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개비에서 거위가 태어난다?…놀랍게도 1861년 이전까진 그렇게 믿었다

김응빈 교수

(35) 자연발생설과 미생물 원인설(상) : 천벌의 평행이론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중세 영국인들, 겨울이면 떼지어 나타나는 새를 보고 해변에 널린 따개비에서 나왔다고 생각
17세기 ‘가스’ 용어 처음 사용한 헬몬트는 밀알을 덮어놓으면 다 자란 쥐가 저절로 생긴다고 주장

중세 영국인들은 해마다 겨울이면 떼를 지어 나타나는 거위 비스름한 새를 보고 어리둥절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이들의 둥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불현듯 어느 날 눈앞에 나타나곤 했다. 이 많은 새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공교롭게도 근처 해변에 널려 있는 ‘따개비(barnacle)’의 색깔과 이 새의 깃털 색이 아주 비슷했다. 그래서 이 중세인들은 이 새들이 따개비에서 느닷없이 생겨났다고 믿었다. 황당무계하게 지어낸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확실한 증거가 있다. 봄에 북극으로 이동해 둥지를 트는 철새 ‘흰뺨기러기’와 따개비의 일종인 ‘민조개삿갓’의 영문명이 각각 ‘barnacle goose’와 ‘goose barnacle’이다.

사실 그 당시에 따개비가 새로 변신한다고 생각하는 정도는 양반이었다. 19세기 후반까지도 보통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많은 학자까지도 ‘자연발생설’을 철석같이 믿었으니 말이다. 자연발생설이란 물질에 ‘생명력(vital force)’이라는 모종의 신비한 힘이 들어가서 살아 있는 생명체가 저절로 만들어진다는 주장이다. 쌓아둔 퇴비에서 파리가 나온다든가, 썩어가는 동물 사체에서 항상 꾸물대는 구더기가 이런 발상의 근거였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터무니없지만, 그 옛날 사람들은 자연발생에 대해 아주 진지했다.

어느 명사의 흑역사

헬몬트(Jan Baptist van Helmont)는 17세기에 명성을 날린 벨기에 출신 화학자 겸 의사다. 그는 공기가 여러 가지 기체로 되어 있음을 최초로 밝혀낸 인물 가운데 한 명이었고, ‘가스’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또한 그는 나무가 타면서 나오는 연기에 ‘이산화탄소’가 들어있음을 처음으로 알아내고, 이 가스를 ‘숲의 카오스(혼돈)’라고 불렀다.

자연에 대한 지식은 실험을 통해 가장 잘 습득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는 일명 ‘버드나무 실험’을 수행했다. 약 90㎏의 흙이 담긴 화분에 2㎏짜리 버드나무를 심고, 5년 동안 물만 주었다. 5년 후 나무 무게를 재어보니 약 77㎏이었다. 매년 가을, 이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까지 고려한다면, 나무는 엄청나게 성장한 것이다. 그런데 화분에 있던 흙은 5년 전보다 불과 50g 정도 가벼워졌을 뿐이다. 약간 줄어든 흙의 무게를 실험적 오차로 간주한 헬몬트는 실험 결과를 나무가 흙은 먹지 않고 물만 먹고 자란다는 증거로 해석했다. 물론 그는 식물이 빛 에너지를 이용하여 공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고정한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고, 토양이 식물 성장에 필요한 미네랄을 제공한다는 사실도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광합성’이라는 크고 복잡한 퍼즐의 한 조각을 발견했다. 광합성의 모든 조각이 맞추어지기까지는 이후 300여년이 더 걸렸다.

그런데 이런 과학의 선구자적 인물이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쥐를 만드는 방법을 남겨놓은 것이다. 밀알 한 줌을 항아리에 넣은 다음, 더러운 헌 옷을 덮어놓고 3주 정도 기다리면 쥐가 나온다고 선언했다. 그것도 새끼가 아니라 다 자란 암수가 생겨난다고 덧붙이기까지 했으니, 그에게 흑역사가 아닐 수 없다.

