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영하 25도의 극한에도 죽지 않는 ‘겨울왕국의 능력자’

김응빈 교수

미생물의 겨우살이

대부분의 미생물은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중 극한의 환경을 이겨내는 것으로 유명한 미생물 플라노코쿠스 할로크리오필루스가 상온에 있을 때(왼쪽 위)와 영하 15도에서 자라는 표면을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모습(왼쪽 아래). microbewiki.kenyon.edu

대부분의 미생물은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중 극한의 환경을 이겨내는 것으로 유명한 미생물 플라노코쿠스 할로크리오필루스가 상온에 있을 때(왼쪽 위)와 영하 15도에서 자라는 표면을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모습(왼쪽 아래). microbewiki.kenyon.edu

[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1)영하 25도의 극한에도 죽지 않는 ‘겨울왕국의 능력자’

보통 사람들은 미생물을 질병과 연관해서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미생물은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미생물은 우리가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적이 아니라 꼭 함께해야만 하는 동반자인 것이다. ‘미생물 수다’ 시리즈를 통해 미생물을 더 잘 이용하고 해로운 미생물에 더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바란다. ‘수다’는 말이 많음과 수가 많음, 비잔틴 백과사전(Suda)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속담에 대한(大寒)이 소한(小寒)의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고 했다. 기후변화 탓인지 절기의 권위가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무렵 추위는 매섭다. 롱패딩에 목도리를 두르고 나서도 칼바람을 이겨내는 게 만만치 않다. 추위에 힘들기는 야생 생물도 마찬가지다. 다들 나름의 방식으로 겨울을 나고 있다. 동물의 경우에는 보통 고기능성 모피로 무장한다. 일부는 아예 겨울잠을 자거나 따뜻한 곳으로 피한(避寒)을 간다.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은 모든 잎을 떨구고 단단한 나무 껍질 속에서 추위를 견뎌낸다. 이들의 월동 대책은 세포 수준에서도 수립된다.

세포 수준에서도 월동 대책 수립
기온 낮으면 불포화지방 비율 확대
콜레스테롤 양 늘려 추위에 대응
세포막의 유동성 적절하게 유지

모든 세포는 세포막을 통해 필요한 영양분을 흡수하고 노폐물을 배출한다. 세포막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유동성을 유지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면 동물도 앙상한 겨울 나무도 엄동설한에 살아남을 수 없다. 쉽게 말해서 세포막은 기본적으로 기름막이다. 여기에는 포화지방과 불포화지방이 역동적으로 섞여 있다. 역동적이라 함은 두 지방의 조성 비율이 가변적이라는 뜻이다. 고기를 구울 때 나오는 기름은 식으면 굳는다. 동물성 기름에는 상대적으로 포화지방이 많기 때문이다. 반면 식용유는 냉장 온도에서도 액상으로 존재한다. 바로 이것이 세포막이 유동성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지방의 포화도를 조절하면 세포막의 유동성을 적절하게 유지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온도가 내려가면 불포화지방의 비율을 늘리면 된다. 아울러 콜레스테롤 양을 늘리는 것도 추위에 대응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의 체온은 보통 5도 정도까지 떨어진다. 그럼에도 세포막은 굳지 않고 생명 유지 기능을 수행한다. 바로 불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 비율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신경세포를 비롯하여 많은 종류의 세포들이 외부 자극에 둔감해지기는 한다.

번듯하게 동식물의 축에 끼지 못하는 생물을 몽땅 미생물이라고 한다. 너무 작아서 개별적으로는 보이지도 않는, 그래서 없어 보이는 것들이다. 대부분의 미생물은 세포 하나가 곧 개체인 단세포 생물이다. 이들은 오로지 맨몸(세포)으로 추위를 견뎌야 한다. 그런데 버티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추위를 즐기는 미생물도 있다. 북극과 남극을 비롯하여 동토의 환경에서 주로 발견되는 호냉성 미생물은 빙점(0도)에서도 자란다. 이들에게 최적 온도는 10도 정도이고, 우리에게는 쾌적한 20도 정도에서는 열사(熱死)하기도 한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들의 추위 사랑과 사망 원인은 모두 유연성이다.

동토에 사는 ‘추위 사랑 미생물’
세포 채우고 있는 물 얼지 않는 건
차 부동액 같은 당류·단백질 덕분

호냉성 미생물의 효소는 그 구조가 상대적으로 유연하다. 그 덕분에 낮은 온도에서도 경직되지 않고 생체 반응을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저온에서 탁월한 유연성을 지닌 효소는 온도가 올라가면 쉽게 변성된다는 치명적 약점을 가지고 있다. 어쨌든 이런 특성 때문에 저온효소는 바이오 산업에서 매우 요긴하게 사용된다.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찬물에서도 때가 잘 빠지게 하는 세제가 좋은 사례다. 보통 이런 제품에는 양극해나 시베리아 벌판처럼 추운 곳에서 사는 미생물에서 유래한 단백질 또는 기름 분해 효소가 들어 있다. 저온효소 유전자에 생명공학기술을 적용하여 분해능력이 뛰어난 효소를 값싸게 대량으로 생산해서 세제에 첨가한 것이다.

