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주의 비밀을 해독한 물리학의 인사이더
‘붉은 공포’에 휘말려아웃사이더가 되다독일의 하이젠베르크보다 먼저 ‘섭씨 1억도의 불’을 만들어낸 그는 미국의 ‘살아있는 신’이 되었다하지만 전쟁 후 정치 소용돌이 속으로 추락했다…‘비극을 가져온 대가’로 형벌에 처해진 프로메테우스처럼원자 탄두를 싣고 푸른 하늘을 날아가는 미사일이 파괴시킨 건, 바로 자신의 미래였다미국 서남부 뉴멕시코주의 하늘은 진한 유화물감을 풀어서 부은 듯 지평선과 맞닿은 곳까지 티없이 푸르다. 학생 시절에 뉴멕시코의 주도이자 미국에서 뉴욕 다음으로 큰 미술시장이라고 하는 사막 산 위의 도시 샌타페이에서 남쪽으로 고속도로를 타고 간 적이 있다.내리쬐는 햇빛으로부터 얼굴을 가리고 솟는 갈증을 참으며 ‘주니퍼’라는 향나무가 듬성듬성한 풍경을 지나쳐 가다보니 어느덧 거대한 백사장으로 유명한 화이트샌즈 국립공원이 나왔다. 그 근방에는 ‘방사능 주의’ 표지가 서 있었는데, 바로 이곳이 1945년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장소... -
피타고라스·뉴턴·잡스처럼…‘의미 있는 연결’을 찾는 사람이 융합인재
(41)창의적 인재를 기르려면이번 회에는 충남지역 교장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융합 인재 교육에 관한 강연을 지난번에 이어 계속하겠다.‘창의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애플의 창립자 스티브 잡스(1955~2011)는 이렇게 말합니다.“창의란 그저 사물들을 이어내는 일이다. 창의적인 일을 해낸 사람들은 누군가 그 비결을 물어보면 살짝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 왜냐면 그들은 그걸 정말 해낸 게 아니라 무언가를 보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지나면 너무나 당연한 것을.”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처럼 잡스도 창의성을 ‘남들과 다른 것을 보는 능력’이라고 한 것입니다.왜 굳이 새로운 사물을 만들지 않고 사물 사이의 연결만 볼 수 있어도 창의적일 수 있다고 한 것인지, 잠깐 간단한 사고 실험을 해보겠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의 개수를 n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n의 값은 무엇일까요? 일일이 세어보진 않았지만, 분명히 100개는 넘을 테니 쉽게 n=1... -
아무 말이나 늘어놓는다고 다 ‘말’이 되는 건 아니라서
자연어 상호작용 가능해지며 AI 미래 놓고 찬사·기대 커져 신기술 가린 ‘신비’ 걷고 보면‘말하는 사용설명서’ 수준일 뿐 지난 두 차례에 걸쳐 언어 인공지능에 대해 이야기를 조금 풀었더니 그에 대해서 이런저런 질문을 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요즘 다들 그 이야기를 하는 것 같더라’는 말, 심지어는 ‘기계학습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조차 다들 언어 인공지능 전문가가 된 것 같다’는 놀라움의 말도 심심찮게 들린다.이러한 높은 관심도와 ‘전문가’ 급증의 원인은 아무래도 누구나 하는 자연어로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챗GPT 같은 언어지능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트랜스포머’ 같은 전문용어를 들어본 적이 없거나, 그 작동원리를 정확히 모른다 하더라도 우리가 매일 하는 말로 일을 시키고 그 결과물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누구든 한마디 거들어보고 싶어지는 건 자연스럽다고 할까. 그래서 ‘잘할 수만 있다면’ 인간-컴퓨터 상호작용의 새로운 지평을 ... -
인공지능에게 ‘창의성’을 묻기 전에 인간은 그것을 알고 있는지 돌아보라
