓은 문법과 방식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세대교체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본다고 이 교수는 분석했다.

우상호와 우현이 함께 총학생회를 한 1980년대는 문화와 정치권력이 분화되지 않았지만 서태지로 대표되는 1990년대는 문화와 권력의 내부분화가 시작됐다는 점이 다른 지점이고, 86세대와 97세대가 민주화와 진보에 대한 시각차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사진은 1992년 데뷔한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1992년 7월 1일 촬영, 경향자료) / 우철훈 선임기자

우상호와 우현이 함께 총학생회를 한 1980년대는 문화와 정치권력이 분화되지 않았지만 서태지로 대표되는 1990년대는 문화와 권력의 내부분화가 시작됐다는 점이 다른 지점이고, 86세대와 97세대가 민주화와 진보에 대한 시각차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사진은 1992년 데뷔한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1992년 7월 1일 촬영, 경향자료) / 우철훈 선임기자

■정치권 97세대 ‘너머’의 가능성

이들 97세대 그룹을 옹호하는 시각이 없는 건 아니다. 송현석 민생경제연구소 소장 역시 이들 97그룹이 성공하려면 자기 브랜드 형성이 제일 중요하다면서도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1990년대라 하지만 이들이 총학생회장을 하던 시점은 군사독재·권위주의 독재 잔재가 아직 청산되지 않았던 시점이다. 시대적 과제에 도망가지 않고 그 역할을 한다는 것은 책임감이나 사명감, 그리고 리더십과 같은 자질을 기본적으로 가졌던 사람이라는 의미다.”

그는 “언더든 오픈이든 학생운동의 책임자 역할을 했고, 또 선거를 치른 경험은 젊은 시절부터 고도의 정치행위를 해온 것으로 오히려 자랑해야 할 사안”이라며 “개인별로 보면 모두 다 나름의 진정성과 실력을 가진 사람들로, 이들의 학생운동 경력을 두고 주사파니 아니니 주홍글씨를 새기려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박신용철 위원은 “민주당 정치인 몇명으로 규정하지 않고 92·93에서 97·98학번까지 ‘97그룹’을 확장해보면 한국사회에서 가장 민주적인 세대이자 현재 민주당의 가장 큰 지지기반이 되는 세대”라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런데 이 그룹은 지금까지 한 번도 자기 목소리를 낸 적 없다. 이들의 특징이라면 군사독재정권 이후 서태지로 대표되는 문화적·시대적 변화를 거치며 자생적 민주화를 이뤄냈다.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이 된 지금까지도 생활 속 진보를 고민한다. 그동안 꾸준히 윗세대의 민주화 투쟁을 지지·지원해왔을 뿐 ‘한 번도 우리도 뭉쳐보자, 민주당이든 아니든 정치세력으로 뭉쳐보자’고 한 적이 없는 세대다. 이 세대가 제대로 나서면 어떻게 될까. 이 세대의 현재 위상은 경제력도 뒷받침되고 사회적으로 안정돼 있다. 386과 달리 머리만 민주가 아니라 생활적으로 민주화가 체질화돼 있는 세대다. ‘이재명 이후’ 40대 후반이 될 이 그룹이 주도한다면 민주당을 바꿀 수도 있다. 3~4년 후쯤엔 이들이 민주당 안팎에 자리 잡을 새로운 정치세력의 모티브가 될 것이다.”

‘윤석열·이재명 이후’의 전망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정권 후반기엔 97세대 그룹의 선택이 중요한 변수로 떠오를 수밖에 없으리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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