양극과 에베레스트 같은 대륙의 최고봉 지역을 필두로 지구의 약 5분의 1은 동토의 땅이다. 수은주가 주로 빙점 아래에 머물러 있는 곳이다. 잘 알려진 대로 생명체의 약 70%를 차지하는 물은 액체일 때보다 고체일 때 부피가 더 커진다. 추운 한데에 사는 단세포 생물에게 이건 큰 문제다. 여름철에 음료수 병을 빨리 차갑게 하려고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 깜박해서 낭패를 경험한 적이 있다면 상황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음료수가 얼면서 병이 깨지듯이 세포를 채우고 있는 물이 얼면서 팽창하면 세포가 터져버리고 만다. 추위 사랑 미생물은 독특한 당류를 많이 만들어 이런 참사를 막는다. 말하자면 세포액을 자동차 부동액처럼 만드는 것이다. 또한 부동단백질을 합성하여 마치 단열뽁뽁이를 붙이듯 세포 표면을 코팅한다. 이 단백질은 얼음 결정에 결합하여 세포를 보호한다.

부동당류와 부동단백질이 호냉성 미생물의 전유물은 아니다. 많은 동식물도 다양한 부동제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양서류와 곤충은 동면 전에 섭취한 녹말을 여러 가지 당으로 바꾸어 체액의 어는점을 낮춘다. 사철 푸른 상록수에 있는 부동단백질은 빙점을 낮추기보다는 식물체 안에서 커다란 얼음 결정이 생기지 않게 한다. 작년 남극빙어가 일반 어류에 비해 부동단백질을 포함하여 차가운 바닷물에서 견뎌낼 수 있게 하는 유전자를 4배 이상 많이 지니고 있음을 한국의 연구진이 밝혀냈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에 근거하면, 생명체의 추위 극복 방법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유연성이라는 기본기는 똑같은 셈이다.

플라노코쿠스 할로크리오필루스
영하 25도서 사는 ‘극한 끝판왕’
생존 비결 뒤엔 독특한 조절 기능
저온에서 되레 포화지방 늘려가
영상 25도·무더위에도 성장 계속
동결·해동 반복되는 엄혹한 환경
그 속에서 탄생한 ‘전천후 능력자’

생명체의 추위 극복 방법을 갈무리하고 나니, 문득 극한(克寒)의 끝판왕이 궁금해진다. 현재로서는 북극 영구동토층 출신의 세균, 플라노코쿠스 할로크리오필루스(Planococcus halocryophilus)가 왕좌를 차지하고 있다. 이 세균은 영하 15도에서 거뜬히 자라고 영하 25에서도 굳세게 살아간다. 주변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면 이 세균은 단열 시공에 들어간다. 우선 세포벽을 두껍게 하고 단백질과 석회를 섞은 반죽을 바깥 표면에 바른다. 단열 처리로 오톨도톨해진 세포벽에 둘러싸인 세포 내부에는 유연성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부동제는 물론이고, 동일한 반응을 수행하는 효소 유전자가 여러 개 구비되어 있다. 한마디로 온도별로 맞춤형 효소를 만들어 사용한다는 얘기다.

플라노코쿠스 할로크리오필루스의 극한 비결 뒤에는 반전 매력이 숨어 있다. 세포막의 지방 조성이 일반적인 경우와는 반대로 간다. 저온에서 오히려 포화지방 비율이 늘어난다. 막을 이루는 지방 분자의 길이 축소를 비롯하여 기온 저하에 따른 일련의 변화가 일어나는 걸 보면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방한 기법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이 동토의 왕이 가장 좋아하는(잘 자라는) 기온은 25도이고 무더위(37도) 속에서도 성장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겨울왕국에 살면서 따뜻함을 선호하다니,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북극은 보통 북위 66.5도 이북 지역을 지칭한다. 이곳은 태양이 지지 않는 여름 백야와 태양이 뜨지 않는 겨울 극야가 존재할 정도로 계절별로 일조량의 변화가 매우 크다. 이로 인해 북극은 지역에 따라 기온이 여름에는 15도를 웃돌고, 겨울에는 영하 40도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플라노코쿠스 할로크리오필루스의 넓은 성장 온도 범위는 계절적인 동결과 해동 주기가 반복되는 환경을 반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세균은 호냉성이라기보다는 엄혹한 환경에서 단련되어 탄생한 전천후 능력자다.

