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올림픽의 4년, 미식축구의 25초, 육상의 0.01초…어쩌면 같은 시간

박주용 교수

보이지 않는 인간의 의지로 가득 차 있는 스포츠의 시간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전 세계 올림픽 관련 논문 증가세
최다 논문 출판국은 ‘그리스’
2위는 동계올림픽 강국 ‘노르웨이’
국내서는 스포츠 연구 아직 드물어

우여곡절 속에 올림픽이 시작되었다가 끝났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기형적 일상을 대변하듯 2020년 열렸어야 할 도쿄 올림픽이 2021년에 열렸는데 TV 화면에는 또 ‘2020 Tokyo Olympics’라고 쓰여 있는 바람에 지금이 몇 년도인지 잠시 헷갈리기도 할 만한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4년에(이번엔 5년이었지만) 한 번 찾아오는 올림픽에서 경연하는 선수들과 그들을 지켜보는 우리 모습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좋은 성과를 기대하던 종목에서 졸전을 펼친 이들을 악당으로 만들고 기대하지 않던 종목에서 선전한 이들을 영웅으로 만드는 감정의 분출을 하기도 하였고, 방송사 셋이 인기 있을 법한 똑같은 경기만 보여주는 바람에 불평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드넓은 인터넷에서 비관심 종목들을 찾아보는 것은 여전했다. 그리고 폐막과 함께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음번 올림픽, 그다음 번 올림픽에도 반복될 행동들이다. 하지만 세계 최대 스포츠 행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2주 조금 넘는 기간들은 언제나 흥미와 감동으로 가득 차 있었고, 올림픽은 비록 끝났지만 웹에서는 명장면 다시 보기 영상을 끝없이 추천해주고 있으며 TV 화면 속엔 새롭게 이름이 알려진 선수들이 시청자들에게 얼굴을 보여주며 관심을 끌고 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올림픽을 생각하며 과연 과학계에서는 올림픽과 스포츠에 대해서 무슨 이야기들을 하고 있고 어떠한 관심사를 갖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한 외국 대중과학 월간지에 ‘Olympics’ ‘Sports’로 검색해보니 대개는 다음과 같은 항목으로 정리할 수 있는 주제의 글들을 찾을 수 있었다.

‘올림픽과 자연·생활 환경’ : 올림픽 시설 건립의 생태적 영향, 올림픽 개최 도시의 교통과 관광 환경

‘올림픽과 보건’ : 도쿄 올림픽과 코로나19(에 묻히기 전까진 2016년 리우 올림픽과 지카바이러스)

‘올림픽과 경제·산업’ : 올림픽 개최 비용, 수익, 전반적인 경제에 영향

‘스포츠와 생리학’ : 선수들의 신체적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훈련법, 도핑 문제

‘스포츠 장비와 시설’: 새로운 소재와 디자인의 운동장비 및 경기시설

사실 이것들까지는 평소에도 흔히 들어본 주제들인데, 다음과 같은 SF스러운 글들도 찾을 수 있었다.

‘우주 올림픽’ : 태양계 행성에 식민지를 건설해 이주한 인류가 모여 행성 간 올림픽을 연다면 올림픽의 규칙은 어떻게 바뀌어야 제일 공평할 것인가(이건 나중 기회에 소개하기로 한다).

이 결과들로부터 올림픽과 스포츠는 과학과 다양하게 연결돼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과학계 안에서도 올림픽과 스포츠에 대한 연구 활동이 근래 활발해지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네이처 퍼블리싱 그룹이 최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출판된 과학 논문 가운데 올림픽 관련 논문 비율이 2000년 0.005%에서 2010년 중반까지 불과 15년 되지 않는 사이에 0.02%로 네 배, 1900년대 초반에 비하면 무려 수십배 늘어났다. 흥미로운 또 다른 사실은 올림픽 관련 논문 수가 제일 많은 분야는 ‘사회과학’으로 2·3위인 의학과 공학을 제쳤다는 것이다. 특히 사회과학에서는 올림픽과 전쟁·테러의 연관성을 다룬 연구를 통해 올림픽과 스포츠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인류 사회의 복잡한 이슈들에 맞닿아 있다는 점을 과학자들이 각성해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렇게 다양한 방면에서 큰 관심을 끄는 한 가지 원인은 물론 올림픽과 같은 대규모 스포츠 행사의 거대한 경제적 효과일 것이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의 경우 일본 정부가 지불한 개최비용이 약 1.7조엔(18조원)이었다고 하는데 무관중으로 치러져 관광수입을 조금도 올리지 못한 타격은 있었지만 4000억엔(4.3조원)을 들여 지은 경기장과 아파트, 도로 등 각종 인프라들은 장기적으로 이득이 될 것이다.

