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공천난맥상·제3지대 지지부진이 비례 돌풍으로 이어져
[주간 경향] “저는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건너야 할 것은 ‘검찰독재의 강’이고 ‘윤석열의 강’입니다. 조국혁신당은 오물로 뒤덮인 ‘윤석열의 강’을 건너, 검찰독재를 조기에 종식하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갈 비전과 정책을 제시할 것입니다.”
지난 3월 3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 조국혁신당 창당대회가 열렸다. 당대표로 결의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수락연설이다. 큰 환호가 이어졌다.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날 단상을 중심으로 기자석은 좌측에 마련됐다. ‘PRESS’라고 적힌 흰종이가 의자 위에 놓여 있었는데 대부분의 기자석은 행사가 열리기 수 시간 전부터 몰려온 지지자들이 이미 ‘점거’하고 있었다. 창당대회 참석자 상당수는 중장년층으로 보였다.
조국혁신당 창당대회를 취재하며 떠오른 것은 2012년 9월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대선 출마 선언 현장이었다. 당시 출마 선언식이 열린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구세군아트홀 바깥은 아수라장이었다. ‘안철수당’을 자처하는 정체불명의 정치권 주변 인사들이 제각기 자리 잡고 있었다.
서울 종로구 공평동에 마련한 캠프도 마찬가지였다. 캠프가 입주해 있는 빌딩에 ‘착한세상연합’, ‘CS코리아’ 등 안철수와 무관하면서 안철수를 파는 단체들이 입주해 아예 캠프 앞에 책상을 가져다 두고 ‘장사’하고 있었다. 안철수 후보가 대선 출마를 접자, 이들 역시 흔적도 없이 흩어졌다.
조국 창당, 12년 전 안철수 정치참여와 차이는
현재 조국혁신당 핵심그룹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건 올해 1월 중순이었다. 구체적인 지역구 출마까지 염두에 두고 신당 창당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2월 8일 자녀 입시비리와 감찰무마 2심 선고가 잡히면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측이 당황해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기자는 이 시점까지 ‘조국 없는 조국신당’, 즉 조국 자신의 출마 여부와 상관없이 ‘조국 가족을 도륙 낸 검찰개혁’을 내건 비례위성정당이 나타날 것이라고 보고 있었다. 설사 조 전 장관이 출마하더라도 이런 ‘조국팔이’ 정당들과 관계설정 때문에 골치 아파질 것으로 봤다.
지난 3월 3일 창당과 이어진 인재영입 과정을 보면 현재까지 그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전체 의사결정 과정을 인재영입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조국 대표가 장악하고 있다.
3월 5일, 인재영입은 언제까지 계속되는지에 대한 주간경향 질문에 당 대변인을 맡은 ‘영입인재 1호’ 신장식 변호사는 “영입위원장이 청와대 민정수석 출신이라 입이 엄청 무겁다”고 말했다.
“…아마도 3월 22일 총선후보자 등록 직전까지 계속될 것이다. 물론 남은 일정이 많지 않아 급하다. 국민의힘이나 민주당과 다른 정당들에 비해 그렇게 늦은 것은 아니다. 큰 정당들은 시스템이 받쳐주고 있는데 아무래도 신생 정당인 우리로선 로드(부담)가 많이 걸려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신장식 변호사는 지난 3월 5일 조국혁신당의 대변인을 맡았다. 3월 3일 창당대회장에서 공보단장으로 소개받았던 조용우 전 청와대 국정기록비서관은 대표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보팀은 민주당 당직자를 그만두고 입당한 정춘생 전 더불어민주당 교육연수원 수석부원장이 담당하는 것으로 조정됐다.
신장식 대변인은 지난 2월 22일에야 합류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조국 대표를 2월 초부터 짧은 기간이지만 깊게 만나 이야기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진보의 미래> 책에 담긴 비전과 가치나 유러피언 드림, 고(故) 노회찬이 꿈꿨던 7공화국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신장식의 뉴스하이킥> 방송 하차 후 만난 것이다. 원래 방송을 계속하려고 마음먹고 신림동에서 MBC 근처로 집까지 옮겼었는데….”
그는 ‘출마를 당했다’는 표현을 썼다. “윤석열한테 출마를 당한 셈이죠. 가만히 뒀으면 조국 대표는 선생으로 학교로 돌아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을 사람이었고 저는 방송할 사람인데.”
