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도 ‘정적인 우주’로 오판…우주 공간은 지금도 커지고 있다

이종필 교수

(33) 팽창하는 우주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아인슈타인 내세운 ‘정적인 우주’
자신의 새 이론보다 신념 믿다가
천문학자 허블의 검증받고 꺾여

거리 비례로 팽창 속도 빨라지는
‘허블-르메트르의 법칙’ 작동 확인
‘안드로메다’는 은하의 지위 획득

바야흐로 신우주시대가 도래했다. 1970년대 미국의 아폴로 계획이 종료된 이후 관심에서 멀어졌던 달은 다시 패권경쟁의 각축장으로 바뀌었다. 올해 안에 달 탐사선을 보낼 예정인 나라만 미국, 러시아, 일본, UAE, 멕시코 등에 이른다. 우리는 벌써 다누리호를 미국의 로켓에 실어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다누리호는 올해 말 달궤도에 안착할 예정이다. 작년에는 민간인 승객을 태운 우주여행이 처음으로 시작되기도 했다. 10년 이상을 끌어온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은 궤도에 성공적으로 안착해서 이전의 허블우주망원경을 뛰어넘는 놀라운 영상을 인류에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우리 은하 한가운데에 똬리를 틀고 있는 블랙홀의 그림자도 영상으로 포착해내고 머나먼 은하단 속의 블랙홀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우주 진출이 제2의 신대륙 발견이 될지, 엘도라도의 허무한 전설로 끝날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우주를 향한 인류의 여정이 멈출 것 같지는 않다. 그 여정에 이제 대한민국도 큰 발걸음을 보태기 시작했다. 지난 시절의 달 탐사와는 레벨이 다른 아르테미스 계획이 시작되는 지금부터 우리가 독자적으로 달착륙선을 보내는 2030년 정도까지 대략 앞으로 10여년이 이제 막 우주로 진출하기 시작한 우리에게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시간이 되리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여전히 일반 대중들에게 우주는 낯선 공간이며 일부 우주 선진국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철학과 비전으로 새롭게 펼쳐지는 신우주시대를 맞이하려면 대중적으로 우주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는 ‘우주의 대중화’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조급할 필요는 없다. 근대과학이 태동한 것이 400여년 전이고 산업화가 시작된 것이 200여년 전이라면 우주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이제 100년 정도 되었고 달 착륙에 성공한 것은 불과(?) 50여년 전이다.

과학이론의 틀을 갖춰 각을 잡고 우주를 이해하기 시작한 인물은 역시 아인슈타인으로, 그는 자신의 새로운 중력이론인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한 직후 이를 우주 전체에 적용해 보았다. 그 결과는 아인슈타인이 기대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인슈타인은 우주가 영원불멸이라 생각했으나 자신이 만든 방정식은 동적으로 변하는 우주라는 답을 내놓았다. 놀랍게도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새 이론과 방정식보다 자신의 신념을 더 믿었던 듯하다. 자신의 방정식에 일부러 항을 새로 집어넣으면서까지 정적인 우주를 만들었다. 자신의 방정식을 연구해 동적인 우주라는 결과를 얻은 다른 과학자들에게도 잘못된 결과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었다.

그러나 과학은 궁극적으로 현실에서 구현되는 결과와 합치해야 그 생명력을 이어나갈 수 있다. 천하의 아인슈타인도 이 칼날 같은 검증을 피할 수는 없다. 아인슈타인을 좌절케 한 인물은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었다.

허블은 학창시절 만능 스포츠맨으로 육상과 농구 등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허블의 부친은 허블이 법학자가 되길 바랐으나, 자신은 일류 법학자보다 삼류 천문학자로 살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밤하늘에 대한 애착이 컸다. 허블은 이미 1923년 당시 세계 최대 규모(100인치)였던 윌슨산 천문대의 후커 망원경으로 안드로메다성운을 관측해 이른바 “대논쟁”을 종식시킨 바 있었다. “대논쟁”이란 우리 은하와 다른 성운들 사이의 관계에 관한 논쟁으로 우리 은하가 우주의 유일한 은하인지 아니면 다른 독립적인 은하들도 존재하는지가 관건이었다. 허블은 자신이 관측한 결과로부터 안드로메다까지의 거리가 우리 은하의 크기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확인해 논쟁을 끝내버렸다. 덕분에 안드로메다는 성운에서 은하의 지위를 획득했다. 다른 성운들도 비슷한 영광을 누렸다.

허블 이전에 베스토 슬라이퍼는 1910년대에 외계 은하(성운)들에서 나오는 빛을 조사해 그 스펙트럼이 파장이 긴 방향으로 치우쳐 있음(적색편이)을 확인했다. 은하에서 나오는 빛의 파장이 짧아지는지 길어지는지를 분석하면 해당 은하가 얼마나 가까워지는지 또는 멀어지는지를 알 수 있다. 조사 결과는 은하들이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었다.