돈 쓰는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한국 사람이 방문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직접 확인은 못했지만 올림픽을 계기로 도쿄의 가게들에 신용카드 결제 기계가 많이 도입됐다고 한다. 일본에 놀러가본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지금 지갑 안에 현금이 얼마 남았는지 계속 신경 쓰는 일은 매우 성가시기에(그리고 도쿄에서 하루를 돌아다니다 보면 돈은 어마어마한 속력으로 사라진다), 일개 관광객 입장에서는 이것이야말로 올림픽의 힘을 보여주는 피부에 와닿는 사회적인 변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인간이 하는 모든 것이 그렇듯이 스포츠에 대한 과학적 관심도 과학자 개인의 신념, 감정, 환경에 좌우된다. 각 나라에서 출판된 과학 논문 가운데 올림픽 관련 논문 비율을 비교해보면 ‘올림픽’이 한 국가의 일상적인 정신생활에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를 가늠할 수가 있다. 1등은 역시 그리스로서 기원전 8세기부터 올림픽을 열어온 민족적 자긍심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2등은 어디일까? 근대 올림픽을 창시한 쿠베르탱 남작의 고국 프랑스(인구 6700만명), 근대 올림픽을 제일 많이 개최해온 미국(인구 3억2800만명), 국가가 조직적으로 도핑을 저질러 나라 이름이 퇴출되었을 정도로 메달에 집착하는 러시아(인구 1억4400만명) 등이 후보로 떠오르지만 정답은 뜻밖에도 인구가 훨씬 적은 노르웨이(인구 500만명)이다. 노르웨이는 동계올림픽에서 제일 많은 메달을 딴(2018년까지 368개) 나라이고, 논문들도 당연히 전부 동계올림픽에 관련돼있다. 이렇듯 올림픽은 단순히 국가의 크기만으로는 결과를 짐작할 수 없는 놀라움(과학에서 ‘놀라움’이란 이미 알고 있는 다른 변수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을 뜻한다)의 샘이며, 개인적으로 이번에는 특히 질병과 갈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세계에서 아직도 건전한 경쟁과 교류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희망의 샘이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스포츠를 연구하는 과학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특히 국내에서 비교적 이름이 있는 4년제 대학교에서 올림픽이나 스포츠를 조금이라도 건드려보는 물리학자의 이름이 쉽게 떠오르지도 않고, 카이스트 교수 채용 공고에서도 특별한 경우(학생 체육교육)를 빼고는 스포츠 연구자를 찾는다는 말도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처럼 주류 과학계가 스포츠 연구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사람들의 성향 탓인지(‘엉덩이가 무거워야 공부 잘한다’는 말 때문일까?), 또는 스포츠는 전통적인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는 인식이 관성처럼 남아 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와 관련해 개인적으로도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

아직 학부생이던 1990년대 후반 물리학계는 탄소 나노튜브(carbon nanotubes·CNT)라고 하여 탄소 원자들이 이룬 정육각형 격자가 통 모양으로 말려서 죽부인 모양을 한 물질에 열광하고 있었다. 단단한 탄소들이 결합했기에 변성이 쉽게 되지 않는 안정성과 여러 흥미로운 기계적·광학적 성질이 있었기 때문이다. CNT를 연구하기 시작한 선배가 6각형 격자가 인쇄된 종이를 손으로 말아 “탄소 나노튜브는 이렇게 생겼어”라고 말해주면서 양자역학적 에너지 준위를 조절해 원하는 파장의 빛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새로운 디스플레이(TV)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해주기도 했다. 세계 TV 시장에서 주도권을 놓고 각축을 벌이던 한국에서는 (CNT가) 정말 대단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했을 것이다.

그 이후 십수년이 지나 모교를 방문한 어느 날, 그 기억이 떠올라 동료에게 CNT는 어찌 되었느냐 물어보니 이젠 물리학계에서 연구는 많이 시들해짐과 동시에 산업 쪽으로는 테니스 라켓이나 자전거 부품 쪽에서 종종 활용된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또 한번 현실 과학과 스포츠의 거리를 확인한 느낌이었다. 스포츠를 과학의 눈으로 바라보면 진지한 연구의 희열과 스포츠를 즐기는 재미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 현상의 근원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무래도 아직 스포츠는 ‘TV에 나왔을 때 즐기면 되는 가벼운 오락활동’이라는 인식 때문에, 거대한 우주와 심오한 자연 속에 숨어있는 시간과 공간의 진리를 밝히려는 과학자들에게 아직은 진지한 학문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까?

