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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부문 이강진 - 위기의 시대에 대한 두 가지 처방
1. 가망 없는 반란, 또는 장님-되기최초의 반란은 난감하다. 아버지를 죽인 형제들은 누가 새롭게 왕좌를 차지할 것인가를 두고 또다시 살육전을 벌인다. 하지만 개중에 눈치 빠른 이들은 재빨리 부친의 자리를 쪼개어 차지하고, 반역의 역사를 거듭하며 아버지는 점점 불어난다. 이로써 세계는 마침내 피비린내 나는 반복을 중지하는 데에 성공한다. 더 이상 아버지 아닌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완벽한 조화가 완성될 무렵에, 우리는 비로소 태어났다. 아버지로 가득한 세계에서 이제 친부살해의 역전은 불가능하다. 누구든 반역을 꿈꾸려면 세계 전체를 적으로 간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죄책감 끝에 제 눈을 파낸 오이디푸스의 고통은 더는 비극이 아니게 되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의 자유는 오로지 절규할 수 없거나, 절규하지 않거나의 양자택일 뿐이다. 그것은 모든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친부살해의 시도를 감행하거나, 또는 아버지들의 명령을 내적으로 자동화하여 장님이 되는 일이다... -
평론 당선 소감 “문학이 보여줄 미래 향해 걸어갈 것”
부족한 글이 마지막까지 남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헛된 욕심을 털어낼 수 있을까 하여 인터넷에 ‘당선통보’를 검색해본 기억만 난다. 화면 가득 묻어났던 그 초조함이란! 그것조차 남의 일로 느껴졌을 만큼 문학은 갑자기 내 곁으로 다가왔다. 전화를 받는 순간 떠올린 것이 “아, 이게 보이스피싱이구나 싶었습니다”던 누군가의 당선소감이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실은 지금도 그저 얼떨떨하다. 모자란 내게 이렇게 커다란 기회를 주신 홍정선 선생님과 황종연 선생님. 두 분께 이 표현할 길 없는 감사함을 어찌 전해야 하느냐는 생각에 마냥 면구스럽다.아직도 글을 쓰려면 쓰는 글자 수보다 읽어야 할 책이 많은 학생으로서, 지금의 영광은 게으른 자신을 채찍질하라는 엄준한 가르침으로 새겨야만 할 것 같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 달콤함을 맛보았으니, 내 몫으로 남은 노력의 쓴맛이 배로 느껴지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문학이 보여줄 미래를 향해 그저 묵묵히 걸어야겠다.모자란 제자를 이끌어... -
평론 심사평 “당대 비평의 쟁점과 대면… 패기 단연 두드러져”
응모작 총 33편 가운데 수상작을 제외하고 마지막까지 고려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다음 네 편이다. .한유주론은 그 작가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를 두고 진지하게 고민한 결과를 담았으나 ‘흔적’ ‘탈주’ ‘환대’ ‘타자’ 같은 투어들을 남용하고 있어 미숙하다는 느낌을 금하기 어려웠다.심보선론은 권태로운 아이의 모티브를 단서로 삼아 깔끔한 독해를 보여주었지만 작품 주석 이상의 욕심이 없어 아쉬웠다. 김사과론은 확실한 작품 이해, 재치 있는 해석, 발랄한 문체 등 여러 장점을 갖춘 글이었다. 다만 조리 있는 논증보다 자기도취적 진술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었다. 박민규론 역시 응모자의 비평가적 소양을 느끼게 하는 높은 수준의 작가론이었다. 그러나 박민규 소설의 윤리 효과를 논하는 대목에서 유행 중인 철학 담론을 추종하여 무리한 추리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당선작은 . ‘정치적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송경동과 장석원의 시를 검토한 이 글은 작... -
시 심사평-“개성과 진실은 시를 계량하는 중요한 잣대”
신춘문예는 말 그대로 ‘새 봄의 문학’이다. ‘새 봄의 문학’은 혹한과 얼음을 이긴 ‘새싹의 문학’이자 ‘꽃핌의 문학’이다. 이는 오랜 탁마와 절치부심(切齒腐心)의 순간을 견디며, 개성적인 세계를 창조하려는 노력 끝에 찾아오는 문학이다. 이 점에서, 시를 구성하는 미적 형식과 내용을 직조하는 시선, 제재를 가공하는 세공술, 그리고 이를 각고로 새겨 돋우는 치열한 정신은 ‘새 봄의 문학’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예술적 덕목들이다.예심에서 올라온 시편 중에서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끈 것은 시가 지니고 있는 본령을 견지하면서도 개성적 시각으로 삶의 진실을 드러낸 것들이었다. ‘개성’과 ‘진실’은 시를 계량하는 중요한 잣대로 ‘지금까지, 어떻게 썼는가’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관심을 포함하고 있어 미래적이다. 당선작 ‘그늘들의 초상’은 대상과 세계를 해석하는 강한 추동력과 낮은 자의 고통을 존재의 장소에서 불러내는 동일자의 윤리를 보여준다. 함께 투고한 시편도 고르게... -
