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히면 죽는다’ 윤 대통령 당무개입 잔혹사

유설희 기자

이준석·나경원·김기현 등 축출

그릇된 정당민주주의관 지적

“이 정도면 쫓아낸 사람이 문제”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4년 신년인사회에서 신년 덕담을 하는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왼쪽)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4년 신년인사회에서 신년 덕담을 하는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왼쪽)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실이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사퇴 요구를 한 사실이 알려지자 윤석열 대통령이 당무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비판이 22일 제기됐다. 윤 대통령의 당무개입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당 권력 재편기마다 반복됐다. 정당민주주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인식이 희박하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야당은 불법 가능성도 제기했다.

윤 대통령의 당무개입 논란은 대선 전부터 일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윤 대통령과 갈등을 빚은 이준석 전 대표가 징계를 받고 대표직에서 물러난 일이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대선 전인 2021년 12월 이 대표의 성비위 의혹에 대한 증거인멸 교사·품위 유지 의무 의반에 대해 징계를 개시했고, 이 전 대표는 정부 출범 직후인 2022년 7월 당원권 정지 6개월 처분을 받았다. 같은 해 10월 당 윤리위는 이 전 대표가 윤 대통령을 ‘양두구육’ 등으로 비난했다는 이유로 당원권 1년6개월 추가 징계 처분을 내리면서 이 전 대표는 당대표직을 잃었다. 집권여당 현직 대표에 대한 사상 초유의 중징계 결정의 이면에는 ‘윤심’(윤 대통령의 의중)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당대표 선거 과정에서도 당무개입 논란은 되풀이됐다. 나경원 전 의원은 지난해 1월25일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에 앞서 당내 친윤 초선 의원 50명은 “자신의 출마 명분을 위해 대통령 뜻을 왜곡한다”며 나 전 의원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윤 대통령과 사법시험 공부를 같이 하는 등 가까운 사이로 잘 알려져 있던 나 전 의원의 불출마 배경에도 윤심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여권 핵심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나 전 의원이 대선 기간 자신을 적극적으로 돕지 않은 것에 대해 윤 대통령이 섭섭해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한다.

전당대회를 한 달 앞두고 당대표에 출마했던 안철수 의원 ‘찍어내기’ 논란도 있었다. 안 의원은 대선 후보 단일화를 한 인물이자 윤석열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었다. 윤 대통령이 안 의원을 향해 “실체도 없는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 표현으로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은 앞으로 국정운영의 방해꾼이자 적”이라고 경고했다는 사실이 지난해 2월5일 알려졌다. 안 의원이 “그 사람들(윤핵관)한테는 대통령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고 자기들의 다음 공천이 중요하다”고 직격한 것에 대해 이같은 반응을 내놨고, 안 의원은 “대통령의 선거 개입”이라며 반발했다.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 관계자들이 수십명 규모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 김기현 후보를 지지하고 안 후보를 비방하는 홍보물을 지속적으로 올린 사실도 지난해 3월 경향신문 취재로 드러났다.

친윤계 당대표 후보인 김기현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전당대회 규칙을 당원투표 비중 70%에서 100%로 바꾸는 과정에서도 윤 대통령의 입김이 결정적이었다. 윤 대통령이 당원투표 비중을 100%로 바꾸자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2022년 12월15일 경향신문 보도로 알려졌고, 같은 날 초·재선 의원들은 각각 선수별 간담회를 열고 당원투표 100%로 의견을 모으는 등 윤심에 따라 움직였다. 윤 대통령은 김기현 전 대표를 탄생시켜 친정 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나 김 전 대표마저 지난해 12월13일 사퇴했는데 윤심의 영향이 컸다. 윤 대통령은 김 전 대표에게 총선 불출마를 하는 대신 당대표를 계속 맡아 총선을 이끌어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는 친윤계 의원들의 총선 불출마 또는 수도권 험지 출마 요구가 분출하던 때였다. 이에 김 전 대표는 총선 불출마 대신 당대표직을 사퇴하는 길을 택하면서 국민의힘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됐다.

검찰 시절부터 윤 대통령의 ‘복심’으로 꼽혀온 한 위원장에 대해 대통령실이 사퇴 요구를 한 이유 역시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한 위원장 측 인사인 김경률 비대위원이 김 여사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낸 것을 두고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확인됐다.

집권여당 대표가 연속으로 ‘축출’되는 흑역사는 근본적으로 윤 대통령의 정당민주주의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날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정당 역사에서 당대표를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갈아치운 사람은 없다”며 “이 정도로 반복됐다면 쫓겨난 사람이 아니라 쫓아냈던 사람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당을 개인 소유물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윤 대통령의 노골적인 당무개입 논란은 위법 소지도 있다. 윤 대통령이 이관섭 대통령실장을 통해 한 위원장 사퇴를 압박했다면 직권남용죄 등의 법률 위반 소지가 있다고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은 말했다. 다른 여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비대위원장에 대한 사퇴 요구가 대통령의 직무 범위에 들어오느냐가 핵심인데, 직권의 범위를 확대해서 해석하면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여지가 있지 않겠냐”고 했다. 반면 다른 검사 출신 국민의힘 의원은 “정당 관련 일이 대통령의 직무 범위 안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려워서 인정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은 한 위원장 사퇴 압박에 대한 법적 조치도 검토하고 있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법률국에서 검토 중”이라며 “이렇게 대놓고 당무에 개입한 대통령은 없었다. 대통령의 당무 개입은 정치중립 위반은 물론 형사처벌도 될 수 있는 중대한 불법 행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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