허블은 1929년 여러 외계 은하들까지의 거리를 측정해 그 거리와 은하들이 멀어지는 속력 사이에 간단한 비례관계가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전에도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빨리 멀어진다는 짐작은 있었으나 허블은 이를 정량적인 관계로 제시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허블은 은하들이 멀어지는 양상을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정립한 것이다.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그 거리에 비례해 더 빨리 멀어지는 이 관계를 허블-르메트르의 법칙이라 한다. 르메트르는 벨기에의 신부이자 천문학자로서 허블보다 앞서 일반상대성이론으로부터 허블의 결과를 예측한 인물이다.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그 거리에 정비례해서 멀어지는 속력이 커진다는 사실은 그 물리적 의미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차원에 국한해서 생각해보자. 은하 A가 원점에 있고 은하 B는 A의 동쪽에 거리 d만큼 떨어져 있다. 은하 C는 동쪽으로 B보다 더 멀리 2배의 거리인 2d에 있으며, 은하 Z는 A의 서쪽으로 d만큼 떨어져 있다. 은하 A에서 관측했을 때 모든 은하가 거리에 비례하는 속력으로 멀어지고 있으므로, B가 동쪽으로 멀어지는 속력을 v라 하면 C가 동쪽으로 멀어지는 속력은 2v일 것이고 Z는 서쪽으로 v의 속력으로 멀어질 것이다. 동쪽 방향을 +, 서쪽 방향을 -라 하면 A의 위치에서는 B, C, Z의 은하가 각각 +v, +2v, -v의 속도로 멀어지고 있는 셈이다.

은하 B는 이 상황을 어떻게 관측할까? B의 관점에서는 A가 -v로 멀어지며 C는 +v로 멀어질 것이다. 한편 Z는 B가 봤을 때 -2v로 멀어진다. 이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 은하 B가 보기에도 다른 은하들이 거리에 정비례하는 속력으로 멀어지고 있다! 그러니까 은하 A에 있는 외계인이나 은하 B에 있는 외계인이나 모두 똑같이 허블-르메트르의 법칙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결과는 은하들이 멀어지는 속력이 거리에 비례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만약 은하들이 멀어지는 속력이 거리의 제곱에 비례하거나 훨씬 더 복잡한 함수로 멀어진다면 다른 은하에서는 똑같은 결과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동적으로 변하는 우주의 모습은
은하들 사이 공간이 팽창 중인 것
부풀어 오르는 풍선 표면과 닮아

최근 세계 각국 우주 탐사 앞다퉈
일반 대중에겐 여전히 낯선 공간
‘우주의 대중화’ 통해 이해 도와야

그렇다면 허블-르메트르 법칙이 작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주 공간 자체가 팽창하기 때문이다. 공간 자체가 팽창한다는 것은 공간 속의 임의의 두 점 사이의 거리가 멀어진다는 뜻이다. 즉 허블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팽창하는 우주의 모습은 마치 바람을 불어넣어 부풀어 오르는 풍선의 표면과도 비슷하다. 이때 풍선 표면에 점들을 찍어 놓으면 각 점들 사이의 거리는 계속 증가한다. 점들이 직접 풍선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점들과 점들 사이의 풍선 표면이 커진다. 은하가 멀어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은하 자체가 움직인다기보다 은하들 사이의 공간이 팽창하는 것이다.

우주가 팽창하는 정도는 수치로 정량화해서 말할 수 있다.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빨리 멀어지므로 그 정도를 표현하려면 어떤 기준이 되는 거리가 필요하다. 현재 우리 우주가 팽창하는 정도는 1메가파섹(약 326만광년)의 거리에 있는 은하가 초속 약 70㎞ 안팎의 값으로 멀어지는 수준이다. 이 값을 허블상수라 부른다. 허블상수는 우리 우주를 기술하는 가장 중요한 상수이다.

팽창하는 우주는 우리 우주의 가장 중요한 물리적 특성이다. 허블의 발견으로 아인슈타인의 정적인 우주는 설 자리를 잃었다. 우주가 이렇게 동적으로 변하는 대상이면 정적이고 영원불멸인 우주에 비해 좀 복잡한 문제들이 생긴다. 동적인 팽창은 시간의 흐름을 수반하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우주의 진화 또는 역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우주의 탄생과 나이가 얼마인가라는 질문을 피할 도리가 없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도 이 우주와 함께 생겨난 산물이므로, 우리는 ‘시간의 역사’를 마주하게 된다.

팽창하는 우주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 거꾸로 재생하면 우리는 태초의 우주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을 역행하는 우주의 모습은 팽창의 반대, 즉 수축이 될 터이고 따라서 태초에는 우주의 모든 것이 극도로 좁은 영역에 몰려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빅뱅이다. 팽창하는 우주는 우주의 출발점으로서의 빅뱅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그렇다면 우주의 나이는 얼마나 됐을까? 우주가 지금 팽창하고 있는 비율(허블상수)을 알고 있으므로 이를 통해 우주의 나이를 추정할 수 있다. 즉 1메가파섹의 거리에 있는 은하가 초속 약 70㎞의 속력으로 멀어지고 있으므로, 그 속력으로 1메가파섹의 거리까지 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값은 결국 허블상수의 역수에 해당하는 값으로 보통 허블시간이라 부르는데, 약 140억년 정도 된다. 이는 대략적인 우주의 나이에 해당한다. 우주가 팽창하는 정도는 시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정확한 우주의 나이를 구하려면 좀 더 복잡한 계산을 해야 한다. 그러나 허블시간과 아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광활한 우주 속 먼지보다 못한 돌덩이 행성에 앉아서 은하를 관찰해 우주의 나이를 추정할 수 있다니, 역시 호모사피엔스는 조금은 유별난 종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나는 팽창하는 우주의 발견이 (양자역학과 더불어) 20세기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과학적 발견이라고 생각한다. 우주를 이해하는 호모사피엔스로서의 보람을 더 많은 사람들이 느껴보는 것도 신우주시대를 맞이하는 한 가지 방법이 아닐까 싶다.

▶이종필 교수

[전문가의 세계 - 이종필의 과학자의 발상법]아인슈타인도 ‘정적인 우주’로 오판…우주 공간은 지금도 커지고 있다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며 2001년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고등과학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고려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부터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등이 있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등을 우리글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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