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교차 300도’ 달에서 영상 17도 유지하는 ‘신비의 구덩이’ 찾았다

이정호 기자

NASA의 달 관측 궤도위성이 발견…용암 동굴 무너져 생긴 구멍인 듯

두꺼운 천장이 유해 광선·운석 방어하며 온도 유지…상주기지 최적지

달 상공을 비행하며 지상을 촬영하는 달 관측 궤도위성(LRO) 상상도. LRO는 최근 온도가 영상 17도로 유지되는 구덩이를 달 표면에서 찾았다. 한국의 가을에 경험할 수 있는 쾌적한 온도다. 미래에는 이런 곳에 달 기지가 건설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NASA 제공

달 상공을 비행하며 지상을 촬영하는 달 관측 궤도위성(LRO) 상상도. LRO는 최근 온도가 영상 17도로 유지되는 구덩이를 달 표면에서 찾았다. 한국의 가을에 경험할 수 있는 쾌적한 온도다. 미래에는 이런 곳에 달 기지가 건설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NASA 제공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구덩이다. 밝은 햇빛 덕분에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덩이 바닥에는 평탄한 땅이 눈에 띈다. 비스듬하게 들이친 햇빛 때문에 구덩이 벽면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언뜻 보기에는 우물 같은 모습이다. 깊이는 34m, 폭은 90m이다.

이곳은 지구에서 38만㎞ 떨어진 달, 그 가운데에도 ‘고요의 바다’에 난 구덩이다. ‘고요의 바다’는 아폴로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내린 장소이기도 하다.

이 사진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운영하는 ‘달 관측 궤도위성(LRO)’이 최근 찍은 것으로, 지난 27일(현지시간) 공개됐다. 그런데 이 사진에는 특별함이 있다. LRO에 달린 열 감지기로 구덩이의 온도를 측정했더니 온도가 영상 17도로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17도는 도톰한 긴소매 셔츠 하나만 입으면 외출하기에 적합한 한국의 가을 기온에 해당한다. 극한의 추위와 더위가 지배하는 달에선 본 적 없는 ‘이상한’ 지역이 발견된 격이다.

한국 최초의 달 탐사용 궤도선인 ‘다누리’가 오는 5일 발사되고, 미국 주도로 인간을 달에 재착륙시키는 아르테미스 계획이 실행 중인 상황에서 이런 온화한 온도를 보이는 장소가 향후 달에 인간이 항상 머무는 기지를 짓기 위한 후보지로 떠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운영하는 달 관측 궤도위성(LRO)이 촬영한 월면의 구덩이 모습. 폭 90m에 이르는 이 구덩이 아래에선 영상 17도가 항상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달 표면 다른 지역에선 낮에는 온도가 영상 127도까지 오르고, 밤에는 영하 173도까지 떨어진다. NASA 제공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운영하는 달 관측 궤도위성(LRO)이 촬영한 월면의 구덩이 모습. 폭 90m에 이르는 이 구덩이 아래에선 영상 17도가 항상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달 표면 다른 지역에선 낮에는 온도가 영상 127도까지 오르고, 밤에는 영하 173도까지 떨어진다. NASA 제공

■ 달에 등장한 ‘쾌적한 온도’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와 콜로라도 볼더대 소속 연구진은 최근 국제학술지 ‘지구물리학 연구회보’를 통해 온도가 언제나 영상 17도로 유지되는 달 표면의 구덩이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발견은 NASA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전 세계에 공개됐다.

구덩이 사진은 달 상공을 도는 인공위성인 LRO에 최근 잡힌 것이다. LRO는 사진을 찍은 뒤 동체에 탑재한 열 감지기로 구덩이 온도를 측정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

달은 사실 아주 뜨겁거나 차가운 곳이다. 낮에 달 표면 온도는 127도까지 치솟는다. 반대로 밤에는 영하 173도까지 뚝 떨어진다. 지구처럼 온도 변화를 완화해줄 대기가 없어서 생기는 현상이다.

그런데 이 구덩이는 온도가 17도로 항상 유지되고 있는 사실이 발견됐다. 이유가 뭘까. 연구진은 구덩이가 용암 동굴의 천장이 무너져 생긴 구멍일 가능성에 집중했다. 용암 동굴에서 이미 형성된 쾌적한 온도가 뻥 뚫린 구덩이 밖으로 노출됐고, 이를 마침 LRO가 포착했다는 것이다.

용암 동굴의 두꺼운 천장이 월면에서 일어나는 극심한 온도 변화를 방어하는 차단막이 된 것으로 연구진은 분석했다. 지구에서도 동굴은 온도 변화가 크지 않아 식품 저장고로 이용되는 일이 많다. 비슷한 일이 달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연구진을 이끈 타일러 호바스 UCLA 연구원은 NASA 공식자료를 통해 “달에서 발견된 200개 이상의 구덩이 가운데 16개는 무너진 용암 동굴의 일부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상주 기지 지을 후보지 급부상

이번 발견은 달 개발과 탐사를 위해 노력 중인 인류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기술 발달 수준과 세계 각국의 정책적인 의지를 감안할 때 달에는 향후 수십년 안에 인간이 항상 머무는 기지가 지어질 것으로 보인다. 달에서 자원을 개발하는 것 등이 목적이다. 그런데 이런 상주 기지를 17도 수준이 유지되는 용암 동굴에 지으면 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사실 진작부터 용암 동굴은 인간의 상주 기지를 지을 만한 곳으로 꼽혀왔다. 우주에서 날아드는 유해한 광선을 막고, 크고 작은 운석의 공격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발견으로 쾌적한 온도까지 갖추고 있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용암 동굴을 달 상주 기지의 후보지로 더욱 진지하게 검토할 만한 상황이 됐다.

쾌적한 온도가 유지된다면 상주 기지에서 냉난방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에너지량을 대폭 줄일 수 있게 된다. 달에선 태양전지를 깔거나 원자로를 돌려 전기를 만드는 방법이 고안되고 있지만, 지구 외 천체에서 기지를 운영할 정도로 많은 전기를 만드는 일은 인류에게 아직 해보지 않은 도전이다. 전기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면 달 진출에 더욱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에 속한 데이비드 페이지 UCLA 연구원은 NASA 공식자료를 통해 “초기 인류는 동굴에서 살면서 진화했다”며 “우리가 달에서 살기 시작할 때, 다시 동굴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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