시 당선 소감-“멋진 병, 현기증이 나에 대한 믿음 되살려”
한 인간이 있었다. 그는 세상을 전부 이해하기 위해 한 인간에 만족하지 못하고 모든 인간이 되길 바랐다. 한때 내 몸은 그의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에 반항하기 위해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영혼이 아니라 그의 죽은 몸을 닮고 있었다. 스무 살의 겨울, 몽마르트 언덕에서 길을 헤매던 중 한 묘지로 들어갔고 처음 본 공동묘지에 그를 내려놓았다. 파리의 지붕들을 뛰어다니던 그에겐 밟고 다닐 무덤들이 필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빈자리가 말을 건넨다. “나는 침묵과 밤에 대해 썼고, 표현할 수 없는 것에 유의했다. 나는 현기증을 응시했다.”얼마 전 흑백의, 내 머릿속 사진을 보았다.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커다랗고 외로운 눈(目)이었다. 그 눈은 대답을 무한히 지연시키는 질문만을 내게 건네는 듯했다. 아무 문제 없다고 의사는 말했지만 그 이후로 나는 눕거나 일어날 때 어지럼증을 느낀다. 그것은 마치 내 안에 살았던 기억과 감정들이 깨어나면서 ... -
소설 심사평-“주제 장악하는 힘, 꾸밈 없는 인물과 주제 탐구 돋보여”
소설에서 장식적인 요소는 언제나 작가 자신에게 재앙이다. 많을수록 더 큰 재앙이 된다. 더구나 삶과 인간에 대한 탐구가 결여된 채로 꾸미는 데 열중하는 것은 아주 좋지 않은 습관이다. 멋을 부린 문장이나 부적절한 비유 같은 것으로 생각을 대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본심에 오른 스물세 편 가운데에는 상식적 수준에서 시작되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로 끝나고 마는 작품이 적지 않았다. 불필요하게 이국적 배경이나 소재를 끌어들인 작품도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웠다.마지막까지 논의된 작품은 ‘파쿠르’ ‘출구’ ‘방’이었다. 각기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모두 어떤 점은 새롭고 어떤 점은 낯익었다. 야마카시(고층건물 사이를 옮겨다니는 익스트림 스포츠)나 디스토피아, 실직과 해고 같은 이야기들, 영화를 통해 소설을 통해 무척 자주 마주치게 되는 소재다. 그것을 통해 어떻게 작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는가, 그 지점에서 적지 않은 차이가 드러났다.‘파... -
소설 당선 소감- “타자 누르는 손가락 늘 무겁게 할터”
첫 문장을 쓰는 일이 늘 어렵다. 깜빡이는 커서를 보며 몇 시간을 보내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떠오르는 오만가지 생각 중 하나를 간신히 잡고 나면, 그 다음이 더 어렵다. 타자를 누르는 손가락이 점점 무거워지는 기분이 든다.내가 보는 것들은 세상의 미세한 부분일 뿐이다. 그 부분을 글자로 옮기는 일들이 감사하고 소중하다.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 않는다. 다만, 같이 있고 싶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있는 순간 배어나오는 감정들에 대해 쓰고 싶다. 그 감정의 관계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감사한 분들이 정말 많다. 황지우 선생님, 김경욱 선생님, 서창과 친구들. 밤새 함께 글을 쓰고, 보여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그들 덕분에 덜 외로웠다. 부족한 글에 기회를 주신 경향신문사와 심사위원 선생님들에게도 깊이 감사드린다. 그리고, 항상 응원을 아끼지 않은 가족들. 부모님을 만난 일이야말로 내가 가진 최고의 행운이었다. 사랑한다... -
소설 부문/ 강화길-방
우리는 이 도시에 함께 도착했다. 오늘, 나는 혼자 복숭아 통조림을 먹었다. 멀리서 들려오던 사이렌 소리가 창 밑으로 가까워졌다. 이 소리는 늘 빛과 함께 나타난다. 어두운 옥탑방에 붉은빛이 안개처럼 가라앉는다. 바닥이 붉게 흔들린다. 나는 무릎을 세우고 앉는다. 등이 차가운 벽에 닿는 순간, 깊고 날카로운 통증이 오른손 중지를 관통한다.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입김이 손을 데운다. 나는 손에 담긴 복숭아 향을 맡는다. 통증이 더 심해진다. 손목이 아릴 때마다 나는 수연에게 팔을 내밀곤 했었다.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그녀는 내 손목을 정성스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우리는 늘 두 손을 맞잡은 채 잠들었다. 사이렌 소리가 덜컹대는 차바퀴 소리와 함께 창 밑을 지나간다. 쇳소리가 귀를 긁자 손가락의 아픔이 사그라진다. 한 달째, 나는 방을 떠나지 않았다. *-이 방이라 두 달이나 살 수 있었던 거예요. 방의 전 주인이었던 여자가 말했었다. 나는...