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문

팀 잭슨 “불평등·기후위기 주범은 복지보다 주식시장 우선한 정부”

지속 가능 분야 세계적 석학

팀 잭슨 영국 서리대 교수 인터뷰

“현 자본주의 체제, 구조적으로 문제 있어

생산성 제고만큼 돌봄 등 인간 서비스 중시해야“

팀 잭슨 영국 서리대 교수가 지난달 13일 영국 길퍼드 서리대 캠퍼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길퍼드 | 이창준 기자

팀 잭슨 영국 서리대 교수가 지난달 13일 영국 길퍼드 서리대 캠퍼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길퍼드 | 이창준 기자

팀 잭슨 영국 서리대 교수(66)는 지속 가능한 경제를 연구하는 세계적 석학이다. 지난 30년 동안 스웨덴 스톡홀름환경연구소와 영국 경제사회연구위원회(ESRC)·지속가능개발위원회(SDC) 등에서 지속 가능한 소비와 생산에 관해 선구적으로 연구해왔다.

잭슨 교수는 지속 가능성 분야에서 보여준 탁월한 리더십으로 2016년 힐러리상을 받았다. 힐러리상은 1953년 에베레스트에 인류 최초로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의 업적을 기리는 상으로, 기후 변화·빈곤·질병·평화·정의 등 인류 과제에서 리더십을 선보인 이들에게 뉴질랜드 힐러리 국제 리더십 연구소에서 매년 수여한다.

폭넓은 연구와 남다른 필력을 가진 그는 <성장 없는 번영>(2009·2017), <포스트 성장 시대는 이렇게 온다>(2022) 등 경제학 관련 저서뿐 아니라 극작가로서 환경 드라마 <왜가리의 울음> 등을 집필하기도 했다. 현재는 대학에서의 강의뿐 아니라 지속 가능한 투자 전략을 수립하는 금융사 등의 자문 역할을 맡으며 금융 개혁에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달 13일 서리대에서 잭슨 교수를 직접 만나 현재 세계 경제 상황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물었다. 그는 생산성 증가와 이를 통한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요소로 인해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는 유지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기후위기를 초래한 주범은 정부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 정책의 우선순위는 평범한 사람들이 충분한 임금을 받으며 건강한 상태로 생활할 수 있는 복지여야 한다”며 “그러나 정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보다 주식시장의 안정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산성에 집중하는 분야가 정부에 세금을 지불하고, 정부가 임금·생계·돌봄 기반 경제의 서비스 제공을 인수해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팀 잭슨 영국 서리대 교수가 지난달 13일 영국 길퍼드 서리대 캠퍼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길퍼드 | 이창준 기자

팀 잭슨 영국 서리대 교수가 지난달 13일 영국 길퍼드 서리대 캠퍼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길퍼드 | 이창준 기자

다음은 잭슨 교수와의 문답.

- 최근 찰스왕 대관식이 열렸다. 경제가 안 좋은 상황에 혈세 낭비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나는 군주제 유지와 관련해 찬성, 반대 모두의 입장을 이해한다. 참여민주주의는 때로는 쉽게 부러지기도 하고 불안정하며 기업에 의해 장악되기도 한다. 입헌군주제라는 사회적 안정을 도모한다는 측면에서 여전히 어느 정도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경제 위기 상황에서 포트홀(움푹 패인 구멍)이 난 도로를 달리는 황금마차의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군주제를 유지는 하되 축소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일 수 있다.”

- 최근 세계 경제 상황이 매우 불안정하다. 2008년 금융위기가 재발하는 것 아닌가 하는 어두운 전망도 나온다. 일련의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세계 경제가 불안정하다는 데 동의한다.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 불안정한 원인으로는 우선 코로나19와 팬데믹 회복 국면과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또 우리가 경제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 특히 지난 30~40년간 깊이 뿌리내린 신자유주의적 경제 개발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경제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성찰해야 한다고 본다. 경제와 사회 간의 관계, 사회 내 자산의 소유권 구조, 실물 경제의 역할이 무엇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만약 잘못 받아들이면 심각한 사상자와 피해를 양산할 것이다. 경제 붕괴로 정부가 서민을 보호할 수 없다면 사회 불안의 위험은 매우 크게 증가한다. 세계 무역의 붕괴로 국가 간 관계가 악화되거나 배타적 민족주의가 강화되는 것 모두 실재하는 위험들이다.”

경제 정책의 우선순위는 평범한 사람들이 충분한 임금을 받으며 건강한 상태로 생활할 수 있는 복지여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보다 주식시장의 안정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주요 위험이라고 생각한다.

