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의 플라이룸

표절과 학문의 유지

김우재 낯선 과학자
지난 8월 8일 국민대 정문 앞에서 국민대 동문 비상대책위원회가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2007년 쓴 박사학위 논문 조사결과에 항의하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8월 8일 국민대 정문 앞에서 국민대 동문 비상대책위원회가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2007년 쓴 박사학위 논문 조사결과에 항의하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멘토라 불리는 신평 변호사가 김건희 여사의 논문에 대해 “사회과학 논문에서 표절이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발언이 논란이 되자 “우리가 인문사회과학 계열의 논문을 쓸 때는 항상 연구결과로 나온 것을 토대로 해서 읽어보고 거기서 나오는 생각을 담아서 논문을 쓰는 것”이며, 따라서 “좀 철학적인 견지에서 볼 때 어떤 인간의 사유가 다른 인간의 기초적인 사유를 전제하지 않고는 될 수가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사유의 기반을 참조하는 행위와 문장을 통째로 베끼는 행위 사이에는 어떤 교집합도 존재하지 않는다. 전자는 모든 학문의 방법론적 기반이지만, 후자는 도둑질이기 때문이다.

■논문 도둑질과 기득권의 영어 실력

김건희 여사는 총 3편의 논문을 출판했다. 2편은 박사학위과정 시절인 2007년 ‘한국디자인포럼’에 실렸고, 1편은 박사학위 논문이다. 이중 ‘온라인 운세 콘텐츠의 이용자들의 이용 만족과 불만족에 따른 회원 유지와 탈퇴에 대한 연구’는 영문 제목에서 ‘유지’를 ‘Yuji’로 번역해놓는 바람에 화제가 됐다. 논문 전반에서 드러나는 어색한 번역투 한글은 논문 작성자가 기계번역기에 크게 의존했음을 드러낸다. 즉 저자는 논문 제목조차 스스로 영어로 번역하지 못할 정도로 영어에 능숙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 논문의 표절률은 43%로, 통상 논문 통과 기준이 되는 15%를 크게 웃돈다.

또 다른 논문 ‘온라인 쇼핑몰 소비자들의 구매 시 e-Satisfaction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연구’는 2002년 한국외대 석사학위 논문인 ‘인터넷 쇼핑몰에서 e-Satisfaction에 영향을 주는 요인 연구’를 거의 그대로 베꼈다. 심지어 이 논문의 영어제목은 베낀 논문의 영어제목인 ‘A Study’를 ‘The Analyze’라고 교묘하게 바꿔치기했는데, Analyze는 동사라 논문 제목의 첫 단어가 될 수 없다. 김건희 여사가 진짜로 이 논문을 작성했다면, 그의 영어 실력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의 수준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수준인 셈이다. 이는 그가 논문의 영문 초록을 94%나 그대로 베꼈다는 점에서 더욱 확실해진다. 김건희 여사는 스스로 영어로 된 논문을 작성할 실력이 없어보인다.

■아바타 이용 운세 콘텐츠 개발 연구

‘온라인 운세 콘텐츠의 이용자들의 이용 만족과 불만족에 따른 회원 유지와 탈퇴에 대한 연구’. 김건희 여사의 국민대 박사학위 논문 제목이다. 신평 변호사는 이 논문을 읽어보지도 않고 논문의 표절 문제를 감쌌다. 이 논문의 진짜 문제는 표절 정도가 아니다. 그건 논문을 읽어봐야 알 수 있다. 저자는 정보화시대에 IT 기반의 디지털 산업과 운세 콘텐츠를 접목해 디지털 문화콘텐츠 산업 활성화를 꾀하고자 한다. 여러 운세 콘텐츠 중에서 김건희 여사의 관심 주제는 남녀의 궁합이다.