창의적인 시를 지어달라 주문하면상투와 진부로 뒤덮인 답을 하고사건에 대한 사실을 부탁하면허무맹랑 거짓 늘어놓는 챗GPT지난 회에 이어 ‘챗GPT’를 갖고 놀아본 이야기를 한다. 챗GPT는 ‘자의식이 있느냐’ 같은 질문에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한다. 이는 필시 구글의 어떤 직원이 비슷한 인공지능인 ‘람다’에게 자의식이 생겼다고 주장하면서 파문이 일었고 급기야 회사로부터 쫓겨난 사태를 목도한 챗GPT의 제작자들이 자의식에 관해 질문이 들어오면 챗GPT의 문장 생성 알고리즘이 작동하지 않도록 원천차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창의성이 있느냐’라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기계는 창의성이 없어야 한다는 수학적 증명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 그냥 자기는 그런 게 있을 수 없다고 말을 끊어버린다.이렇게 자기는 창의성이 없다고 하는 녀석이 실제로 얼마나 창의적인지 아는 방법은 결국 간접적으로 하는 것이다. 언어 인공지능이니 언어적 창의성을 시험해봐야 하는데, ‘기... -
“나는 자의식이 없다” 주장하는 AI…‘진정한 대화’ 나눌 가능성 없을까
요즘 인공지능 언어 엔진인 ‘람다(LamDA)’ ‘챗GPT(ChatGPT)’가 저잣거리의 화제이다(최근 람다는 바드라는 이름으로 공개됐다).2022년 7월, 구글의 엔지니어 하나가 자사가 개발하고 있던 대화형 언어 인공지능인 람다가 ‘어떠한 주제를 꺼내도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물리학에 대해서도 알고 있으며, 일고여덟 살 정도 아이의 의식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작은 파문이 일었다.인공지능과 자의식요즘은 영화 <아바타>로 유명한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출세작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1991년)에서 인공지능 ‘스카이넷(SkyNet)’은 미국 동부 일광절약시간(EDT)으로 1997년 8월4일 새벽 2시14분에 자의식을 갖게 된다고 나온다. 10대 시절 이 영화에 열광한 필자는 스카이넷이 깨어난다고 했던 1997년이 왔다가 아무 말 없이 지나가 조금 허망했는데, 람다가 자의식을 가졌다는 주장을 전하는 소식에 어린 ... -
상상력 가로막는 금기와 선입견을 깨야 ‘통하는 과학 서사’ 나온다
다른 것을 인정하기보다 우리만의 기준으로 재단하는 편견…자유로운 사고를 가리고 훌륭한 과학 서사가 나올 수 있는 길을 막아인류의 기원을 묻는 주제의식, 선입견을 깨부수는 인물들, 금기를 벗어나려는 과감함…특수 효과 기술력 따위보다 훨씬 중요지난 회에 시작한 “세계에서도 통하는 과학 서사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마무리 강연을 올린다.여러분, 과학은 우리가 가보지 못한 먼 우주에서도 작동하는 사고체계를 지향하므로 과학이 자리 잡은 문화는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끊임없이 밀어내려고 합니다. 테슬라의 머스크와 아마존의 베이조스가 우주로 나아가려고 하는 이유가 그것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한국의 대표적인 신기업 K사, N사에서 우주에 가려고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우주가 아니라 오히려 좁디 좁은 골목으로만 열심히 들어가지 않던가요. (청중 웃음)‘미국 기업은 우주로, 한국 기업은 골목으로’, 선진국 따라하기 바빴던 한국... -
중요한 건 호기심…고도로 발달한 ‘창작’은 ‘탐구’와 구분할 수 없다
지난달 필자에게 한국과학창의재단이라는 곳에서 흥미로운 질문이 하나 날아들어왔다.‘<오징어 게임> <기생충>처럼 세계적으로 성공한 콘텐츠를 만든 우리나라에서 <인터스텔라> <마션> <빅뱅이론> <돈 룩 업>과 같은 과학기술 소재의 문화 콘텐츠가 생산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또 과학기술은 세계 공통이지만 문화라는 것은 지역색이 강한데 둘을 융합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겠는가?’이 질문에 대한 생각을 알려달라는 요청에 따라 필자는 지난 11월25일 동재단에서 개최한 ‘과학문화산업 비즈니스 매칭데이 행사’에 가서 재단에서 육성하고 있는 과학문화 콘텐츠 전문인력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였다. 과학과 문화 산업이 직접 교차하는 지점에서 지금까지 필자가 즐겨왔던 과학 콘텐츠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재미있는 기회라고 판단돼 짧지 않은 시간에 정성을 들여 강연을 준비해 갔다. 금요일 아침인데도 불구하... -