- 팬데믹 초기 전 세계적으로 푼 유동성이 현재의 위험을 키운 건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유동성 폭발이 인플레이션에 기여했을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다만 나는 1970~1980년대 당시처럼 유가가 인플레이션 조건을 자극했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고 생각한다. 유가 급등의 원인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앞으로 금융위기가 닥칠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어느 정도 재정적 여유가 있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지난 금융위기와 그 회복 과정에서 경험했다시피 긴축 기조는 경제 회복의 측면에서 피해를 양산한다. 경제 정책의 우선순위는 평범한 사람들이 충분한 임금을 받으며 건강한 상태로 생활할 수 있는 복지여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보다 주식시장의 안정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주요 위험이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조건이 더 엄격해지고, 사회 보장이 더 후퇴하고 사회 복지, 건강 보호 시스템이 더 약화되면 삶의 질에 재앙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유동성이 증가하고, 유가가 급등한 1970~1980년대에 상황과 비슷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정부가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는 관심이 적다. 자금의 평범한 사람들의 안정성이 더 중요한 시기다.”

- ‘자본주의가 추락한 원인은 자본주의가 성장에 집착했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일반적으로 성장을 동반하지 않으면 자본주의 체제가 붕괴된다고 생각하는데, 성장 없이도 자본주의가 유지될 수 있을까.

“성장 없이도 자본주의가 유지될 수 있을지 솔직히 나도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자본주의 내부에 성장을 필요로 하는 경향이 있고, 그 경향은 대체로 이윤을 유지하고 극대화하는 좁게 정의된 생산성에 의해 좌우된다고 본다. 이런 자본주의의 구조적 요소로 인해 자본주의가 유지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생산성 증가와 이를 통한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건 우리가 돌봄 경제라고 부르는 것을 유지하고, 사회 복지에 투자하고,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걸 어렵게 한다. 바로 이런 지점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사실 자본주의 사회라는 개념은 매우 광범위하다. 어떤 사회든 그 사회 안에는 여전히 자산이라는 의미의 자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좁은 의미에서 자본주의만 본다면, 자본주의는 우리 시대의 경제, 사회 조직 시스템이지만 이전 시대는 그렇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향후 또 다른 경제, 사회 조직 시스템이 도래할 수 있다. 열린 자세로 다음에 어떤 것들이 도래할지 생각하는 게 우리의 의무라 생각한다. 우리가 그걸 자본주의라 부를지, 다른 이름으로 부를지는 크게 중요한 건 아니라 생각한다.”

- 성장에 집착한 자본주의, 자본주의를 나쁘게 만든 가장 큰 주범이 누구일까, 재화나 서비스 등 모든 걸 카지노로 만든 금융인가.

“일부 그런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높은 수익을 누리고, 불안정을 조성하며 또 실물 자산이나 생활 방식에 투자하지 않는 대신 환경을 해치는 제품, 물질적 자원 추출에 투자했다. 그리고 그 수익을 불평등하게 분배하는 자본주의의 역기능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책임이 금융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금융은 두 가지 이유로 존재한다. 하나는 실물 경제의 필요성에 의해서다. 물질적 자원을 추출하고 환경 피해를 야기하는 기업이 금융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 정책이나 입법 과정에 금융이 필요해서다. 따라서 우리가 자본주의의 역기능, 금융의 책임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투기적 투자가 도드라지긴 하지만 정부를 더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정부는 기업보다 실제로 더 광범위하게 큰 책임을 지니기 때문에 정부가 얼마나 규제하는지 또는 얼마나 규제하지 않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 성장 신화의 부작용 혹은 그 결과로 악화한 부의 불평등 또는 양극화, 기후 변화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양극화의 경우 금융이 일정 부분 가속화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가령 금융위기나,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급락 급등한 자산 가격은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켰으니까. 그럼 기후 변화의 주범은 누구라 생각하는가, 화석연료 기업인가? 아니면 그런 기업을 지원 장려하는 정부인가.