논문의 3.2절 ‘궁합’은 “사람에게는 모두 인연이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궁합은 그러한 다스림을 말하는 것으로 어떤 연이 천생배필이라 하더라도 그 연을 이끌어감에 있어서 소홀하면 그 연은 그 기운을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고, 혹은 아주 좋지 않은 연의 장단점을 파악하여 이끌어가는 기운은 좋은 연으로의 변화를 낳는다”는 궁합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적 관점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과연 좋은 궁합이란 무엇인가. 논문의 표34는 여러 사례를 통해 좋은 궁합의 예시를 보여준다.

“얼굴에 비해 코가 작은” 남자에겐 “입이 작은 여자”가 좋은 궁합이다. “대머리”의 남자에겐 “주걱턱의 여자”가 좋은 짝이라고 한다. “이마가 넓은 남자”는 “콧날이 반듯한 여자”와 “이마가 좁은 남자”는 “입이 큰 여자”와 어울린다. 표에 나열된 22개의 사례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는 논문에 기록돼 있지 않다. 많은 이들이 논문을 검증한 결과, 이 논문에 인용된 대부분의 문장과 사례들은 네이버나 다음 등의 포털 블로그 내용 및 네이버 지식인의 글을 대량으로 베낀 것이라고 한다. 좋은 궁합의 예시라고 논문에 기재된 저 표 역시 인터넷 블로그 어디에서 가져다 썼을 것이다.

■인문사회계열 논문 표절 불가피성 논제

신평 변호사는 인문학이 과거 학자들의 사유에 기대고 있다는 논리로 김건희 여사 논문의 표절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주장했다. 그럴 수 있다. 문장 표절률의 기준을 15%로 잡는 이유도, 불가피하게 문장이 중복될 가능성을 인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김건희 여사 논문에서 표절은 지엽적인 문제다. 학문의 영역에서 법으로 처벌이 가능한 부분이 표절 등의 연구윤리뿐이어서 정치권이 표절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일 뿐, 이 사건의 더 큰 문제는 대학이 학위장사를 통해 형편없는 수준의 박사학위자들을 대량으로 양산하고 있다는 비극이다. 김건희 여사는 바로 그런 학위공장 체제에서 탄생한 양산형 박사다.

논문의 표절 여부를 떠나 논문의 수준을 가늠해보자. 논문은 디지털 콘텐츠와 운세를 엮어 사업적 가능성을 타진해본다는 의도로 쓰여졌지만, 논문의 실증적 방법론은 겨우 3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뿐이다. 게다가 논문의 이론적 기반이 되는 부분은 인터넷을 뒤져 블로그 글을 그대로 베낀 것으로 추정되고, 심지어 제대로 된 참고문헌조차 달려 있지 않다. 실제로 주역과 궁합 등이 논의되는 15페이지 분량의 이론적 배경에서 각주로 제시되는 참고문헌은 단 2편뿐이다. 게다가 운세 콘텐츠 개발이라는 논문의 주제를 위해 이렇게 상세하게 주역의 음양오행 사상이 논의돼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논문의 분량을 맞추기 위해 인터넷 여기저기서 글을 가져다 짜깁기하다 보니, 제대로 참고문헌을 달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김건희 여사는 무속신앙에 큰 관심을 가진 인물이다. 즉 학자의 관심사가 논문으로 승화됐다는 측면에서 이 논문은 매우 바람직한 결과물이다. 문제는 자신의 관심사를 학문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실력 없이, 단지 학위라는 간판을 얻기 위해 수준 이하의 논문을 출판하고, 또 이를 승인해준 대학교수진의 썩어빠진 행태일 것이다.

사법부의 치부를 내부고발한 것으로 유명한 신평 변호사는 그의 책 <공정사회를 향하여>를 소개하는 신문칼럼에서 공정사회의 본질이 “기득권자들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정치”라고 말했다. 아마도 그가 말하는 공정사회에선 엉터리 논문이 교수들의 ‘정치질’에 의해 통과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신평 변호사는 꼭 이 논문을 읽어보시길 바란다. 수십편의 논문을 쓴 전 교수로서 이 논문이 어떻게 읽히는지 공정하게 판단해주시길 바란다. 학문의 수준은 유지(Yuji)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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