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패인이 과연 오일머니 탓일까

박은하 기자

엑스포 유치위 자문 교수 “패인은 금전적 투표”

사우디, 저소득국 대상 부채탕감 등 구조문제 공략

한국은 ‘기술’ 개발 통한 농업·기후해결 강조

사우디 엑스포 유치 대표단이 28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 투표가 열리기 전 밝은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사우디는 이날 총회 투표에서  119표를 얻어 부산(29표)과 이탈리아 로마(17표)를 꺾고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지로 결정됐다. AP/연합뉴스

사우디 엑스포 유치 대표단이 28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 투표가 열리기 전 밝은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사우디는 이날 총회 투표에서 119표를 얻어 부산(29표)과 이탈리아 로마(17표)를 꺾고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지로 결정됐다. AP/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권을 따낸 비결로 ‘오일머니’의 힘이 꼽힌다. 하지만 엑스포 유치 과정을 보면 한국은 단지 오일머니 때문에 사우디에게 밀렸다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수의 저개발국가 대상 외교가 대표적이다. 한국이 ‘발전 경험 공유’라는 공여국 중심적 캠페인을 펼친 반면, 사우디는 ‘부채 해결’ 등 저개발 국가들이 현재 원하는 내용에 공명하는 전략을 내세웠다.

2030년 부산엑스포 유치위원회 자문을 맡은 김이태 부산대 관광컨벤션학과 교수는 28일(현지시간)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 직후 부산 유치 실패 원인으로 오일머니와 금권 선거를 들었다. 그는 “사우디는 엑스포 개최를 위해 10조원 이상 투자를 (하고), 저개발 국가에다 천문학적 개발 차관과 원조 기금을 주는 역할을 하면서, 금전적 투표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사우디 지지를 ‘금전적 투표’라고 표현한 것은 외교 결례 논란을 부를 수 있는 대목이다.

부산엑스포 유치위원회는 한결같이 사우디의 전략을 오일머니를 앞세운 물량공세로 규정해 왔다. 그러면서 ‘한국은 물고기가 아닌 물고기 잡는 법을 전수하겠다’고 강조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7월 카리브공동체(카리콤) 정상회의에서 “한·카리브 간 네트워크 및 소통 채널을 강화하고 기후변화 대응·해양수산·식량안보·재생에너지 등 관심분야에 대한 실질협력 확대하는 한편 분야별로 한국의 발전 경험을 공유하고 기술 전수를 강화하겠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 총리는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첨단기술 전수 등을 언급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도 지난 10월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부산 엑스포는 한국의 발전과 성장 경험을 국제 사회와 나눌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발전 경험 전수는 구체적으로 농업·정보기술(IT) 등 기술 지원에 집중돼 있다.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달 통일벼 품종의 벼 모종을 담은 모판을 들고 서아프리카 대서양의 섬나라 카보베르데를 방문했다. 한국은 아프리카의 쌀 증산을 위해 한국의 벼 종자와 농업기술을 전파하는 ‘K-라이스벨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기술혁신을 통해 식량·보건 위기 해결을 돕겠다는 발상이다.

사우디의 전략은 달랐다. 부채 문제에 대한 접근이 단적이다. 사우디는 지난 9일 리야드에서 열린 사우디·아랍·아프리카 콘퍼런스에서 가나를 비롯한 부채 문제를 겪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에 5억3300만달러(약6870억원)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에너지 지원과 더불어 부채 탕감을 위한 무상 융자 등이 지원액에 포함됐다. 사우디는 2020년 주요 20개국(G20) 의장국 시절에도 아프리카 국가를 대상으로 한 채무탕감과 이자지불 유예를 주장했다. 기술이나 현물 지원을 넘어서 국제사회의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문제 해결을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이러한 시도들이 국가의 외교역량 확대를 위한 사우디의 주요한 전략이라고 소개했다.

사우디의 전략은 최근 극심해진 부채위기를 겪고 있는 개발도상국에 유효했다고 평가된다. 유엔과 세계은행에 따르면 아프리카 국가의 올해 부채상환액은 지난해보다 35% 증가했다. 선진국의 금리 인상, 강달러 현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연달아 겹치며 악재가 됐다. 가나 등 비교적 견실한 경제성장을 했던 국가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게 됐다. 일부 국가들은 자국민을 위한 보건비보다 선진국 금융기관에 내는 이자가 더 많다.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 미아 모틀리 바베이도스 총리는 기후대응을 위해 선진국이 개발도상국 부채를 탕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뒤늦게 엑스포 유치전에 뛰어들며 저개발국과 접점을 늘렸지만 기후·보건위기 등에서도 ‘금전적·기술적 지원’에 그치고 있다. 부채탕감 등이 대상국의 관심사이지만 선진국과 저개발국 간 입장차가 첨예한 문제 등에 대해서는 발언을 회피해 왔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한국의 발전 경험 역시 태평양·카리브해 도서국에 적용하기 쉽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전수’ 또는 ‘공유’를 거론하는 전략이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프리카 국가들에 큰 영향력을 지닌 중국과의 껄끄러운 관계가 득표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아프리카에 압도적 영향력을 가진 중국을, 아프리카 섬나라쯤으로 취급하는 현재의 외교정책으로 국제적 관계를 풀 수 없다”면서 “외교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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