“정부다. 현재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기후 변화와 관련해 많은 정부들은 할 수 있었던 일을 하지 않았고, 해야 할 일도 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그들은 화석 연료 기업이 책임지지 않도록 허용했고, 기업에게 책임을 묻지도 않았다. 해당 기업들은 우리가 기후 변화와 같은 것에 직면할 것이라는 것을 40~50년 전에 알고 있었다. 동시에 정부는 기업들이 효과적인 로비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고 이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 결과 에너지 시스템을 전환하는 데 필요한 자금보다 정부가 화석연료 기업들 지원하는 보조금이 더 많다. 세금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후 변화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정부에 묻는 건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다만 정부는 정치 조직이고, 정치는 구성원들의 승인 동의를 필요로 한다. 모두가 변화에 동의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이 때문에 정부가 기후 변화 대응에 찬성하는 진보적 노선을 취하려 해도 쉽지는 않은 부분도 있다. 가령 프랑스에서 탄소세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을 때, 매우 격렬한 대중의 저항에 직면했다. 격렬한 저항은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쪽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긴 한 것이지만. 아무튼 우리는 미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정부가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기업에 의해 부패하지 않아야 하고, 정책 개발에 있어 대중이 항상 지켜보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녹색 성장은 실재하는 것이 아닌 열망이다. (녹색 성장이라고 추진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모든 것을 약화시키는 성장을 보고 있다.

- ‘성장 신화를 깨야 한다’ ‘무한한 성장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녹색 성장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인 것으로 아는데 지속 가능한 성장은 정말 없는 건가.

“사실 흔히 말하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무엇인지 모호한 측면이 있다. 우리는 성장을 선택하고 이것이 지구에 피해를 준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지 않은 성장을 찾아 ‘지속 가능하다’고 말하곤 한다. 지속 가능한 성장, 녹색 성장 또는 스마트 성장이라고는 하는데 분명 방법이 있긴 할 것이다. 솔직히 그린워싱이라 비판할 수 있는지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그것들을 ‘포부 전략(Aspirational strategy)’이라고 칭하고 싶다. 성장을 계속하려는 포부고, 조직에 깊숙이 박힌 포부인 것이다. 성장이라는 단어, 성장의 개념, 성장의 전망, 발전으로의 성장에 대한 문화적 친화력에 깊숙이 박힌 포부다. 동시에 궁극적으로 우리가 가진 성장, 우리가 본 성장,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성장이 매우 지속 불가능하다는 인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것, 성장을 유지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들고 녹색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열망이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 녹색 성장을 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물질적 수요를 줄이고, 탄소 배출을 줄이고, 생물다양성을 재생하는 세계적인 수준의 성장을 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그 모든 것을 약화시키는 성장을 보고 있다. 그래서 녹색 성장이나 지속 가능한 성장 또는 스마트 성장에 관한 모든 호칭은 좋은 의도를 내포할 수도 있고, 나쁜 의도를 내포한 단어, 선의를 가진 사람들의 열망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런 방식의 성장이 실제 우리에게 도움이 되냐, 안 되느냐다. 나는 아직까지는 도움이 되는 성장은 보지 못했다.”

팀 잭슨 영국 서리대 교수가 지난달 13일 영국 길퍼드 서리대 캠퍼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길퍼드 | 이창준 기자

팀 잭슨 영국 서리대 교수가 지난달 13일 영국 길퍼드 서리대 캠퍼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길퍼드 | 이창준 기자

- 한국은 지난 반세기 만에 가장 급속히 성장한 국가다. 이제는 더 성장할수록 행복이 더해지지 않는 수준에 도달한 것 같기도 하다. 빈부격차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런 한국의 상황을 어떻게 볼 수 있을지 묻고 싶다.

“나는 한국에 대해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한국이 지금껏 걸어온 길은 일종의 서구식 자본주의 모델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 길이며, 전 세계에서 볼 수 있는 빈곤 저소득 국가가 추구하는 방향의 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연구 결과 1인당 소득이 약 2만달러 이상으로 증가하면 평균 수명이 늘고, 유아 사망률은 줄어든다. 또 교육 참여도와 삶의 만족도, 행복도 증가하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 뒤 수익이 감소하는 일종의 임계점에 도달하고 때로는 성장은 하지만 한계수익은 줄어드는 현상도 발생한다. 영국이나 미국, 유럽에서는 이같은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은 궤적에 놓여 있는 것 같다. 한국은 성장 측면에서 매우 잘 해낸 국가다. 그러나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등 많은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추구한 방식, 불평등을 야기하는 자본주의 체제 등 고질적 문제는 한국이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기준 압도적으로 높다. 절대적인 선진국이 아님에도 한국인들이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특히 더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의 성장이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을까.