이성보다 꿈을, 현실보다 상상을…복잡한 세계에서 길을 찾는 방법
1만개의 부품이 들어간 모터사이클을 정비할 때, 매뉴얼을 순차적·논리적으로 따라가는 ‘고전적 사고’로는 불가능에 가까워과학은 논리적 정합성만으로 이뤄지지 않아…무한한 복잡도 속에서 해결책 찾으려면 직관과 통찰의 ‘낭만적 사고법’도 필요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지만 삶의 매 순간순간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의 복잡도는 무한해 보이는 경우가 많다. 세상을 머나먼 바다에 비유한다면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 가기 위해 별을 보거나 바람을 재면서 겨우겨우 파랑을 헤쳐나가는 선원인데, 이겨낼 수 없는 파도를 만나 난파하기도 하고 배가 고장이 나 표류하기도 한다. 우리가 마냥 편안한 선객의 입장이라면 남들이 알아서 배를 고쳐주는 동안 경치만 즐기면 되겠지만, 최소한 필자는 그렇게만 살 수 있는 사람을 알지 못한다. 세상에 그런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지금까지 필자와 친구할 생각은 없는 사람들이고, 나와 교류하는... -
이성이 놓친 우주 삼라만상의 ‘빈틈’…발견하는 건 인간의 ‘감각’
자신의 색 이론을 ‘확신’해버린 뉴턴…이성에 대한 숭배가 빚은 오류‘자연과학’ 하면 정밀하게 맞아떨어지는 법칙·연구를 기대하지만때론 괴테의 프리즘 실험처럼 감각 따라갈 때 새로운 결과 나오기도자연과학자, 특히 필자와 같은 물리학자들은 우주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작동하는 기계’를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입자들이 엄격한 규칙을 통해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협동하고, 그것들이 모여 거대한 우주의 현재와 미래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주의 본질은 한 치의 오류도 허용되지 않는 정밀성에 있고, 과학이란 그 정밀한 규칙을 발견해나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뉴턴은 <프린키피아>라는 역작을 통해 그러한 기계적 우주관의 정수를 보여주었다.물론 ‘바로 지금 우주의 상태를 알면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뉴턴 시대의 기계적인 세계관에 대한 도전도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졌다. 올해 노벨 물리... -
인류는 소통하기에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간다
Queen, Prince 등 익숙한 단어도복잡하고 다양한 의미를 가진 것처럼영어는 물론 영어의 본산인 영국나아가 세계를 호령했던 영국사를완벽하게 이해하는 데는 한계요즈음 필자는 시간이 날 때마다 언어에 대해 읽으며 공부하고 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집에서, 시장에서 매일같이 쓰는 것이면서도 그 작동과 진화 원리를 수식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진정한 복잡계이자, 시와 같은 작품을 통해 아름다움을 그려낼 수 있는 창의적 표현 도구로서 언어는 참 매력적이면서 쉽게 종잡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전공은 하지 않았어도 항상 관심이 많았다.나는 집에서 아주 많이 걱정을 할 정도로 늦은 네 살의 나이가 되어서야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남들과는 다르게 내가 처음으로 말을 하던 날이 기억난다. 집마루에서 앉아 있던 어느 날 이제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에’ 첫마디가 저절로 나왔고 집에 와 계시던 어른들이 내가 드디어 말을 했다고 서로 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