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것들의 쓸모’를 아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이종필 교수

(51) 과학 내치는 나라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모나리자 초상화·임윤찬 연주
존재 그 자체로 높은 예술 가치
수익 창출 수단으로 봐선 안 돼

물리학 등 기초과학도 마찬가지
상대성이론·확산모형·양자론
인공지능 같은 기술 개발 토대

윤 대통령의 ‘카르텔’ 발언 후
현 정부 R&D 예산 대폭 삭감
우주탐사계획 기회도 물 건너가
국가발전전략 스스로 포기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아시안컵대회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기력으로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줬다. 다행히 8강 호주전에서 이겨 준결승까지 진출하긴 했으나 지금까지의 경기내용이 만족스럽다고 할 수는 없다. 축구를 잘 알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도 손흥민, 이강인, 황희찬, 김민재 등의 초호화 멤버로 이렇게밖에 경기를 할 수 없는 건가라는 의문이 많았다. 클린스만 감독은 오래전부터 지도자로서의 능력에, 특히 전술부재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었다.

축구는 겨우 11명이 뛰는 경기임에도 지도자의 역할이 이렇게나 중요한데, 한 나라를 책임지는 행정수반이 어떤 국가전략을 갖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그 나라와 국민들의 운명까지도 바꿀 수 있다. 물리학자로서 관심이 가는 대목은 과학 또는 과학기술이 국가전략에서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가이다.

세종대왕이 조선 초기 과학의 황금시대를 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슬람 왕조의 황금기를 열었던 9세기 아바스 왕조의 7대 칼리프 알 마으문은 ‘지혜의 전당(바이트 알 히크마)’을 세워 그리스 문헌을 번역했고 바그다드에 천문대를 세웠다. 당시 바그다드는 중동 일대에서 학문의 허브가 되었다.

반면 우생학이라는 가짜 과학에 물들었던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2차 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라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히틀러는 집권 초기부터 반유대정책을 펴 많은 유능한 과학자들을 내쫓았다. 그로부터 과학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에는 미국이 핵무기를 먼저 손에 넣게 되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는 첫 대통령 임기를 시작할 때 공공연하게 자신의 반과학적 태도를 드러내며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하기까지 했다. 과학에 적대적이기도 했지만 무지하기도 했던 그는 코로나19 초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수많은 미국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2024년의 우리나라도 상황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다. R&D 예산 삭감 이후 현장에서는 아비규환의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일방적으로 연구비를 삭감하는가 하면 연구취소를 유도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유인 달 탐사선 ‘아르테미스 2호’에 우리의 큐브위성을 탑재해 주겠다고 제안했으나 겨우 100억여원의 예산이 없어 한국 정부가 그 제안을 거절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대통령 해외순방비로 578억원을 쓰는 나라에서 100억원이 없어 우주탐사계획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그로부터 며칠 뒤에는 미국 워싱턴의 주미한국대사관에서 과학기술 주재관을 폐지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자리는 당연히 미국 정부와 직접 과학기술 관련 이슈를 소통하고 협력하는 창구이다. 올해 R&D 예산은 줄이면서도 글로벌 협력 R&D 예산은 늘린다면서 미국의 과학기술 주재관을 없앤다는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 과연 국가전략으로서의 과학기술정책이 있기는 한 것일까?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R&D 삭감의 가장 나쁜 효과는 유능한 젊은이들이 연구자로서의 삶을 선택하지 않도록 하는 이유를 충분히 제시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는 보수든 진보든 심지어 군사독재든 대통령이 누구이든지 과학기술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도 국가에서 과학기술 종사자들을 어떻게든 챙기려 한다는 신뢰가 형성돼 있었다. 말하자면 과학기술은 대한민국의 가장 기본적인 국가발전전략이었던 셈이다.

이번에 갑자기 R&D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은 바로 그 신뢰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대통령이 이제 와서 아무리 과학기술계를 챙기더라도, 설령 올해에는 내년 예산에서 R&D를 예년 수준으로 회복시킨다 하더라도, 내후년에 다시 갑자기 카르텔 운운하며 또 삭감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고약하게도 그렇게 무너진 신뢰는 비단 윤석열 정부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정권이 계속 바뀌고 새로운 인물이 대통령에 오르더라도, 한국은 어느 한순간 과학기술 R&D를 아무런 토론과 설득 없이 갑자기 날려버릴 수 있는 나라임이 이미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대통령이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갑자기 예산을 삭감하더라도 다른 어떤 국가기구나 제도, 또는 언론이 이를 적극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면, 국가와 연구자들 사이의 신뢰가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과학기술 R&D 예산삭감 사태는 그 출발이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사회 시스템의 총체적인 무능력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왕조시대에도 제왕의 잘못된 판단과 독단적인 폭주를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는데 21세기 대명천지의 민주공화국에서 겨우 임기 5년짜리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을 막지 못해 사회의 한 축이 무너진다는 게 솔직히 너무 어이가 없다.