“이례적인 빠른 성장 속도가 무관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불평등이 심화하는 과정에 많은 부와 특권, 물질적 재화와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불평등을 보며 사회에 불안, 우울, 절망의 요소를 양산한다. 또 물질적 지위나 생산성이 제자리에 놓이거나 특정 종류의 문화에서 누락되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잃게 되는 것도 우울감과 절망감을 키우는 요소다. 다만 이같은 일반적 상황이 한국에도 구체적으로 적용되는지는 더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만약 사실이라면 문화적 의미에서 사회 분열은 매우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 평등한 사회일수록 구성원 전체의 행복도가 높아진다는 명제에는 빈곤층이든, 부유층이든 큰 이견을 나타내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평등을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 행위로 들어가 ‘세금을 더 많이 걷는 사회일수록 행복도가 높아진다’고 하면 거부감은 커질 것 같다. 평등한 사회에도 정도가 있을 텐데, 정말 모두가 평등해지면 구성원의 행복도가 최고조에 달하게 되는 건가.

“어려운 질문이다. 우선 사회가 평등할수록 행복도뿐 아니라 불안·우울·자살이 줄고, 사회 결속력이 높아지는 등 공동체를 더 낫게 만든다는 증거는 매우 많다. 따라서 평등한 사회는 가난한 사람은 물론 부자에게도 이롭다. 나는 서구, 특히 신자유주의 체제가 사회와 환경, 미래 세대를 희생하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이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걸 문화적 덕으로 여겨왔다. 이에 대한 도덕적 근거는 애덤 스미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찾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런 사상은 경쟁을 유발하고 궁극적으로 더 나은 사회로 이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그건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목도했다. 이기적인 행동이 사회적 덕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진보의 원동력으로 다시 이기심을 주목하고 있다. 합법적으로 세금을 내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은 부자들이 원하는 완벽한 전략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성향이 인간 본성이나 자연 법칙과는 괴리가 있다는 걸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더 많이 가졌다고 해서 꼭 도덕적 나침반이 없지는 않다. 다시 평등이 최상에 달하면 행복도 최상에 달하냐는 질문으로 돌아가면,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행복이 전적으로 물질적 조건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다. 사실 우리 모두 알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행복이라는 건 그 자체에 많은 의미가 내포돼 있고, 삶을 개선하고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성취감 등이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노력할 것이 전혀 없는 완벽하게 평등한 사회에 산다면, 여러 면에서 시간이 지날 수도 특별히 나아지는지 알기 어렵다.”

GDP는 자동차의 RPM과 같다. 즉, 엔진이 얼마나 빨리 회전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RPM만으로는 자동차의 속력을 알 수 없고, 도로 위에 있는지 아니면 도로 밖에 있는지도 알 수 없다.

- 사람들의 행복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국내총생산(GDP)이 많은 측면에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며 다양한 ‘대안 지표’가 제시되고 있다. 구성원의 만족도 등을 두루 아우를 수 있는 ‘행복 지표’는 어떤 게 있을까.

“말한 것처럼 지표가 많다. 그렇게 많은 이유는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려주는 단 하나의 숫자라는 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GDP는 실제로 경제의 분주함, 생산, 소비, 소득, 이윤, 임금 측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합리적 지표다. 다양한 경제 행위자 간의 흐름과 전반적인 활동 수준을 측정하는 데 능숙한, 복잡한 국가 회계 체계다. 그러나 그것은 진보경제적 안정, 심지어 웰빙이나 인구의 건강, 얼마나 지속 가능한 활동인지 또는 지구 자체가 인간 활동에 얼마나 잘 대처하고 있는지에 대한 지표가 아니다. 인구가 얼마나 건강한지, 경제 활동이 얼마나 지속 가능한지, 교육의 강점, 국민의 행복, 자녀의 정신 건강, 생물 다양성의 온전함을 알려주는 지표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항상 우상향하는 하나의 지표를 찾는 건 일종의 성장 신화라고 생각한다. 지표를 통해 사회가 항상 진보하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다. 행복이나 지속 가능한 경제는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대규모로 성장하지 않는 기간을 거칠 수도 있다. 때로는 매우 빠르게 성장할 수도 있다. 빠르게 성장하지 않더라도 안정적 경제가 필요할 때도 있다. GDP는 자동차의 RPM(분당 회전 수)과 같다. 즉, 엔진이 얼마나 빨리 회전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RPM만으로는 자동차의 속력을 알 수 없고, 도로 위에 있는지 아니면 도로 밖에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다양한 지표들은 각각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행복과 같은 것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GDP 하나만이 아닌 경제를 더 진지하고 탐색하고 연구 수행하는 데 더 도움이 되는 지표들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팀 잭슨 영국 서리대 교수가 지난달 13일 영국 길퍼드 서리대 캠퍼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길퍼드 | 이창준 기자

팀 잭슨 영국 서리대 교수가 지난달 13일 영국 길퍼드 서리대 캠퍼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길퍼드 | 이창준 기자

- 여전히 많은 제3세계 국가들이 절대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도 일정 단계까지는 성장하고 물질적 풍요로 행복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런 측면에서 탈성장 논의는 서구와 선진국 중심 담론이라 봐야 할까.