미식축구서 전진 시도하는 ‘25초’
경기 중단된 듯 한가해 보이지만
수많은 작전들 선택하는 ‘전쟁터’

그렇다면 진지한 과학자들이 다루는 ‘뉴턴의 시간’, ‘아인슈타인의 시간’만큼이나 ‘스포츠의 시간’이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내가 그들과 다른 지점에 여기에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말하는 ‘스포츠의 시간’이란 다음과 같다. 지난 한 칼럼에서 필자는 미식축구 애호가임을 고백한 적이 있는데, 스포츠에서 시간의 의미를 깊게 깨닫게 된 것도 이 경기를 통해서이다. 미식축구는 럭비공을 닮은 공을 소유하고 있는 팀이 공을 품고 상대방 쪽으로 달리거나 패스를 성공시켜 전진해 상대방 엔드존에 들어가 점수를 내는 경기인데, 공을 소유한 선수가 넘어지거나 경기장 밖으로 밀려나면 공을 마지막 전진 위치에 다시 갖다 놓고 공격팀은 ‘25초’ 안에 다시 전진을 시도해야 하는 규칙이 있다. ‘사커’에만 익숙한 사람들은 한 팀에 선수가 열 한 명이라는 것을 빼면 둘 사이에 공통점이 거의 없는 걸 보고 충격을 받고, 실제 액션보다 훨씬 더 긴 25초의 시간 동안 자세만 잡고있는 것을 보면서 경기의 맥이 자주 끊겨서 재미없다는 소리를 하기 일쑤이다.

필자도 처음엔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라디오에서 들었던 한 NFL 감독의 인터뷰를 듣고 미식축구 안에서 시간에 대한 이해가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을 한 뒤엔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인터뷰 진행자는 경기장의 사이드라인(야구의 덕아웃처럼 팀이 모여있는 공간)을 방문했던 일을 회상하는데, 공격 사이 그 25초의 시간 동안 벌어지고 있는 엄청난 양의 활동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즉 그 시간은 공을 제자리에 갖다놓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작전 선택(‘플레이북’이라고 해서 팀마다 수비를 뚫고 공을 전진시키기 위한 수백 가지의 배치도-포메이션-를 갖고 있다), 선수 교체(포메이션마다 들어가는 선수진이 다르다), 상대 진영의 작전에 대한 대응(수비팀의 배치 또한 공격팀 움직임에 따라 다 달라진다) 등으로 1초도 허투로 쓰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TV에 비쳐지는 경기가 중단된 듯한 한가한 모습과는 180도 달리 실제 경기 못지않은 박진감이 넘치는 전쟁터 같았다는 것이다.

관람자엔 안 보이는 스포츠의 시간
인간의 의지와 열정으로 가득 차
그 시간 속 땀 흘린 모두에 경의를

이렇게 ‘올림픽의 4년’이든, ‘미식 축구의 25초’이든 단순 관람자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미래를 대비하는 전략적인 선택과 실행으로, 그래서 결국 인간의 의지와 열정으로 빈틈없이 가득 차 있는 것이 ‘스포츠의 시간’이다. 육상의 기록을 0.01초 단축하기 위해 4년 동안 노력을 들이고, 1점이라도 더 내기 위해 60분의 경기 시간 동안 1초도 쉬지 않는 것이 스포츠의 본모습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올바른 사람이라면 올림픽에서 땀을 흘린 그 누구에게도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래는 비록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인간의 의지라는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는 현재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박주용 교수

[전문가의 세계 - 박주용의 퓨처라마](17)올림픽의 4년, 미식축구의 25초, 육상의 0.01초…어쩌면 같은 시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학교(앤아버)에서 통계물리학·네트워크과학·복잡계과학으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데이나-파버 암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시스템스 생물학을 연구하고, 현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문화와 예술의 물리학을 연구하고 있다. 제주도에 현무암 상징물 ‘팡도라네’를 공동 제작·설치했고, 대전시립미술관의 ‘어떻게 볼 것인가: 프로젝트 X’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학창 시절 미식축구에 빠져 대학팀 랭킹 알고리즘을 창시한 뒤 지금도 빠져 있으며, 남는 시간에 자전거와 모터사이클을 타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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