생명체는 자신의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환경이 제공되는 곳에서만 산다. 그런데 환경 조건은 수시로 바뀐다. 따라서 현존하는 모든 생물은 거친 자연의 격랑을 잘 헤쳐온 존재들이다. 흔히 생로병사로 함축되는 우리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 나그네 길에서 불쑥대는 크고 작은 고난의 추위는 피할 길이 없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어느 노랫말처럼, 사실 인생 한파를 극복하면서 내공이 쌓여간다. 말하자면 사고의 깊이와 유연성이 커져서 이 세상의 갖가지 풍파를 극복해 나갈 능력이 향상된다는 얘기다. 문제는 사람마다 이런 능력의 크기가 다르고 때로는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초강력 인생 한파가 닥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겨울왕국의 미생물 능력자처럼 전천후 보호장치가 필요하다. 바로 사랑이다. 사랑만 있다면 인생 한파로 마음이 얼어붙어 부서지는 안타까운 일은 없을 것이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열띤 사랑의 경쟁을 펼쳤으면 좋겠다. 승자는 내기에 이겨서 행복하고, 패자는 더 큰 사랑을 받아서 행복할 테니 말이다.

◆방귀 유발하는 ‘고균’, 물질 분해하는 ‘세균’, 미역·김 같은 ‘조류’…모두 미생물입니다

동식물과 마찬가지로 미생물도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세포의 특성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막으로 둘러싸인 핵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핵은 유전물질인 DNA가 들어 있는 세포소기관 가운데 하나다. 세포소기관이란, 세포 내에서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도록 분화된 구조물이며, 막으로 싸여 있다. 대표적으로 핵과 미토콘드리아, 엽록체 따위가 있다. 핵의 유무에 따라 세포는 크게 두 가지, 즉 진핵세포와 원핵세포로 나뉜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원핵세포는 단칸방이고 진핵세포는 여러 개의 방이 있는 저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구조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동물과 식물, 일부 미생물은 기본적으로 같은 진핵세포로 되어 있다. 반면 원핵세포는 미생물에서만 발견된다.

생명의 언어인 DNA 정보에 근거하면, 생물은 크게 세 가지 고세균(고균)과 세균, 진핵생물로 나눌 수 있다. 고균과 세균은 모두 미생물이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원핵세포로 이루어진 원핵생물이다. 진핵생물의 경우에도 식물과 동물 이외에는 모두 미생물(진균, 조류, 원생동물)이다. 게다가 세포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아 때때로 생명체와 비생명체의 경계에 걸쳐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바이러스도 편의상 비세포성 미생물에 포함시킨다. 크기를 비교하면 진핵세포가 야구 경기장(10~100마이크로미터)만 하다면, 원핵세포는 투수 마운드(0.1~10마이크로미터) 크기고 바이러스는 야구공 정도로 가늠할 수 있다.

고균은 다른 생물이 살 수 없는 험악한 환경에서도 유유자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미생물 집단이다. 고균의 영문명은 ‘Archaea’이다. ‘고대의’ 또는 ‘원시의’를 뜻하는 접두사 ‘archaeo-’에서 유래했다. 이들의 서식 환경이 원시 지구와 비슷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가령 끓는 물에 가까운 온천수나 사해처럼 염분 농도가 높은 곳이 여러 고균의 보금자리다. 흥미롭게도 방귀 성분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메탄가스는 일부 고균만이 만들 수 있다. 결국 우리 장 속에도 많은 고균이 살고 있다는 얘기다.

세균 또는 박테리아(Bacteria)는 엄청나게 다양한 능력을 지닌 미생물이다. 능력에 비해 이들의 모양은 단순하다. 일반적으로 세균은 동그랗거나(알균 또는 구균), 갸름하거나(막대균 또는 간균), 아니면 구불구불하다(나선균). 세균들은 환경에서 수많은 물질을 분해, 쉬운 말로 썩게 한다. 일부 세균은 광합성을 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남세균은 식물과 똑같은 광합성을 한다. 진균을 좀 더 친숙한 말로 하면 곰팡이다. 곰팡이 하면 보통 상한 음식에 핀 가는 실타래 같은 모양이 떠오른다. 이런 곰팡이를 모양 그대로 사상균(絲狀菌)이라고 부른다. 빵이나 맥주 등을 만들 때 사용하는 효모(이스트)도 또 다른 종류의 곰팡이다. 그리고 다소 놀라울 수 있는데, 버섯도 곰팡이다.

밥상에 흔히 오르는 미역과 파래, 김 등이 쉽게 볼 수 있는 조류이다. 조류는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소비하고 지구에 필요한 산소의 절반 정도를 공급한다. 하지만 특정 미세조류가 짧은 시간에 급증하면 적조 또는 녹조 현상과 같은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긴다. 원생동물은 ‘원생(原生)’이라는 이름대로 가장 원시적인 단세포 동물을 총칭한다. 많은 이들에게 친숙한 아메바와 짚신벌레 등이 여기에 속한다. 대부분의 원생동물은 주변 환경에서 음식물을 섭취하지만, 유글레나처럼 광합성을 하기도 한다. 반면 말라리아 원충처럼 동물에 기생하며 병을 일으키는 원생동물도 있다.


▶김응빈 교수

[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1)영하 25도의 극한에도 죽지 않는 ‘겨울왕국의 능력자’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 연구와 교육을 해오면서 미생물의 이야기 미담(微談) 중에 미담(美談)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미생물 변호사’를 자처하며 흥미로운 미생물의 세계를 널리 알리는 데에 힘쓰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한국환경생물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SCI 논문 60여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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