“가난한 국가에서 소득 증가가 구성원의 행복과 기대 수명을 증가시키고, 영아 사망률을 줄인다는 건 매우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탈성장 담론이 서구나 부유한 경제의 일종의 사치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나는 탈성장 담론을 ‘경제의 책임’이라 말하고 싶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탈성장이나 포스트 성장 패러다임을 강요할 수는 없다. 불평등이 심각한 세상에서 빈곤층의 생활에 필수적인 조건을 개선하는 약간의 소득 증가는 필요하다. 그러나 더 나아가 양질의 물, 위생, 주거, 저렴한 에너지 등으로 그들이 오랫동안 건강한 삶을 살게 하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 부유한 국가가 자원을 계속 소비하고 에너지를 계속 늘리고 경제를 계속 성장시키는 모델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자성할 필요성이 더 커졌다. 모두를 위해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건 빈곤층의 생활 조건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담론이다.”

- 한국에서는 코로나19 전후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쟁이 불거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업은 주요 생계 수단이다. 국가가 기본소득으로 시민의 생계를 일부 책임진다면, 시민들이 직업의 굴레에서 벗어나 창의성을 발휘하거나 효용을 느낄 수 있을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기본소득은 일과 삶을 통해 자립할 수 없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메커니즘이다. 다시 말해 시민의 복지에 대한 정부가 책임이 있음을 시사하지만, 정부가 모든 사람들의 복지를 달성할 수 있는 소득을 제공할 책임이 있다는 말과는 다르다. 분명 기본 소득은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예컨대 자원 봉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고, 그들의 창의적 활동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게 한다. 또 궁극적으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는 안정망 역할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정부가 모든 사람의 소득에 책임이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시민들의 복지는 그들의 소득과 공공 기본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시키는 데 있다. 그리고 기본 소득에 관한 착각 중 하나는 모든 사람에게 먹고 살 수 있는 충분한 돈을 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나는 이건 옳지 않은 생각이라고 판단한다. 기본 소득은 직업을 가지고 노동할 때 기대하는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또 노동을 할 동기를 없애면 삶의 의미와 목적의식도 잃을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똑같은 소득을 국가에서 제공하는 건 조심스레 접근해야 할 사안이다.”

- 인공지능이 화두다. 챗GPT 등 인간보다 글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리는 생성모델 개발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 발달로 인간이 의무적인 일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고, 오히려 돌봄이나 창의성 발휘 등에 더 몰두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의견도 있다.

“기술 자체가 우리 삶의 질과 작업의 질을 향상시키는 도구가 되는 것이 최고의 비전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기술에는 위험이 따르고, 이미 존재하는 위험이기도 하다. 인공지능 기술이 점점 개발될수록 첨단 기술에 접근하며 사는 이들이 늘고 있다. 또한 한편으로 돌봄, 사회복지, 건강, 교육, 예술처럼 항상 인간의 시간에 의존해 온 직업도 있다. 물론 점점 더 스마트해지는 기술로 인해 사회에서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있고 우리는 그 격차를 목도하고 있다. 격차와 불평등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는 인적 서비스보다 생산성에 가치를 두고 해당 직업들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 떄문에 그들의 노동 조건과 소득, 생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악화하고 사회에서 2등, 3등 시민으로 전락하게 만든다. 나는 이런 생각이 그들에게도 피해를 주지만 사회에도 큰 피해를 준다고 본다. 바로 이 돌봄 경제에 있는 사람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우리의 생명을 구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기술 지향적이고 생산적이며 빠르게 성장하는 사회 속 평가 절하되고 있다. 신기술로 인해 더 그들의 처우와 사회적 평가도 악화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가 정말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생산성도 높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이 우리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것과 함께 인간 서비스, 다시 말해 인간의 일과 창의성, 사회의 핵심 가치인 돌봄 노동 등 다양한 요소에 대해서도 똑같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 기술 발달로 소수 자본가에게 이윤이 집중되고 있다. 이윤을 고루 배분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는 불가능한 건가. 기술 발달과 성장, 높은 생산성이 모두의 번영에 기여하도록 하는 체제는 없을까.