논쟁의 시작과 종결

과학혁명이 진행되면서 17세기부터 자연발생을 의심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공식적으로 처음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이탈리아 의사 레디(Francesco Redi)였다. 1668년 레디는 단지 두 개에 고기를 담은 뒤 하나는 뚜껑을 덮지 않았고, 다른 하나는 밀봉했다. 고기는 모두 썩었지만, 구더기는 뚜껑이 없는 단지에서만 나왔다. 이에 대해 자연발생을 믿는 사람들은 신선한 공기가 없어서 그렇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레디는 공기가 통할 수 있게 가제로 단지를 덮었다. 이번에도 구더기는 보이지 않았다.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파리가 접근하지 못해 알을 낳지 못했는데, 파리의 애벌레인 구더기가 나올 리 없지 않은가!

레디의 실험 결과는 생명체가 저절로 생겨난다는 오랜 신념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미생물처럼 단순한 생명체는 저절로 생겨난다고 여전히 확신했다. 1745년 니덤(John Needham)이라는 영국 박물학자는 고깃국을 끓인 뒤 용기에 담아 뚜껑을 덮어두었다. 며칠 뒤 상한 국물에서 미생물을 관찰한 그는 이를 자연발생의 증거로 제시했다. 20년 후 이탈리아의 박물학자 스팔란차니(Lazzaro Spallanzani)는 니덤이 국물을 끓인 다음에 공기를 통해 미생물이 들어갔을 거라고 지적했다.

스팔란차니는 고깃국이 든 용기를 밀봉하고 끓이면 미생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에 대해 니덤은 가열 과정에서 생명력이 파괴되는데, 밀봉으로 공기에서 보충되지 않아 자연발생이 일어나지 않았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때마침 이 무렵에 프랑스의 화학자 라부아지에(Antoine Laurent Lavoisier)가 공기에 있는 ‘산소’라는 기체가 생물의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부터, 이 보이지 않는 생명력은 더욱 신빙성을 얻게 되었다.

어느덧 한 세기가 지나고 드디어 그 유명한 프랑스의 화학자이자 생물학자인 파스퇴르(Louis Pasteur)가 나섰다. 그가 보기에 자연발생설은 분명 잘못된 것이었다. 이를 논파할 실험 방법을 골몰히 구상해보니, 공기는 자유롭게 들어가고 거기에 있는 미생물은 차단하는 게 관건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목이 기다란 플라스크에다 고깃국을 담고, 플라스크 목에 열을 가해 S자 모양으로 구부렸다. 그러고는 그 플라스크를 불에 올려 펄펄 끓인 다음 불을 끄고 그냥 놔두었다. 입구가 열려 있으니 공기는 자연스럽게 들어간다. 물론 그 속에 있는 미생물도 함께 진입하지만, 플라스크 안쪽까지 확산하는 공기와는 달리 미생물은 구부러진 플라스크 목의 아랫부분에서 멈춘다. 중력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고깃국이 절대로 썩지 않는다.

파스퇴르는 간단하지만 기발한 기구, 일명 ‘백조목 플라스크’로 마침내 자연발생설을 완전히 폐기했다. 1861년의 일이었다.

19세기 파스퇴르, 공기는 통하고 미생물은 차단하는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으로 자연발생설에 종지부
와인 변질의 주범 아세트산균 찾아내 ‘저온살균법’도 발명…프랑스 와인의 수출길 열어

와인 변질과 미생물 원인설

많은 위대한 발견이 사소하고 우연한 사건으로 시작했듯이, 1856년 어느 날 파스퇴르를 찾아온 양조업자가 미생물과 감염병 사이의 관계 규명이라는 획기적 과학 발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사탕무로 술을 만들어 팔던 그는 빚은 술이 종종 상해 시어진다는 애로사항을 토로하며 도움을 청했다. 파스퇴르는 현미경 관찰을 통해 온전한 술에는 동그란 입자들이 가득하지만 변질된 술에는 막대 모양의 입자들이 많이 섞여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미 발효를 생물학적 반응으로 의심하고 있던 파스퇴르는 이 사건을 계기로 발효 연구에 더욱 빠져들게 되었다. 파스퇴르는 그의 아내가 강박증 수준이라고 말할 정도로 연구에 몰두했고, 1857년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효모가 당분을 알코올로 발효한다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효모(이스트)의 참모습을 세상에 알렸다(마이크로 가축, 경향신문 2021년 1월15일자 14면 참조).