그 속에서 기초과학이 설 자리는 더더욱 좁아질 것이 분명하기에 마음이 더욱 무겁다. 지금까지는 한국의 과학기술이 돈벌이에 도움이 되는 기술개발에 치중해 왔었다. 이는 예년 R&D의 포트폴리오를 봐도 명확하다. 2021년 기준으로 기초연구개발비는 전체의 14.8%로 일본과 중국보다는 높은 수준이지만 프랑스(22.7%)와 영국(18.3%), 그리고 미국(15.1%)보다는 낮다. 게다가 이 비율은 2014년 17.6%에서 꾸준히 감소해 왔다(KISTEP, 브리프51).

물리학자들은 물리학이 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냐, “그게 밥 먹여주냐?”라는 질문을 오래전부터 들어왔기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선배 물리학자들은 그에 대한 모범답안(진짜 밥을 먹여준다는 식의)을 만들어왔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절의 위대한 물리학자였던 마이클 패러데이는 전자기유도현상을 발견한 뒤 이게 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느냐는 정부 관계자의 질문을 받고 머잖아 여왕님이 여기에 세금을 매기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상황에 따라 시간 간격이 달라지는 효과는 GPS 위성을 쏘아 올릴 때 반드시 고려해야만 하는 사항이다. 1897년 전자를 발견한 지 약 50년 뒤에 트랜지스터가 탄생하면서 20세기 전자혁명이 시작되었다. 1911년 원자핵을 발견한 지 30여년 뒤에 인류는 핵무기와 핵에너지를 손에 넣었다. 핵분열 현상을 발견한 지 겨우 7년 뒤의 일이었다.

중첩과 얽힘 같은 양자역학적 성질을 가진 소자로 만든 양자컴퓨터나 도청의 위험이 없는 양자통신은 양자역학의 가장 핵심적인 원리 자체가 그대로 현실의 기술로 구현된 사례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모범답안의 목록은 급증하고 있다. 최근의 사례에는 당연히 인공지능도 포함돼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밑바닥에는 물리학의 확산모형이 있다. 요즘은 또 다른 물리이론을 활용한 알고리즘 개발이 한창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목록들이 쌓여갈 때마다 더 큰 공허함을 느끼곤 한다. 기초과학의 쓸모는 다른 무엇을 위한 쓸모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초과학의 쓸모’라는 말 자체가 기초과학의 가치를 폄하하는 표현이다. 세상에는 ‘쓸모없는 것들의 쓸모’도 있다. 오래전 장자는 이를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1960년대 미국에서 시카고 근교에 새로운 입자가속기를 건설할 때 미 의회 청문회에서 의원들이 초대 소장인 로버트 윌슨에게 입자가속기가 국가안보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윌슨의 답변이 기초과학의 존재이유와 그 가치를 가장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입자가속기는 국가안보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나리자’나 ‘다비드’ 상을 보러 가고 임윤찬의 연주를 들으러 가는 이유는 그런 작품들이나 연주가 인간 예술성의 한 극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모나리자’를 보고 임윤찬 연주를 듣는 것이 우리에게 다른 어떤 쓸모가 있거나 돈을 벌어주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모나리자’나 임윤찬의 가치는 이들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루브르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가로 매겨지지 않는다. 그건 그냥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존재들이다. 실제로 ‘모나리자’가 관람수익에 당연히 기여하고 그 때문에 누군가는 밥을 먹고 다니겠지만, 그것이 ‘모나리자’의 본질적인 가치는 아니다. 기초과학도 마찬가지이다. 기초과학은 인간 지성의 최전선에서 그 경계를 한 발자국 넓히는 일을 하고 있다.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여전히 ‘밥값’을 따지는 현실이 무척 아쉬웠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얘기해 왔다. 마침 총선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으니 늘 하던 얘기를 다시 반복하자면, 기초과학을 국가가 앞장서서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한 법안도 제정해 줬으면 좋겠다. 기초과학은 천연기념물과도 같아서 국가가 세금을 들여 보호하지 않으면 멸종되고 만다. 혈세를 들여 반달가슴곰을 보호하는 것은 어떤 경제적 이득을 위한 것이 아니다. 생물 종의 다양성 확보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일이다. 기초과학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과학기술계 전체가 무너지고 있어 이런 말 자체가 너무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과학 대통령으로 국민들에게 기억되었으면 한다.”

며칠 전 윤석열 대통령이 신설되는 과학기술수석에게 당부했다는 말이다. 사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미 국민들에게 그렇게 기억되고 있다. 불행히도 그게 좋은 쪽으로의 기억은 아닌 것 같다.

축구경기는 사실 져도 그만이다. 우리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어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나라가 무너져 내리는 일은 차원이 다르다. 축구감독이야 쉽게 해임할 수도 있지만 대통령 자리가 어디 그런가. 과학기술정통부수석을 신설한 것은 잘한 일이다. 다만 신임 수석에게만 맡겨 놓지 말고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진솔한 마음으로 현장의 반대 목소리까지 많이 들어보기 바란다. 그렇게 새로운 국가전략을 다시 수립하기 바란다.

■이종필 교수

[전문가의 세계 - 이종필의 과학자의 발상법] ‘쓸모없는 것들의 쓸모’를 아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며 2001년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고등과학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고려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부터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등이 있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등을 우리글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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