“좋은 질문이다.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이라 생각한다. 나는 우리가 높아진 생산성을 사회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체제는 있다고 생각한다. 돌봄 경제처럼 사람들이 의미 있고 목적 있는 일을 하며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서로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기존 패러다임에 비하면 더 느리고 덜 생산적이지만 경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다. 다만 현재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이상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일어나는 일은 보통 특정한 전제를 가지고 있다. 전제 중 하나는 사람들이 생산성에 따라 임금을 받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임금은 생산성과 관련이 있고, 돌봄 경제보다 생산적이고 기술 지향적이며 물질 지향적인 경제를 중시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둘 사이에 불평등이 악화한다. 그리고 나는 자본주의가 그 불평등을 체계적으로 주도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에서 이같은 불평등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생산성에 집중하는 분야가 정부에 세금을 지불하고 정부가 돌봄 기반 경제의 서비스 제공 모두를 맡는 것이다. 사람들은 돌봄 경제가 아이들을 키우고 아플 때 지원하고 늙어서도 돌봐준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며 단순히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한 보상을 임금으로 가져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정말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생산성도 높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이 우리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것과 함께 인간 서비스, 다시 말해 인간의 일과 창의성, 사회의 핵심 가치인 돌봄 노동 등 다양한 요소에 대해서도 똑같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모두의 번영을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 교수 개인에 대한 질문도 하고 싶다. 대학에서 운영 중인 지속 가능한 번영 연구 센터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지속 가능한 번영 연구 센터는 ‘지구라는 유한한 행성에서 번영이란 무엇인가’라는 매우 간단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 간단한 질문이 아니다. 기술과 경제학·심리학·정치학·사회학을 두루 포함하는 복잡한 질문이다. 예를 들어 번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만 해도 간단히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이를 심리학 측면에서 보면 인간 경험의 최고조, 정점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우선 찾아야 한다. 정점은 물건을 사고, 소비하고, 버리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도전을 극복하거나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경이로움을 느끼거나,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의 시간과 봉사를 제공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심리적 수준에서 우리에게 번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단계라 할 수 있다. 번영을 제공할 경제를 관리하는 구체적인 방법론도 연구한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성장에 기초한 경제학을 가지고 있다.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고민하며 왜 우리가 성장에 의존하게 되었는지 이해해야, 성장이나 고용에 덜 의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에서 성장에 덜 의존할 수 있는 방법, 고용이나 투자가 이뤄지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불평등과 기후위기라는 새로운 상황에서 경제의 안정성을 파악할 수 있는 거시 경제 모델을 가져야 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현재 목적에 맞지 않는 경제학을 가지고 있다.”

- 어떤 계기로 지속 가능 분야를 본격적을 관심을 갖게 됐는지도 궁금하다.

“나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5남매인데 어린 시절부터 우리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했다. 농장이나 병원 수술실 청소 등 할 수 있다면 뭐든지 했다. 그렇게 다양한 일을 하며 사회에 불평등이 있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성장 패러다임에 대한 나의 비판적 입장은 두 가지에서 비롯된 것 같다. 하나는 우리 세상에 대한 지속적인 질문이다. ‘우리가 계속 성장해야 하는 건 정말인가’ ‘행복은 더 많이 갖는 데서 오는 건가’ ‘정부가 요구하는 방식대로 행동해야 하는 것이 옳은가’ ‘기업은 폐기물을 자연에 버리고 자연은 모두 흡수해야만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이 내 연구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하나는 미래에 대한 긍정적 비전이다. 나는 부유하게 자라지 못했지만 요즘 아이들이 갖지 못했던 자연을 탐험하고 자연과 연결되는 일종의 자유를 누렸다. 나는 물질적 풍요가 아닌 가난하더라도 더 나은 삶, 더 인간적인 삶, 더 생태적인 삶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안전지대 밖을 내다보고 진보와 번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더 깊이 생각하고 질문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인간으로서 거의 꿈도 꾸지 못했던 일들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팀 잭슨 영국 서리대 교수가 지난달 13일 영국 길퍼드 서리대 캠퍼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 뒤 서리대를 상징하는 조형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길퍼드 | 이창준 기자

팀 잭슨 영국 서리대 교수가 지난달 13일 영국 길퍼드 서리대 캠퍼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 뒤 서리대를 상징하는 조형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길퍼드 | 이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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