1860년에 이르러 와인의 변질은 프랑스 국가 차원의 이슈가 되었다. 그해 1월15일, 나폴레옹 3세는 영국과 10년 기한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공표했다. 그 덕분에 영국으로 수출하는 와인 양이 많이 늘어났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영국으로 가는 동안 와인 상당수가 상해 맛이 변하곤 했다. 급기야 황제는 파스퇴르에게 그 원인을 찾아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명했다. 파스퇴르는 몇 해 전 사탕무 술에서 보았던 막대 모양 미생물을 떠올렸다. 그는 와인 맛이 변하는 것은 특정 미생물 때문일 거라 확신했다. 마침내 1864년 문제의 미생물이 ‘아세트산균’임을 밝혀냈다. 자연환경 곳곳에 존재하는 이 세균은 산소가 있는 상태에서 알코올을 아세트산으로 전환한다. 초산이라고도 부르는 아세트산은 식초의 신맛을 내는 주인공으로 보통 식초에 3~5% 정도 들어있다. 참고로 수분이 거의 없는 순수 아세트산은 16도 이하에서는 얼어서 고체가 되는데, 그게 바로 빙초산이다.

이제 와인 변질의 주범을 찾아냈으니, 문제 해결 방법은 의외로 간단해 보인다. 푹 끓이기. 상상해 보시라, 음주 운전의 걱정을 날려버린 무알코올 와인의 맛을! 원치 않는 미생물을 없애려고 무턱대고 열을 가하면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 될 것이다. 따라서 해결 열쇠는 와인의 풍미는 유지하면서 문제의 미생물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만 적절히 가열하는 것이었고, 파스퇴르는 그 조건을 알아냈다. 와인을 60도 정도까지 가열해서 30분가량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파스퇴르법(pasteurization)’ 또는 ‘저온살균법’이라고 부르는 이 과정은 발효주와 우유, 주스 등에서 유해 미생물 제거를 위해 현재도 널리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로써 파스퇴르는 황제가 내린 임무를 완수함과 동시에 프랑스 와인의 수출길을 밝혔다. 나폴레옹 3세는 그의 공로를 치하하고 전폭적인 연구 지원을 약속했다.

효모가 와인을 만들고 아세트산균이 이를 변질시킨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때까지 저절로 일어나는 줄로 생각했던 주변의 여러 변화에 미생물이 관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갔다. 일부는 감염병도 같은 맥락으로 간주하여, 미생물이 병을 일으킨다는 ‘미생물 원인설(germ theory of disease)’을 제안했다. 그러나 2000여년 동안 질병은 개인이 저지른 죄악과 악행의 대가로 받는 천벌이라 여겼기에 당시 사람들 대부분은 미생물 원인설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요컨대 그 옛날에는 한 마을에 감염병이 돌면 시궁창에서 악취의 형태로 나온 악마의 소행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래도 과학의 선각자들은 무지한 고정관념을 깨트릴 지식의 힘을 묵묵히 쌓아가고 있었다. ‘하편’에서 그 이야기를 이어간다.

▶김응빈 교수

[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따개비에서 거위가 태어난다?…놀랍게도 1861년 이전까진 그렇게 믿었다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을 연구하며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지은 책으로 <술, 질병, 전쟁: 미생물이 만든 역사> <온통 미생물 세상입니다> <생명과학, 바이오테크로 날개 달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공저) 등이 있다. 또한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파트너 채널 ‘김응빈의 생물 수다’를 연재 중이다. ‘수다’는 말이 많음과 수가 많음, 비잔틴 백과사전(Suda)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네이버 채널 링크: https://contents.premium.naver.com/biotalkkim/know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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