윤석열로부터 ‘출마당했다’는 영입인사들
지난 3월 3일 창당 행사의 사회를 본 서왕진 대전환포럼 상임운영위원장도 ‘깜짝 등장’ 인사였다. 이틀 뒤인 3월 5일 조국 대표는 그를 영입인재 3호로 발표했다. 당 정책 총괄을 맡게 된 서 위원장은 “지역구에 출마자들을 내보낼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 사무총장을 맡은 황현선 문재인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의 말은 조금 달랐다. 황 전 선임행정관은 지난 3월 6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총선기획단에서 지역구 관련해서는 논의는 하고 있다. 어찌 됐든간에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지역에서는 1 대 1 구도를 만들겠다는 원칙을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3월 6일 저녁 비례신청 공지가 떴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은 SNS를 통해 조국혁신당에 비례신청을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남 소장은 진보쪽에서는 부동산 정책과 관련한 대표적인 정책 전문가다. 영입인사로 발표되진 않았지만 홈페이지를 통해 당원가입 신청을 했다고 했다. 왜 선택지가 조국혁신당이었을까. 비례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민주당과 시민사회·새진보연합과 진보당이 추진하는 더불어민주연합도 있지 않나.
“시민사회 T.O로 들어갈 수도 있지 않냐고 하는데 가능성이 없다고 봤다. 어차피 민주당이 주도하는 것이고 내가 갖는 정책지향은 뚜렷하다. 이전 대선에서 민주당 자체가 갖고 있는 정책 한계를 뚜렷이 느겼다. 이재명 대표도 부동산개혁 정책에 대한 의지는 있었지만, 민주당 의원 주류가 정책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에 비해 조국혁신당은 작지만 실천적인 정책정당을 지향하고 있다. 설혹 비례후보가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부동산정책을 만드는 데 기여하겠다는 마음으로 비례지원을 하게 됐다.”
남 소장이 밝힌 조국혁신당 비례지원 소감이다. 조국혁신당이 내놓은 계획에 따르면 비례후보자 발표는 3월 15일이다. 중앙선관위 후보등록 마감 1주일 전이다. 역시 촉박한 일정이다.
조국혁신당 22% 지지, 컨벤션 효과일까
지난 3월 1일 리서치뷰가 발표한 여론조사 비례투표 의향 정당 항목에서 조국혁신당은 22%라는 ‘깜짝’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 조사에서 국민의힘이 만든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34%)가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고, 조국혁신당은 민주당이 만든 더불어미래연합(8%)보다 높은 지지를 받았다. 이 수치가 유지된다면 조국혁신당은 10명의 의원을 배출할 수 있다. 이어진 조사들에서도 조국혁신당은 9~15%의 ‘비례투표 의향’ 지지율을 얻었다. 막 창당한 정당이 누릴 수 있는 일종의 컨벤션 효과일까.
“처음 설문을 만들 때 민주당과 진보당·새진보연합이 참여하는 더불어민주연합당, 국민의미래 등을 제시했는데 선거여론심의위원회에서 송영길 검찰개혁해체당(소나무당)까지 포함해 창준위 등록한 상태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 당시 민주개혁진보연합 주체가 불분명하니까 조국신당(당시 등록명)으로 쏠림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풀이했다.”
조사를 진행한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의 말이다. 그러나 그는 ‘컨벤션 효과’를 넘어서 조국혁신당의 강세가 상당히 지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안 대표의 말이다.
“지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상당히 갈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공천과정이 역대급인 데다가 다음으로 ‘개딸’로 표명되는 강성지지층 입장에서는 더불어민주연합이 3개 정파에 시민사회까지 복잡한 나눠 먹기 행태를 보이기 때문에 투표장에 들어가선 더불어민주연합의 득표율이 높더라도 지분이 3분의 1밖에 안 되니 전략적으로 조국혁신당으로 교차투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비명성향 친문’이 비례에서는 조국신당으로 더 많이 이탈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민주당으로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이 될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까지 상황으로 볼 때 조국혁신당은 2020년 총선에서 정봉주·손혜원 전 의원이 주도해 창당한 열린민주당의 길을 갈 것으로 보인다. 열린민주당은 민주당의 중도지향을 비판하면서 창당했다. 민주당의 바깥에서 민주당을 견인하는 진보정책 정당을 지향했다. 연동형 비례제에 맞춤형 비례정당으로 추진된 열린민주당은 그러나 당시 민주당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당시 열린민주당과 별도로 추진된 더불어시민당은 우희종·최배근 교수 공동대표 체제였으나 사실상 양정철 당시 민주연구원장과 이근형 전략기획위원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열린민주당은 당원들에게 비례대표를 추천받아 다시 온라인 투표를 통해 비례순번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비례후보자 리스트를 마련했다. 조국혁신당 비례후보 선정·순번 결정 과정에서도 준거틀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총선에서 열린민주당은 151만2763표를 받아 5.4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조정 의석 2석에 병립의석 1석을 더해 모두 3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원내 비례정당으론 미래한국당-더불어시민당-정의당-국민의당에 이은 5당이었다.
조국혁신당은 ‘열린민주당 시즌2’ 이상의 성적표를 기대할 수 있을까.
민주당 공천 난맥상과 조국혁신당 바람
조국혁신당은 열린민주당과 비교했을 때 두드러진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유력 차기 대권주자 중 1명으로 거론되는 조국 대표가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 민주당 등 야권과의 관계도 2020년 총선 당시 열린민주당과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과의 거리보다는 가깝다.
공희준 시사평론가는 “조국혁신당이 틈새시장을 잘 노려 성공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금까지의 행보로 보면 조국혁신당은 비례전문 정당으로 보인다. 현재 준연동형 제도에서 민주당계 정당이나 국민의힘계 정당이나 위성정당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은 마이너스인데, 그 마이너스적 요소는 같은 날 창당한 더불어민주연합이 다 가져가고 조국혁신당은 위성정당이라는 꼬리표 없이 민주당표를 가져올 수 있다. 꼬리표는 피하면서 민주당 지지층을 가져올 수 있는 절묘한 포지션을 찾은 것이다.”
그는 조국혁신당이 종전에 만들어진 개혁신당이나 새로운미래 등 제3신당의 지위를 대체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선거에서 3신당을 만드는 쪽은 이상적인 공약이나 비전으로 지지를 받고 싶어하는데 현실적으로는 3신당은 동정표가 많다. ‘거대정당에서 억울하게 쫓겨났다’는 것이 지지하는 서사가 되는 것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싸울 때 지지받았던 것이 그런 동정 여론이었다. 윤석열이 갑이고 이준석이 을이었다. 그런데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의 결별 과정을 보면 ‘갑’인 이준석이 ‘을’인 이낙연에게 야박한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전이되면서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반면 조국혁신당은 동정 여론을 아직 타고 있다. 정치학의 세계와 현실정치는 다르다. 정치학에서는 비전·정책·가치·노선이 주된 동력이라면 현실정치에서는 인간적인 정리·연대·공감 등이 중요하다. 이준석은 정치학의 세계에 머무르는 반면, 조국 대표는 다양한 전문가 직역 출신 사람들을 영입하면서 현실정치에 한 발 내딛는 중이다.”
박신용철 더체인지플랜 선임연구위원은 조국혁신당 흥행은 민주당 공천과정에서 파행과 관련이 있다고 봤다.
“정치공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어떻게 보이느냐는 것이다. 실제 사실과 상관없이 이재명 체제의 민주당 공관위에는 친명이 아니면 다 자른다는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물론 컨벤션 효과도 있지만 이재명 민주당 공천과정에서 모양새가 안 좋아지니 민주당보다 문재인을 지지했던 사람들, 그들 중에서도 비명성향이지만 2019년 조국 사태 이후 조국 전 장관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는 상징적인 지역구 출마 전략을 병행하면 정의당을 대체하는 원내 3당을 넘어 과거 국민의당과 같은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는 명실상부한 원내 3당으로 나아갈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3당은 되겠지만 덩치를 더 키우기에는 딜레마가 있다고 본다.” 송현석 넥스트브릿지 운영위원장의 전망이다. “지금 조국혁신당이 비례 여론조사에서 좋은 성적표를 받은 것은 민주당 이재명에 대한 실망 내지는 갈 곳 없는 반작용이 더 커 보인다. 개혁신당이나 새로운미래 같은 정당의 주요 인사들이 비례보다 지역을 택하면서 상대적으로 더 부각되는 면도 있지만, 비례만으로는 민주당이나 범진보 이탈표를 100% 흡수할 수 없다. 공천이 마무리되고 지역별 대결 구도가 본격화될 3월 하순 이후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으면 조국혁신당의 메시지가 사라지게 된다.”
예컨대 정책만이 아니라 조국 대표 본인이나 영입인사들이 단기 필마 험지 출마 등 ‘행동’을 통한 메시지를 내야 조국혁신당의 확장이 가능하다는 인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